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접는 기술’로 첨단공정 맹추격…메모리 격차 크지 않아”
2026.06.10 05:02
중국, 수출통제 우회 ‘로직 폴딩’ 기술 1.4㎚ 공정 구현
발열·전력소비 등 결함 많지만 HBM 적용 가능성 커
반도체 자립화 가속도, 한국 반사이익 시간 많지 않아
반도체 수도권 집중 우려에도 국가적 속도전 불가피
전력·용수 인프라, 새로운 경부고속도로 짓는 자세로
전문 해외인력, 팹리스 플랫폼 등 생태계도 강화해야
권 교수는 최근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우회한 첨단 공정 기술을 잇달아 내놓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과거 배터리와 태양광 산업이 그러했듯이, 메모리 기술 격차가 급격히 좁혀질 수 있다”면서 “대중 수출 규제가 중국에 자급자족 생태계를 구축할 명분과 동기를 준 셈이며, 우리가 누릴 반사이익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인공지능 시장은 “실질적인 수익 시그널이 아직 불분명하다”면서, 투자 자본의 압력으로 빠르게 피지컬 인공지능으로 이동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경부고속도로를 다시 깐다는 자세”로 전력·용수 등 인프라에 대한 국가적 지원과 속도전을 주문했다. 정부의 핵심 정책 과제인 ‘소버린 AI’ 개발은 “성능과 관계없이 국가의 디지털 주권과 통제력을 지켜내기 위한 ‘필요악’이자 최후의 보루”라고 강조했다.
―최근 저서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에서 중국의 ‘반도체 자립화·내재화’ 속도가 매우 위협적 수준이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아직은 중국과의 기술적 격차가 크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 아닌가?
“중국 화웨이의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최근 ‘로직 폴딩’(logic folding)' 기술을 내놨다. 중국이 처한 ‘첨단장비 결핍’을 우회한 기술이다. 미국의 수출 규제로 반도체 회로를 미세하게 그릴 수 있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가 없으니 다소 뭉툭한 전 세대 장비(DUV)로 만든 칩을 수직으로 정밀하게 붙여(본딩) 성능을 구현했다. 쉽게 말해, 좁은 평면 주택에 촘촘하게 8명을 살게 할 수 없으니, 같은 면적의 주택을 위로 붙인 이층집을 만들어 8명이 살도록 한 것이다. 기존 패키징 기술을 활용해 스펙(트랜지스터 집적 밀도)상 최첨단 수준인 1.4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공정에 다다른 것이다. 화웨이는 2층을 넘어 4층, 8층 주택을 만드는 ‘2ⁿ 구조’ 방식으로 계속 적층할 수 있는 획기적 기술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 기술은 치명적인 여러 결함을 안고 있다. 겉보기에는 단위 면적당 트랜지스터 밀도가 첨단 공정과 맞먹지만, 적층 구조의 특성상 내부 누설 전류, 4배 이상의 전력 소비량, 과도한 발열 문제 등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그런 기술적 난제에도 양산이 가능한 수준의 수율(정상품 비중)의 제품을 곧 생산할 수 있다고 보나?
“중국의 진짜 목적은 이런 우회 기술로 세계 표준이 되거나 당장 세계 시장에 진출하자는 게 아니다. 자체 첨단 장비의 프로토타입(시제품)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가 짙다. 나아가 이런 적층·본딩 기술은 향후 인공지능용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로 전이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우리에겐 큰 위협이다. 중국 메모리 업체들은 이미 낸드플래시를 높이 쌓아본 경험이 축적돼 있다.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에서 기업 간 기술 장벽은 무의미하며, 화웨이라는 거대한 수요처가 연구개발 비용과 인프라를 제공하며 융합을 끌어내고 있다. 중국은 거대한 내수 시장과 물량 공세로 7나노 메모리 공정 수율을 순식간에 13%에서 60%까지 끌어올린 전례가 있다. 과거 배터리와 태양광 산업이 그러했듯이, 어느 순간 메모리 기술 격차가 급격히 좁혀질 수 있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기술에 대한 미국의 대중 견제와 수출 규제는 계속될 텐데, 과연 중국의 반도체 자립화, 내재화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까?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은 미국 중심의 거대한 생태계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적정 수준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면서 중국을 미국 중심 생태계 안에 묶어두는(록인 전략)데 실패했다. 중국은 미국의 고립 전략에 맞서 막대한 비용을 치르며 우회 기술을 축적하는 길을 택했다. 지난달 미·중 정상회담 때 엔비디아의 하위 버전(GPU)을 선물로 가져갔지만 중국은 이를 시큰둥하게 거절했다. 전면적인 대중 수출 규제가 오히려 중국에 자급자족 생태계를 구축할 명분과 동기를 부여한 셈이다. 우리가 누릴 반사이익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수 있다.”
