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100분의 1 오차와 전쟁”…비밀 연구시설서 엔진 개발[코어파워 KOREA]
2026.06.09 17:45
4월 가동 한화에어로 창원1사업장
0.4㎜ 결함까지 품질 검증체계 구축
차세대 전투기·무인기용 자립 도전
민수용 항공엔진 부품 사업도 확대
연간 직간접 경제효과 수십조 기대
2024년 증축을 마치고 올해 4월 본격 가동에 들어간 창원1사업장은 단순한 무기 생산 공장이 아니다. 2040년 2300억 달러(약 317조 원) 규모로 성장할 글로벌 항공엔진 시장을 겨냥해 차세대 전투기와 무인기용 엔진을 개발하는 곳으로 한국 방산이 항공엔진 기술 자립에 도전하는 핵심 거점이다.
이곳에서는 최근 양산 1호기가 출고된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에 탑재되는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의 F414 엔진을 비롯해 FA-50 경공격기에 장착되는 F404 엔진의 모듈 조립과 코어 조립, 최종 조립이 이뤄진다.
공장 내부는 정밀성과 데이터가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창원1사업장은 0.4㎜ 수준의 미세 결함까지 추적·검증할 수 있는 품질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작업자들이 사용하는 토크렌치에는 디지털 트윈 기술이 적용됐다. 규정에 맞게 작업이 완료되면 화면에 초록색 불빛이 켜지고 기준을 벗어나면 빨간색 경고등이 표시된다. 불합격 판정이 나오면 해당 작업은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한다.
생산 진척 상황과 재고 현황 역시 실시간으로 관리된다. 수십 년간 축적된 현장 경험과 노하우를 데이터로 전환해 ‘에러 프루프’ 체계를 구축했다. 품질 이상이나 공정 누락, 납기 지연 가능성이 발생하면 즉시 경고가 전달된다.
정형동 창원1사업장 생산담당은 “항공 엔진 부품은 1400도 이상의 고온 환경을 견뎌야 하는 티타늄 등 난삭재를 정밀 가공해야 한다”며 “제품에 따라서는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 수준인 마이크로미터 단위 오차까지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조립 라인을 지나 엔진 시운전실로 향하자 굉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천장에 매달린 F404 엔진에서는 출고 전 최종 연소 시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엔진 후방으로 뿜어져 나온 붉은 화염은 순식간에 푸른 불꽃으로 바뀌며 길게 뻗어나갔다. 시험 운전을 마친 엔진은 출고 후 공군 훈련기 TA-50에 장착될 예정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러한 생산 역량을 바탕으로 군용 항공 엔진 체계 종합 사업뿐 아니라 민수용 항공 엔진 부품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창원에서 생산된 부품은 보잉 737 MAX와 에어버스 A320neo 등 글로벌 베스트셀러 여객기에 탑재되는 엔진에도 사용된다.
하지만 창원1사업장의 가치는 현재 생산하는 엔진에만 있지 않다. 이곳은 한국 항공엔진 독립의 미래가 설계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신공장 한편에는 외부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약 250평 규모의 연구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신규 가스터빈 엔진 개발을 위한 인큐베이터다. 이곳에서는 현재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함께 2030년대 중후반 실전 배치를 목표로 5500lbf급 터보팬 엔진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해당 엔진은 대한항공이 개발 중인 저피탐 무인 편대기에 탑재될 예정이다. 이는 국내 기술로 처음 개발되는 중형 터보팬 엔진이다. 개발이 성공할 경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설계부터 생산까지 항공 엔진 전 체계를 독자 개발할 수 있는 국내 유일 기업으로 올라서게 된다.
최근에는 창원1사업장 엔진 시운전실에서 5500lbf급 엔진의 최초 시동시험(First Firing)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시동과 가속·감속·정지 등 기본 작동 성능을 검증하는 단계로 항공기 탑재 전 지상 시험의 첫 관문이다.
이 엔진이 탑재될 저피탐 무인 편대기는 향후 KF-21과 유무인 복합 편대를 구성해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항공기 플랫폼뿐 아니라 그 심장에 해당하는 엔진까지 국내 기술로 확보하려는 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우주항공청과 함께 민수용 확장까지 고려한 4500lbf급 무인기 엔진도 2029년 개발 완료를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항공엔진을 민·군 겸용으로 국내에서 독자 개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기반으로 협동전투무인기(CCA) 엔진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CCA 도입이 본격화될 경우 2040년대에는 전 세계적으로 3000대 이상의 협동전투무인기가 운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궁극적인 목표는 차세대 전투기용 국산 엔진 개발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방위사업청과 함께 2040년까지 1만 5000lbf급 터보팬 엔진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이 지금까지 해외 기술에 의존해 왔던 전투기 엔진 분야에서 독자적인 설계·생산 역량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엄주상 항공사업부 엔지니어링센터장은 “국내 항공 엔진 기술 수준은 설계·소재·시험·인증 역량 부족으로 선진국 대비 약 70% 수준”이라며 “향후 첨단 항공 엔진 개발에 약 6조 원이 필요하지만 성공할 경우 연간 수십조 원 규모의 직간접 경제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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