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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호 칼럼] 피크 코리아와 그랜드 디자인

2026.06.10 00:22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
서재에서 2020년 발간된 『피크 재팬: 마지막 정점을 찍은 일본』을 다시 꺼내 봤다. 오랜 기간 마이니치 신문기자로 일본을 관찰해 온 브래드 글로서먼(Brad Glosserman)의 예리한 분석이 두드러진다. 전 세계 GDP의 17%로 세계 제2 경제대국을 구가하던 일본이 지금은 3.6%로 5위가 되었다. 일본은 왜 “Japan as No. 1”에서 추락해 잃어버린 30년을 보내고 있는가? 결론은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국민 모두가 성공신화에 도취돼 미래를 위한 그랜드 디자인 기회를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샴페인 터뜨리기엔 아직 이른 시점
피크 코리아의 위기의식 가져야
미래한국 위한 그랜드 디자인 절실
초격차 기술개발에 적극 투자해야

우리나라는 1960년 1인당 GDP 79달러의 최빈국이었다. 지금은 GDP 규모가 2조 달러에 육박해 세계경제의 1.6%를 차지하며 15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전 세계에서 인구 5천만 이상,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는 선진국은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 6개국에 불과하다. 올해 수출도 약 7400억 달러로 세계 6위가 될 전망이다.

얼마 전까지 중국 굴기로 피크 코리아 위기를 말했다. 그러다 AI시대의 도래로 반도체 경기 활황과 전기 수요 급증으로 원자력 기술이 각광을 받고,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으로 방산과 조선이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피크 코리아 소리는 크게 줄어들었다. 게다가 K팝, K드라마, K뷰티, K푸드까지 세계인들이 K컬쳐에 열광하고, KOSPI가 8000선을 넘어 한국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면 이런 호황은 지속될까?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은 휴스턴의 라이스대학 연설에서 십년 안에 달나라에 가겠다고 선언했다. 미소냉전 가운데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니크호 발사에 성공하고, 1961년 유리 가가린이 최초로 유인 우주 비행에 성공한 것에 위기의식을 느껴 NASA의 우주개발을 통해 달나라에 미국인을 보내겠다는 그랜드 디자인이었다. 많은 정치인들이 무모한 짓이라고 비웃었고, 그 돈이 있으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케네디는 아폴로계획이 어려운 일이기에,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기에 미국이 도전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메이플라워호와 골드러시의 개척정신을 이어받은 아폴로계획은 휴스턴 존슨우주센터,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를 설립하고 1969년 아폴로 11호로 달 착륙에 성공했다. 아폴로 계획은 단순히 인간이 최초로 달에 착륙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머물지 않는다. 미국이 21세기까지 첨단기술을 통해 전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이 우주기술개발의 산물이다. 반도체, 컴퓨터, 인터넷, 무선통신, GPS, 위성방송 뿐 아니라 초경량 합금, 특수 플라스틱, 원격의료, 웨어러블 헬스기기 등 미국 첨단기술은 우주기술이 민간기술로 활용된 것이다. 심지어 인스턴트 커피도 우주식을 위한 급속냉동드라이 기술에서 나왔다.

우리나라가 방위산업에서 뛰어난 경쟁력을 보이는 것도 1970년대 말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으로 창원 등에서 기계 산업이 발전된 결과이다. 오늘 조선, 원자력, 잠수함 및 전투기 등 방위산업을 비롯한 다양한 제조업 기술이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이 바로 중화학공업 육성이라는 그랜드 디자인의 결과이다. 한국이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겠다고 하자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불가능하고 무모한 일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1966년 월남파병의 대가로 설립된 KIST를 위시하여 우리나라의 기술개발 그랜드 디자인은 이제 전 세계에서 GDP 대비 R&D 비율이 이스라엘과 1, 2위를 다투고, R&D 총액 규모도 영국을 넘어 세계 5위에 달하는 결과를 낳았다.

위기는 초격차 경쟁력을 자극한다. 그동안 한국은 끊임없는 위기의식 속에서 경쟁력을 키워왔다. 잠시 위기의식을 놓치고 있을 때 재앙은 찾아온다. 김영삼 정부 때 금융시장 개방, 자본 자유화, OECD 가입으로 선진국에 들어갔다고 샴페인을 터트리자 우리는 곧 바로 IMF 경제위기를 맞았다.

AI 버블로 반도체 경기 호황에 영업이익이 늘자 이를 나누어갖자고 노조와 정부가 탐을 내는 것은 심각한 위기를 자초하게 될 전조처럼 보인다. 이제 십년, 이십년 후를 내다보는 국가 그랜드 디자인이 절실하다.

반도체산업을 위해 정부는 2024년에만 18조원 이상의 정책금융 지원책을 발표했다. 세액공제와 최대 30%까지 인프라 투자지원도 수십조 원이 넘는다. 이는 결국 기업 대신 국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몫인데 이를 무시하고 노조나 주주만 초과이익을 독점하고 정부가 세수 확대로 나눠주기 정책을 실시하는 것이 정당한가? 국가의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당장의 이익만을 위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려는 노조와 정부 모두 반성해야 한다. 미래를 위해 초격차 기술개발과 같은 그랜드 디자인에 투자하지 않고 오늘 샴페인을 터트릴 때 위기는 코앞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방선거도 끝났다. 이제 국내정치 싸움에만 몰입하던 정치의 지평을 국가의 미래를 위해 거시적으로 펼쳐야 할 때가 왔다.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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