―최근 디(D)램과 낸드플래시 등 범용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기록적인 슈퍼 사이클을 맞고 있다. 향후 전망은 어떻게 보나?
“현재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의 가장 큰 병목 구간이 메모리 시장이다. 구글·메타·아마존 같은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수요 기업들이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를 짓느라 메모리를 무섭게 사들이고 있다. 다만, 과거에는 메모리를 대량 생산해 범용으로 공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요구하는 압축, 양자화, 가속 등에 특화된 기술 대응이 필수적이다. 메모리도 커스터마이징(주문 제작)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이 때문에 설계부터 제조까지 맞춤형으로 이어지는 ‘ 메모리 파운드리’(CHBM)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한국의 양대 메모리 기업이 이런 기술적 전환 압력에 제대로 대응해야 기존의 메모리 강점을 유지하고 지능형 반도체 공급망에서 우위를 지켜낼 수 있다.”
―미국 자본시장을 중심으로 인공지능 투자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경고음 또한 높아지고 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천문학적인 자본 투입에 비해 인공지능 서비스가 창출하는 실질적인 수익 시그널이 아직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오픈에이아이(챗지피티)나 앤트로픽(클로드) 같은 대표적 인공지능 기업들은 기업공개 이전부터 수조 달러대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지만, 정상적인 경로의 흑자 전환 구조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보수적인 거대 자본부터 이탈할 수 있다. 과거 ‘배터리 캐즘’(chasm)과 같은 일시적 수요 정체기가 도래할 수도 있다. 이런 시그널이 포착되는 순간 메모리 수요와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역시 타격이 불가피하다.”
“비용과 운영 관점에서 보면, 미국 내 팹 건설은 최선의 선택이 아니다. 미국 현지 투자는 본국 대비 높은 건설 및 유지보수 비용, 전문 엔지니어 확보의 어려움, 소재·부품·장비 협력업체 생태계의 동반 이전 등에서 리스크가 많다. 그럼에도 국내 기업들이 투자를 강행하는 이유는 경제적 이유보다 지정학적 안보와 정치적 불확실성을 회피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미국의 반도체법 및 국가안보에 기반을 둔 인공지능 전략(‘스타게이트 프로젝트’)의 눈 밖에 날 경우 미래 시장 참여 자체가 원천 차단될 수 있다. 어느 정도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리스크를 제거하는 방향을 택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2023년 경기 용인 일대에 반도체 국가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가적 지원으로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만드는 대규모 사업인데, 성공의 핵심 변수는 무엇이라고 보나?
“반도체 메가 팹이나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를 안정적으로 가동하려면 전력과 용수 인프라가 가장 큰 고민거리다. 현재의 송배전망과 발전 인프라로는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단기 대응책으로 액화천연가스(LNG) 기반의 전력 공급을 확대하겠다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2030년대부터는 유럽과 선진국을 중심으로 탄소배출 국경세(CBAM) 제도가 전면화된다. 화력 기반 전기로 만든 반도체는 상당한 징벌적 관세를 맞게 된다. 탄소 제로 에너지가 필수적이지만, 원자력 발전소는 건설까지 최소 10~15년이 걸려 당장의 대안이 될 수 없고, 신재생 에너지(태양광·풍력)는 국내 용지 확보와 전력망 연계 속도가 터무니없이 느리다. 웨이퍼 세정에 쓰는 용수와 데이터센터 냉각수 모두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두 산업이 전력과 용수를 두고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인프라 문제를 해결할 합리적인 방안은 뭔가? 반도체 산업의 수도권 집중에 대한 비판 여론도 적지 않은데.
