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소녀’…40여년 후 성냥소녀들의 파업 [김현아의 우연한 연결]
2026.06.10 05:02
매치 걸스 스트라이크(Match Girls’ Strike·성냥소녀들의 파업)라 불리는 파업이 일어난 것은 1888년 7월이다. 영국 런던 보에 위치한 브라이언트&메이 성냥공장에서 일하던 여성과 10대 소녀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하루 14시간의 장시간 노동, 열악한 임금, 부당한 벌금, 청결한 공간에서의 식사 불가, 백린으로 인한 괴사와 합병증 등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키자 사회운동가 애니 베전트를 비롯한 여러 활동가와 명망가들이 힘을 보탰다. 잡지에 기고하고 의회에서 연설을 하는 등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고 지원했다. 파업은 성공했다. 성냥제조인연합이 결성되었고 이후 노동자 집단의 조직화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이 파업이 ‘성냥팔이 소녀’와 연동된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읽었던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는 지금도 그 그림이 선명히 떠오른다. 추운 겨울에 성냥을 팔던 소녀는 언 몸을 녹일 양으로 팔던 성냥을 켠다. 한개비 그으면 케이크가 나타나고 또 한개비 그으면 할머니가 나타나고 마지막 성냥을 그은 소녀는 길바닥에서 죽는다. 세상에나 어린 소녀가 추위와 굶주림에 얼어 죽는데도 창문 안의 사람들은 맛난 음식을 먹으며 크리스마스를 즐긴다. 자비 없는 세상을 떠나는 것이 소녀는 행복했을까? 미소를 띠며 죽었으니 말이다.
안데르센이 이 이야기를 집필하던 시기의 덴마크는 지금의 복지국가가 아니었다. ‘성냥팔이 소녀’가 출간된 1845년 즈음 유럽 동북부에는 대기근이 찾아와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의 영아 사망자가 230명(출생아 1천명당)까지 치솟을 정도였다고 한다. 산업혁명은 유럽의 지역공동체를 해체했고 사람들은 도시로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었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한 가난한 이들은 빈민촌을 형성해 살았다. 어른이고 어린이고 모두 돈벌이에 나서야 먹고살 수 있었다.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공장은 수도 없이 생겨났고 소년과 소녀들은 일터로 갔다. 특히 성냥공장은 여자 어린이들을 많이 고용했다. 인건비가 쌌기 때문이다. 지금은 케이크에 불붙일 때나 사용할 뿐 일상에서 거의 쓸 일 없는 구시대의 유물이지만 19세기에 성냥은 생활필수품이었다. 부시와 부싯돌을 이용해 불을 피우던 걸 생각해보면 성냥은 혁신적인 발명품이었다. ‘성냥팔이 소녀’가 쓰인 무렵에는 백린성냥이라는 것을 주로 만들고 사용했다고 한다. 문제는 백린의 위험성이었다. 백린에 오래 노출되면 턱뼈가 무너져 내리는 화학중독 증상이 발현했다. 처음에는 치통, 독감과 같은 증세가 나타났다가 잇몸이 붓고 치아가 빠지고 턱뼈가 썩으면서 아래턱이 주저앉아 얼굴이 무너져 내리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성냥 머리를 예쁘고 동그랗게 만들기 위해 입안에 넣고 쪽 빨아서 모양을 잡았으니 백린중독이 발생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몸이 아프고 얼굴이 흉측해지기 시작하면 고용주들은 소녀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퇴직금 대신 성냥을 한보따리 안겨 내쫓았다. 쫓겨난 소녀들은 생계를 위해 성냥을 팔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얼굴이 망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다른 생계 수단을 구할 방법도 없었다. 그러니까 ‘성냥팔이 소녀’는 초기 산업화 시절의 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글이라 할 수 있겠다. 백린중독으로 인한 사망률이 20% 정도였다 하니 소녀는 얼어 죽지 않아도 직업병으로 죽었을 수도 있다. 미소 띤 얼굴은 어쩌면 백린중독 현상 때문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만들어진 표정일지도 모르겠다.
어떡하지? 성냥을 하나도 팔지 못했는데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아버지한테 혼날 거야.
이 대목이 나오는 걸 보면 소녀는 가정폭력에도 시달린 모양이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읽었을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는 산업화 시대 초기의 아동노동 착취에 대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동화라 할 수 있겠다. 풍요를 누리는 부유층과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던 노동자 계층의 계급 간극도 보여준다. 맨체스터 성냥공장에서 일하던 소녀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킨 건 그러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매치 걸스 스트라이크, 성냥공장 소녀들의 파업은 안데르센이 ‘성냥팔이 소녀’를 출간한 지 43년 후에 영국 성냥공장에서 일어났다. 이 파업은 근무 환경 개선과 백린 사용 금지의 시발점이 된다. 수많은 성냥팔이 소녀들이 죽고 나서야 일어난 일이다. 백린성냥 생산이 완전히 금지된 것은 1908년의 일이니 매치 걸들의 파업 이후로도 20년이 흐른 뒤였고 ‘성냥팔이 소녀’가 출간된 지 63년이 지나서다. 그로부터 10여년 후 인천에 있는 일본 자본의 성냥공장에서 조선인 노동자 200여명이 임금 삭감에 저항하며 파업을 벌였다. 다시 10년 후 인천 성냥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물가 폭등과 혹독한 대우에 맞서 동맹파업을 전개했다. 차곡차곡 이야기가 쌓이고 흘러 파업은 성공한다.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연대와 지지와 헌신으로 파업은 억압과 불평등을 깨트린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있을 때, 정의와 평화와 평등에 대한 꿈을 품고 있을 때 파업은 한 사회의 모순을 혁파하는 쇄빙선이 되기도 한다. 작가들은 종종 그 배가 나아갈 항로를 그린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그들의 글은 깃발이 되어 휘날리거나 손수건이 되어 흔들리거나 종종 만장이 될 때도 있다.
디즈니라면 돈 많은 왕자가 성냥을 다 사줘서 소녀는 신발도 사고 케이크도 먹으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냈을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소녀들의 저항과 연대로 삶의 현장을 바꾸어냈다. 어린 날의 내가 그런 배경을 알았을 리 만무하다. 동그란 얼굴에 빨간 옷을 입고 추워서 볼이 빨갛게 언 소녀가 가여워 마음이 시렸을 것이다. 길거리에서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을 만나면 도와야 한다,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 동화는 나에게 연민과 연대의 마음을 촉발했고 어른이 되어 파업의 현장에 합류하는 동인이 되기도 했다.
작가란 그러므로 자신이 본, 아프고 쓰라리고 잊고 싶지 않은 일을 충실히 쓸 일이다. 오늘 내가 본 세계의 고통, 부조리, 불합리, 부당함을 정직하게 가감 없이 쓸 일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백년 후에 이백년 후에 어쩌면 천년 후에 이루어지나니. 작가들의 꿈과 현장의 바람과 공동체의 이상이 맞물려 이루어내는 새로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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