3시간 전
반도체 화학물질 공급 노동자, 뇌종양으로 떠난 아빠
2026.06.10 13:59
반올림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입니다.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산재를 신청하면서 기록의 필요성을 절감해 생애사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아픔과 고통뿐 아니라 개인의 꿈과 행복에 대해 묻는 인터뷰를 했고, 재해경위서, 진술서가 아닌 삶을 담은 글을 적었습니다. 올 한 해 2월부터 한 명씩 총 11명의 삶을 구술기록으로 전해드립니다.
김연주 님(가명)은 반올림 활동하면서 몇 차례 만났던 분이다. 김연주 님의 배우자이신 고 이승민 님(가명)은 삼성 1차 하청업체에서 화학물질 공급 업무를 하다 2025년 7월 뇌종양으로 돌아가셨다. 연주 님 본인도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오퍼레이터로 오랫동안 근무하셨기에 노동자이면서 피해자 유족이기도 하다.
연주 님을 산재 신청 기자회견에서도, 고 김치엽님 1주기 추모제에서도, 다른 인터뷰를 하실 때 통역 지원을 하면서도 뵀다. 연주 님은 먼저 나서지는 않아도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나 기분 좋게 받아주시는 분이다. 이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심지어 요청하기 전에도 이번 인터뷰는 아주 수월할 것이라는 어떤 믿음이 나에게 있었다.
연주 님의 인생과 나의 인생은 다른 시간대에서 비슷하게 겹친다. 연주 님에게서 20년 전 엄마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고, 연주 님의 딸에게서 20년 전 나를 겹쳐볼 수 있었다. 연주 님을 보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절 엄마의 마음을 가늠해 보려 애쓰기도 했다. 프로젝트의 일관성을 위해서 이 글의 주인공은 이승민 님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녀의 인생이 따로 다뤄질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수원에서 성남으로
승민은 이발소를 하는 부모님 밑에서 외동으로 자라 혼자 부모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다.
어머님 아버님이 일하시고 하면은 낮 동안, 오후까지는 다 작은 어머님이나 아니면 할머니들이 케어를 해 주시고, 어머님 아버님은 저녁 늦게서야 돌아오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침에도 밥을 해놓고 덮어놓고 가면 그거를 학교 끝나고 와서 먹으면 반찬이 말라 있거나 밥만 이렇게 해놓고 가고 그래서 잘 안 먹었대요. 저녁에 친구들이 엄마가 불러서 "야 밥 먹자" 하고 들어가 버리면 자기 혼자 남는 일이 있어서 자기는 집에 왔을 때 아무도 없는 게 좀 그랬대요. 항상 불을 켜고 자기가 들어가는 거가. 아무도 안 계셨으니까.
그리고 조금 소극적이었던 것 같아요. 옛날에 버스를 타고 가면 키가 작고 왜소해서 사람들에 낑겨서 벨을 못 눌러서 정거장을 지나쳐 그 어린 나이에 걸어오고 그랬던 일화를 들었거든요. 말 못하고 그렇게 해서 아주 먼 거리를 걸어왔다고. 그러면서 '오빠는 소극적이었구나' 그러고.
수원에서 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성남으로 이사를 갔다. 1983년생인 승민이 중학교로 올라가던 1990년대 중반은 성남에서 신도시 개발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반면 수원은 이미 교통의 중심이자 규모가 큰 도시였다. 같은 경기도지만 승민은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갔을 때나 나올 법한 반응을 마주했다.
본인 말이긴 하지만 초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잘했대요. 근데 성남으로 이사를 가면서 수원에서 이사 왔다 그러니까 "어 너는 공부를 좀 잘하겠네?" 이런 식으로 비교가 되면서 그 성남 애들이랑 진도도 또 좀 달랐었대요. 그때는 성남보다 수원이 좀 더 발달한 도시여가지고 그런 프레임이 씌워져 있었대요. 결국엔 똑같이 다 경기도긴 한데 그러다가 오빠가 그거에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그냥 나도 하지 말아야지. 얘네랑 수준을 맞춰야지' 이러면서 그때부터 놀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머님도 우스갯소리로 "쟤가 성남 가서 이렇게 됐지 수원에 있었으면 그래도 공부 잘했을 텐데" 막 이렇게 말하면서. 오빠가 그때부터 놀았더라고요. 고등학교 때는 공고를 가면서 잔뜩 놀았어요.
첫사랑, 캠퍼스 커플, 비밀연애
승민은 기능대학을 진학하고 다섯 번의 끈질긴 지원 끝에 해병대에 합격해 군대를 다녀왔다. 제대 후 총학생회에 들어가 활동하다 연주를 만나게 됐다. 비밀연애를 시작했다.
학생회에서 학생회장이 여자분이었거든요. 근데 이 총학생회 내에서는 절대 연애 금지라는 걸 걸었어요. 헤어지고 이러면 학생회 운영 못하니까 "1년 동안은 니네 절대 연애하지 말아라. 우리 남은 행사가 많다" 그래가지고 계속 비밀로 한 거죠.
