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기름 팔아 AI 판 깔 때, EU는 경제위기 턱밑 [트럼프 스톡커]
2026.06.10 09:09
원유 수출 급증한 美, 4월 무역적자 50% 감소
전쟁 특수 통해 반도체 등 AI 인프라 집중 수입
중국은 9년 만에 수입량 최소로 줄여 ‘버티기’
유럽은 물가 폭탄에 성장 동력 없이 금리 인상
에너지난 극심...장기 분쟁 따른 양극화 극명
美 4월 무역 적자, 1년 만에 50% 감소...전쟁發 원유 수출량 늘려 AI 인프라 수입
수입품 가운데서는 AI 데이터센터 투자 열풍으로 자본재 수입이 70억 달러 증가했다. 세부적으로는 컴퓨터가 22억 달러, 반도체가 17억 달러, 통신장비가 16억 달러씩 늘었다. 기름을 더 팔아 AI 인프라(기반시설)에 필요한 제품을 더 사고, 첨단기술 부문에서 다른 나라와의 차이를 넓힌 셈이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올 1∼4월 누적 무역 적자 규모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9.1%(2135억 달러)나 급감했다. 지난해 1~4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관세 시행에 대비해 기업들이 재고 축적을 위한 수입을 크게 늘린 바 있다. 4월 미국의 무역 상대 국가별 무역 적자 규모는 대만과 베트남이 각각 193억 달러로 가장 컸다. 이어 멕시코(148억 달러), 중국(120억 달러), 유럽연합(72억 달러), 캐나다(62억 달러), 독일(56억 달러), 한국(47억 달러) 순으로 적자액이 많았다.
미국의 원유 수출량이 증가한 것은 지난 2월 28일부터 시작된 이란과의 전쟁 때문이다. 전쟁 직후부터 이란이 전 세계 하루 원유 물동량 약 20%가 오가던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국제 유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2월 27일 배럴당 72.48달러였던 브렌트유와 67.02달러였던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곧장 120달러 근처까지 올랐다. 이 과정에서 미국산 원유에 대한 수요는 중동산을 대체하는 제품으로서 일본 등 아시아에서 급증했다. 5월 3일 CNBC에 따르면 전쟁 여파로 미국 원유 수출은 4월 사상 최대인 하루 520만 배럴을 기록했다. 이는 전쟁 발발 전인 2월 하루 390만 배럴보다 약 33%나 증가한 수치였다. 미국산 경질유가 중동산 중질유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전쟁이 추가 수요를 창출했음은 확실했다. 올 1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축출 이후 미국에 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선 베네수엘라의 4월 원유 수출량도 하루 123만 배럴로 2018년 말 이후 최대치에 달했다.
미국산 원유 가치의 상승은 미중 협상의 카드로 작용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중국 베이징에서 시 주석과 공식 정상회담을 가진 뒤 녹화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중국이 미국산 석유를 구매하길 원한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중국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미국산 원유를 수입하겠다는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중국은 9년 만에 원유 수입량 최소로 줄여 ‘버티기’
중국의 5월 원유 수입량은 전년 동기 대비로 29.0% 줄었다. 수입량을 줄였는데도 유가가 비싸다 보니 수입액은 15.3%나 더 늘었다. 4월과 비교하면 수입량과 수입액 모두 각각 14.0%, 6.7% 감소했다. 중국의 1∼5월 누적 수입량도 2억 1836만 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4.8% 감소했다. 누적 수입액은 전년 동기 대비 3.5% 많은 1281억 달러(약 194조 5000억 원)로 집계됐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이 정제유 수출 제한, 정유공장 가동 축소, 비축유 방출 등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상황을 버티고 있다고 진단했다.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도 중국의 원유 수입량 감축이 국제 유가 안정에 상당히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라이트 장관은 9일 워싱턴DC에서 열린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 주최의 ‘글로벌 에너지 포럼’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 수가 매우 의미 있게 증가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라이트 장관은 “국제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를 넘어가는 파국이 발생하지 않은 데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미국 등 30여 개 국가가 전략 비축유를 방출했고 중국이 수입량을 하루 400만 배럴 정도로 낮췄다”고 짚었다. 라이트 장관은 이어 “중국이 전략 비축유 축적을 중단했다”며 “비축분 일부를 방출한 데다 일시적으로 정유공장 가동률을 낮춰 제품 생산량을 줄였고 경제 활동도 위축시켰다”고 덧붙였다.
