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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한인 사업가 납치·살해' 주범 검거…도주 1년 9개월 만

2026.06.09 17:38


▲ 2016년 필리핀 경찰관들에 의해 납치된 후 살해된 한인 사업가 고(故) 지익주(당시 53세) 씨의 추모식

2016년 필리핀에서 발생한 한인 사업가 고(故) 지익주 씨 납치·살해 사건의 주범으로 유죄가 확정된 전직 필리핀 경찰관 라파엘 둠라오 3세가 도주 끝에 붙잡혔습니다.

외교부에 따르면 현지 시각 오늘(9일) 오전 5시 15분쯤 필리핀 마닐라에서 사건의 주범인 둠라오가 필리핀 경찰에 의해 검거됐습니다.

현지 주요 매체 GMA뉴스는 경찰이 필리핀 케손시티 파송 타모의 한 주택에서 둠라오를 체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 '고(故) 지익주 씨 피살 사건' 상원 청문회에 나온 라파엘 둠라오

사건 당시 필리핀 경찰청 마약단속국 팀장이었던 둠라오는 지난 2016년 10월 필리핀 북부 루손섬 앙헬레스시에서 자신의 하급자인 현직 경찰관 2명과 함께 한국인 사업가 고 지익주 씨를 자택에서 납치한 뒤 경찰청 주차장으로 끌고 가 살해했습니다.

이 사건은 필리핀 정부의 이른바 '마약과의 전쟁' 국면에서 현직 경찰들이 한국인 납치·살해 사건에 가담한 사례로 드러나면서, 필리핀 사회는 물론 현지 교민 사회에도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특히 마약 단속을 빙자해 피해자를 납치하고 금품을 요구한 이른바 '셋업' 범죄로 지적되면서 양국 간 주요 외교 현안으로도 다뤄져 왔습니다.

이후 사법 절차는 길게 이어졌습니다.

2023년 1심 재판부는 납치·살해에 가담한 공범 2명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주범으로 지목된 둠라오에게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후 2024년 6월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단을 뒤집고 둠라오에게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둠라오는 항소심 재판부가 인신 구속을 위한 체포영장을 곧바로 발부하지 않은 상황을 틈타 형이 집행되기 전 도주했습니다.

결국 같은 해 9월 체포영장이 발부됐고, 필리핀 대법원은 지난해 7월 둠라오의 상고를 기각하며 항소심의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판결을 확정했는데, 이후에도 행방이 묘연했던 둠라오는 체포영장 발부 1년 9개월 만인 오늘 필리핀 경찰에 검거됐습니다.

이번 검거가 이뤄지기까지, 필리핀 정부가 움직일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힘을 쓴 데는 유족 측의 진실 규명을 위한 치열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 필리핀 경찰에 살해된 고(故) 지익주 씨의 부인 최경진 씨

최 씨는 2016년 10월 남편이 납치·살해된 이후부터 약 10년 간 사건 진상 규명과 관련자 처벌을 위해 고군분투해왔습니다.

필리핀 관영 PNA는 최 씨가 직접 재판에서 증언했을 당시 검찰이 최 씨의 증언을 "몸값 전달 과정 등을 입증하는 데 중요하다"고 봤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후 2023년 1심에서 공범 2명은 무기징역을 받았지만 주범으로 지목된 둠라오가 무죄를 선고받자, 최 씨는 당시 박진 외교부 장관 앞으로 사건 실체 규명과 피해 배상을 도와달라는 서한도 보냈습니다.

이러한 최 씨의 노력은 이후 한국 정부가 필리핀 측에 사건 해결과 형 집행을 거듭 요청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배경이 됐습니다.

앞서 박근혜 정부는 이 사건이 발생하자 2017년 2월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방한한 살바도르 파넬로 필리핀 대통령실 법무수석(장관급)을 접견하며 철저한 진상 규명과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 등을 요구했습니다.

파넬로 수석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당시 필리핀 대통령의 사과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철저한 수사로 범인을 엄중히 처벌하고 유족 측 바람대로 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2017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이 마닐라를 방문하고, 이듬해 6월 답방 형태로 두테르테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양국 정상이 지 씨 사건을 언급하며 필리핀 내 한국민 안전을 위해 협력하자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제8차 한-필 정책협의회(2023년 2월), 한-필리핀 외교장관회담(2023년 7월), 한-필 외교장관회담(2024년 8월) 등에서 지 씨 사건의 신속한 사법 절차 진행 등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도 주범이 종신형을 선고받고 형 집행 전 기간을 틈타 도주한 사실이 지난 2024년 9월 뒤늦게 알려져 파문이 일자 2024년 10월 정상회담에서 이례적으로 주범 체포 공조 등의 내용까지 언급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주범 도주와 양국 사법 공조 부실 등을 지적하는 언론 보도 이후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이 뒤늦게 사실관계 파악에 나서는 등 늑장 대응 비판이 제기됐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쟁점이 된 바 있습니다.

당시 외통위 야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과 한정애 의원을 중심으로 문제 제기가 이어졌고, 외교 당국이 재외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장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랐습니다.

이후 이재명 대통령도 올해 3월 필리핀 국빈 방문 당시 지 씨 사건 관련 범인을 빨리 잡아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마르코스 대통령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오늘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주필리핀 한국대사관과 대사관 내 코리안데스크, 필리핀 경찰청이 긴밀하게 공조한 끝에 범인을 검거했다"고 밝혔습니다.

(사진=필리핀한인총연합회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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