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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이익’이 아니라 ‘혁신이익’이 맞다 [HERI초점]

2026.06.10 05:02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에스케이(SK)서린빌딩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도체 ‘초과이익(이윤)’ 분배 이슈가 계속 뜨겁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5일 외신과 인터뷰에서 “사회적 논의를 통한 초과이익 재분배가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협력업체 납품단가 조정 방안을 제시했다. 지난달 말에는 ‘한국형 사회연대 임금정책’ 도입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제안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8일부터 4주간 자사 제품을 사는 소비자에게 구매 금액의 20%를 디지털 온누리상품권으로 돌려주는 상생행사를 시작했다. 노사가 합의한 상생협력의 일환으로, 총 지급규모는 4천억원 수준이다. 삼성전자 노조는 지난달 파업카드를 앞세워 수백조로 예상되는 영업이익의 일부를 성과급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이를 계기로 반도체 초과이익의 사회적 배분 논의가 본격화했다. 주주, 협력·하청업체, 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위한 ‘공정 분배론’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한국에서 ‘초과이익’ 용어가 본격 등장한 것은 2011년 동반성장위원장을 맡았던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제안한 ‘초과이익공유제’이다. 대기업-협력사 간 하도급 거래에서 (이익)목표를 초과 달성했을 때 사전에 합의된 틀에 따라 성과를 나누는 동반성장 모델이다. 역사적으로 1920년대 미국 할리우드 영화산업에서 처음 고안됐다. 이후 크라이슬러, 롤스로이스 등 자동차업계, 미식축구리그, 구글과 애플 등 빅테크로 확산했다. 기업이 뼈를 깎아 만든 이익을 억지로 빼앗아 나누자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기업 혁신을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시장제도이다.

그런데 ‘초과이익’이라는 말에서는 “정당한 수준을 넘어선”, “비정상적”이라는 뉘앙스가 풍긴다. 이는 “너만 혼자 먹지 말고, 나눠 먹자”는 배분 요구를 당연시하는 풍조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천문학적 영업이익의 1등 공신인 인공지능(AI)용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개발한 과정은 횡재나 요행과는 거리가 멀다. 2012년 만년 적자에 신음하던 하이닉스를 인수하는 승부수를 던진 이후 10년 넘게 숱한 시행착오와 좌절을 딛고 이룩한 ‘언더독’의 기적 같은 성과이다.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복권 당첨금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불과 1년 반 전까지만 해도 ‘위기론’이 넘쳐났다. 대만의 티에스엠씨(TSMC)에 밀리고, 파운드리사업(반도체 위탁생산)에서 고전하고, 메모리 사이클이 바닥인 최악의 상황이었다. 무기력한 경영 리더십은 위기감을 더했다. 2025년부터 극적인 실적 반등을 두고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하지만 지난 수십년 동안 세계 1위 메모리 업체의 위상을 지켜온 역량과 저력이 없었다면, AI시대가 가져온 기회를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반도체 대기업들의 천문학적 이익은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얻은 혁신의 대가이다. ‘초과이익’은 이런 의미를 온전히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혁신이익’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혁신이익’이라는 말은 백가쟁명식 분배 논쟁에서 방향키 역할을 한다. 반도체 ‘혁신이익’은 수백조 영업이익을 가져온 원동력인 혁신을 만들고,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 최우선으로 투자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반도체로 인한) 초과세수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데 써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푼 두푼, 이리저리, 십시일반 하듯 나눠주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혁신이 지속하지 않으면 얼마 못간다. 반도체 호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그 누구도 장담 못한다.

‘혁신이익’은 기존 분배 논의에서 제기된 내용도 훌륭히 담아낸다. 연구개발(R&D)과 설비 투자는 혁신의 지속을 위해 필수이다. 수많은 협력·하청업체와 노동자는 혁신 생태계를 이루는 핵심 요소다. 이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과 재투자가 이뤄져야 지속적인 혁신이 가능하다. 정부는 금융·세제 등의 지원을 통해 ‘혁신의 후원자’ 역할을 한다. 지역사회는 전력·용수 등 혁신에 필요한 인프라를 제공한다. 이 모든 것이 국민과 사회의 견고한 지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혁신이익’의 일부를 사회 공동체를 위해 환원하는 것은 단순한 자선이나 시혜가 아니라, 미래 혁신을 지속하기 위한 필수 요소다.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다양한 배분 요청도 혁신이라는 관점에서 연관성과 우선순위를 따질 수 있다. 노동부 장관이 제시한 협력업체 납품단가 조정이나 한국형 사회연대 임금정책 지원도 혁신과의 연관성을 검토하면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남광주에 새로운 반도체 공장을 짓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현재 삼성과 SK가 구축 중인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는 전력공급이 어려운 데다, 수도권 집중을 심화한다는 이유로 반대가 거세다. 지방균형발전을 위한 지방 이전론 또는 분산론이 제기되며,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호남이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돼 왔다. 하지만 지방은 전력, 용수, 교육·주거 같은 정주요건 등이 미흡하고, 우수인력도 수도권을 선호한다는 이유로 기업들은 난색을 보여왔다.

지속가능한 혁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지방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전혀 새로운 길이 열린다. 전력공급의 불확실성은 반도체 공장에 치명적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반도체 공장은 군사 공격, 테러, 대규모 정전, 화재, 태풍·홍수·지진·가뭄 등 예기치 않은 위험에 매우 취약하다. 지방 반도체 생태계 구축은 이런 리스크 요인을 일거에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혁신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다. 이미 반도체 생태계가 구축된 수도권을 벗어나 지방에 새로운 거점을 구축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 부담이 뒤따르지만, 천문학적 규모의 ‘혁신이익’이 발생한 현 시점이 천우신조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정부와 지방정부의 파격적 지원은 덤이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지방공장 건설 의지를 분명히 하더라도 지방이 전력, 용수, 정주요건 등과 같은 필수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혁신이익’ 개념은 경제안보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한국에서 ‘초과이익’ 논란이 계속 확산하면, 외국 거래기업과 정부도 자극할 수 있다. “우리도 초과이익을 나눠 먹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유혹이 강해질 수 있다. 2022년 제정된 미국 칩스법에는 “미국 정부의 보조금 등을 받고 공장을 지은 기업이 예상 수익을 초과할 경우 그 일부를 미국 정부와 공유한다”는 ‘업사이드 쉐어링’ 조항이 들어있다. 미국에 공장을 지은 기업이 적용 대상이지만, 미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기업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하이닉스는 반도체 생산량의 70% 이상을 미국으로 수출한다. 설마하며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금은 이란과의 전쟁에 발이 묶여 정신이 없지만, 전쟁이 일단락된 뒤에는 무슨 일을 벌일지 누구도 모른다. 한국 정부부터 뜻이 모호한 반도체 ‘초과이익’ 대신 ‘혁신이익’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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