중국의 원유 수입량 감축 소식은 중동 긴장 완화 기대와 맞물려 이날 국제 유가 하락에도 일조했다. 영국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은 전 거래일보다 2.97% 하락한 배럴당 91.45달러에 장을 마쳤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7월 인도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3.40% 내린 배럴당 88.20달러를 기록했다. 브렌트유와 WTI 모두 지난달 27일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최근 쿠웨이트가 아시아 지역 주요 정유사들에 추가 원유 공급을 제안한 점도 호르무즈 해협 기능 회복의 신호로 해석돼 유가에 긍정적으로 반영됐다.
유럽은 물가 직격탄에 성장 동력 없이 금리 인상...전쟁 장기화에 국가 간 양극화 극명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공급줄이 막히면서 물가상승률이 두 자릿수까지 치솟았고, 이를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하자 경제 활동까지 위축됐다. 여기에 중동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유로화를 사용하는 21개국의 5월 평균 물가상승률은 2023년 9월 이후 최고치인 3.2%로 솟구쳤다. 전쟁 직전인 2월의 물가상승률이 1.9%였던 점을 감안하면 실로 가파른 상승세다.
유가가 상승하면 미국인들은 휘발유 가격 정도로만 위기를 체감하지만, 유럽 지역은 가정·산업용 에너지 비용 폭등으로 더 큰 몸살을 앓는다. 설상가상 세계적인 금리 인상 예측으로 달러화 가치가 올라가면서 최근 유럽 지역의 수입 물가까지 빠르게 들썩이고 있다. 물류망의 경우도 태평양과 대서양을 주축으로 하는 미국과 달리 유럽은 이란 전쟁 지역을 아시아로 가는 핵심 길목으로 삼는다.
물가가 너무 빠르게 오르니 경제 성장 동력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추가 금리 인상이 유력해지는 분위기다. 월가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이달 11일 통화정책회의에서 정책금리를 0.25%포인트 올리고 연말까지 한 차례 더 인상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도 지난달 21일 “에너지 충격의 영향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내년 경제성장률을 1.5%에서 1.4%로 낮췄다. 영국계 투자은행(IB) 바클레이스도 올해 유럽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4%에서 0.7%로 대폭 낮추고, 내년도 경제성장률은 0.9%로 전망했다.
이 같은 시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 참석차 9일 유럽 순방의 첫 기착지인 벨기에 브뤼셀에 도착했다. 브뤼셀은 EU 집행위원회 본부와 유럽의회 등이 있어 ‘유럽의 수도’라고도 불린다. 한국 정상의 브뤼셀 방문은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 이후 8년 만이다.
유가 불안에 주요국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중동 전황은 여전히 불확실성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이란 반관영 메흐르 통신에 따르면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정예군인 쿠드스군의 에스마일 가아니 사령관은 8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예멘의 반군인 친(親)이란 무장정파 후티를 우회적으로 거론하며 “호르무즈 해협부터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페르시아만에서 홍해까지가 새로운 저항의 안보 벨트가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봉쇄의 영역을 호르무즈 해협에서 홍해까지 넓힐 수 있다는 암시였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전 세계 해상 무역량의 약 10%가 통과하는 홍해의 입구로 수에즈 운하와 통하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이스라엘도 9일 이란의 경고를 무시하고 레바논 남부를 재차 공습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전날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취재진에게 “매우 훌륭한 합의를 이루는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며 “(협상 타결까지 걸리는 시간은) 이틀이나 사흘 정도”라고 말했다가, 9일에는 트루스소셜에 “8일 밤 호르무즈 해협 상공을 순찰하던 최첨단 아파치 헬기 1대가 이란에 의해 격추됐다는 보고를 방금 받았다”며 “미국은 불가피하게 이 공격에 대응해야만 한다”고 보복을 예고했다. 이 소식에 국제 유가는 하락폭을 반납했고, 뉴욕 증시의 기술주들은 장중 하락 반전했다.
전황이 장기화할수록 미국, 중국 등 경제적 기초체력이 좋은 국가들은 위기를 버티면서 후발 산업국들을 최대한 따돌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반해 유럽과 아프리카·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은 AI 시대 초반부터 선진 경제에 점점 더 뒤처지는 길을 갈 수 있다. 전쟁의 양극화가 국가 간에도 극명하게 나타나는 셈이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다른 소식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