7교시 수업에다 자율성이 없어 '고등학교의 연장선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기능대학이었지만 승민과 연주는 학생회 활동과 연애로 대학 생활을 다채롭게 채웠다. 잠시 위기도 있었지만 둘은 첫 인연을 서로 잘 붙들고 결혼을 했다. 8년의 긴 연애와 11년의 결혼 생활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열심히 놀러 다녔다. 그중에서도 제주도는 둘에게 특별한 곳이었다.
제가 제주도가 고향이어 가지고 오빠가 또 제주도를 되게 좋아해서 매년 여름휴가를 제주도로 갔거든요. 그래서 나중에는 진짜 제주도에서 어디 말하면 내비 없이 다닐 정도로 오빠는 그게 되게 자기의 프라이드였어요. "난 이 정도 돼" 할 정도로 되게 제주도를 좋아하고 그래서 저희가 웨딩 촬영도 제주도에서 한 거였거든요.
결혼 후에도 웨딩 촬영을 한 곳, 제주도 야구인의 마을에서 매년 사진을 찍자는 약속을 하고 지켜왔다. 승민의 뇌종양이 재발하기 전 2024년 11월에 결혼 10주년 기념사진을 찍은 것이 둘만의 의식의 마지막이 됐다.
너무 막 힘들고 그럴 때는 다 여기 거를 정리하고 제주도 가서 사는 삶을 한 번씩 얘기했었거든요. 나중에 제주도가 또 비싸져 가지고 "이거 팔아도 안 되겠다" 막 이러긴 했는데 그거를 한 번씩 얘기하긴 했었고 제주도 가서 사는 삶을 한 번씩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오빠는 어디 갔을 때 지인이 있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거기에 저의 지인들이 어디 매장이나 어디 관광지에서 일을 하면 공짜로 혜택받고 대접해 주니까 그런 재미로 갔던 것 같아요. 친구들도 다들 결혼을 하면서 그 친구의 남편들도 알게 되면서 아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래서 편안했던 것 같아요. 결혼하기 전부터 만났으니 오빠도 그 사람들이 근 20년을 안 사람들이 돼버렸잖아요. 그래서 좋아하지 않았을까요? 오빠도 제2의 고향처럼 느꼈던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만큼 우는 거야
승민과 연주에게는 11살 아들, 9살 딸이 있다.
(오빠는) 딸을 원했죠. 근데 자기가 장손이니까 당연히 첫째는 아들이어야 했는데, 제가 그래도 아들 안 낳았으면 고개를 못 들 뻔했는데 딸도 낳고 아들도 낳고. 원래는 저도 동생이랑 사이가 좋으니까 자매를 만들어주고 싶었거든요. 근데 첫째가 아들이잖아요. 둘째도 아들이면 제가 너무 속상할 것 같아서 열 달 동안 비밀로 해달라고 그래서 태어나는 날 성별을 알았어요. 그게 가능하더라고요. 그래서 분만실에서 성별을 알았어요. 분만실 들어가서 막 세팅하는데 그 간호사들이 교대를 하면서 제 차트를 못 봤나 봐요. 성별 비밀이라는 거를. 분만이 가까워지니까 거기가 막 트랜스포머처럼 바뀌거든요. 분만실로 바뀌는데 그 팔찌를 핑크색을 여기다 갖다 놓는 거예요. 그래서 "나 딸이야" 오빠는 나중에 탯줄 끊으러 왔을 때 그제야 정말 딱 보고 그것도 되게 재밌었어요. 열 달이 되게 재밌었어요. 다 맞추려고.
승민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빠였다. 연주가 교대근무를 하기 때문에 오후 근무와 야간 근무일 때는 승민이 아이들을 재울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착 형성이 됐다. 연주는 어린 나이에 아빠를 잃은 아이들이 건강한 이별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상담받고서도 그랬고 제가 이겨내려고 슬픔을 참거나 그러지는 않고 주변에 사람들이 그래도 있어 가지고. 전 애들 앞에서도 울어요. "슬프면 우는 거야" 이러면서 "그만큼 좋아했으니까 우는 거지" 이러면서. 저희 큰애가 장례식 기간 동안 막 눈물을 참았어요. 그게 어른들은 가슴이 아픈 거죠. 그래서 "슬프면 울어. 지금은 울어야 돼. 좋아하는 만큼 우는 거야" 걔가 막 눈물을 참더라고요. 그게 좀 속상했어요.
이제 회사도 안 다니고 하니까 애들이랑 시간을 잘 보내려고 하고 있어요. 제가 아빠 몫까지 해야 돼서. 제가 기계치거든요. 아예 막 그런 걸 못 다뤄요. 그걸 다 오빠가 했었으니까. 이제 그런 것도 잘 해서 다녀야지.
(2편에서 계속됩니다.)
※ 이름은 인터뷰이의 요청으로 가명으로 처리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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