“반도체 산업에 대한 국가적 투자와 속도전은 불가피하다. 영·호남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이나 경기 남부까지 끌어오기 위해서는 전 국토를 아우르는 전력망(그리드)을 다시 짜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나 지역 주민의 반발을 민간 기업이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과거 정부가 경부고속도로나 고속철도(KTX)를 깔았던 것처럼, 정부와 공기업, 지자체가 합심해야 가능한 일이다. 반도체 팹과 데이터센터를 지어놓고 전력과 물이 부족해 제때 가동하지 못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정부가 속도전의 개념으로 인프라 확충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업계에선 반도체 전문 인력 수급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메모리 대기업을 제외하면 국내 반도체 생태계도 척박하다는 평가가 많다.
“생산 규모를 늘렸는데 일할 사람이 부족한 건, 인프라만큼이나 근본적이고 치명적인 위기 요인이다.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을 도입한다 해도 핵심 공정 설계, 연구개발, 시스템 제어를 담당할 고급 엔지니어는 대체가 불가능하다. 일찌감치 고급 해외 인력 유치와 국내 정착 프로그램 등 법 제도가 전향적 개방 단계로 진입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40~60대 장년층 경력자들도 재교육해서 가용 인력을 최대화해야 한다. 국내 소부장 중소기업이나 팹리스(설계 전문) 스타트업들이 기술력이 있어도 대기업에 납품하지 못하는 이유는 ‘트랙 레코드’(양산 검증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 주도로 공용 파운드리 플랫폼을 구축해 초기 안정화 단계까지 보조금을 지원하는 공기업 형태의 관리 주체를 만들 필요가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방한해 국내 주요 제조·플랫폼 대기업들과 전방위 협력 사업을 발표했다. 그는 “앞으로 한국이 바빠질 것”이라고 했는데, 무슨 속셈일까?
“한국의 첨단 제조 역량을 선점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라고 본다. 엔비디아는 단순한 인공지능 칩(GPU) 제조사를 넘어 ‘인공지능 토탈 솔루션’ 기업으로 변신 중이다. 현재 인공지능 산업계는 학습·추론 모델 서비스를 넘어 ‘실질적으로 돈이 되는’ 인공지능을 증명하라는 강한 자본 쪽 압박에 직면해 있다. 명확한 수익 모델 돌파구를 실제 산업·서비스 현장에 적용하는 피지컬 인공지능에서 솔루션을 찾을 것이다. 한국은 가전, 정보통신, 자동차, 화학, 바이오 등 전방위적인 제조 산업에서 최고 수준의 역량과 인프라를 보유한 독보적인 국가다. 엔비디아가 차세대 먹거리로 삼은 피지컬 인공지능 비즈니스 모델을 실험하고 완성하기에 가장 매력적인 테스트베드다. 엔비디아 생태계 종속 우려가 나오는데, 우리로선 기회 요인이 더 크다고 본다”
―정부는 ‘소버린 AI’를 주요 국정 과제로 내걸었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훨씬 앞서 있는 인공지능 모델을 막대한 예산을 들여 자체 개발·구축하는 것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소버린 AI는 국가적 생존을 위해 선택해야 하는 일종의 ‘필요악’이다. 국산 인공지능이 오픈에이아이나 구글 모델의 성능을 압도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국산을 써야 하는 영역들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국방·안보 영역이다. 우크라이나 및 중동 전쟁에서 팔란티어 인공지능 모델과 드론 무인 관제 시스템이 전쟁 판도를 바꾸는 것을 전 세계가 목도했다. 성능이 좋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군사 전술 데이터와 국방 기밀, 안보 인프라 통제권을 미국의 민간기업 서버로 전송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서버를 국내에 두고, 필요하면 정부가 완벽히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통신, 전력망, 항만, 용수, 공항 등 국가의 핵심 인프라 관제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핵심 사회기반시설의 가동 스케줄과 제어권을 해외 빅테크에 전적으로 내맡길 수는 없다. 전 국민의 의료·건강 데이터도 엄청난 가치를 지닌 자산이자 민감한 개인정보다. 자칫하면 통째로 인질로 잡힐 수 있다. 소버린 AI는 성능의 우위를 겨루는 수단이 아니라 국가의 디지털 주권과 통제력을 지켜내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봐야 한다.”
―최근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영업이익 기준으로 거액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해 논란이 일었는데.
“반도체 산업의 인력 유치 경쟁이 치열한 터여서 고액 인센티브가 고급 인력을 유인하고 머물게 하는 기제가 되는 게 사실이다. 다만, 경기 사이클을 타는만큼 영업이익 기준을 항구적인 대책으로 보긴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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