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안러경중’ 과시…‘한국 패싱’ 노골화
2026.06.09 21:43
북,중과 경협 등 ‘전략 파트너’
러와 밀착 이어 ‘버팀목’ 마련
중, 핵 묵인에 대북 압박 약화
정부, 외교·안보적 난제 봉착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8~9일 방북을 계기로 북한이 중국의 ‘글로벌 전략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면서 한국이 외교·안보적 난제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으로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밀착한 북한은 이를 지렛대 삼아 중국과 경제를 비롯한 다방면의 협력을 논의하며 양국 관계를 격상시켰다. 핵 보유국 지위 확보가 목표인 북한이 두 강대국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경제·안보적 버팀목을 마련하면서 북한 비핵화를 위한 한국의 대화·압박 수단은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번 시 주석의 방북에는 미·중 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 동북아 지역 내에서 높아진 북한의 전략적 위상이 반영돼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9일 북·중 정상회담을 두고 “전략적 협조 관계 발전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력사적인 계기”라며 양국 관계가 전통적 친선 수준을 넘어 한층 격상됐음을 과시했다.
시 주석은 전날 회담에서 “중·조(중국·북한) 양국은 전략적 협조와 협력을 강화하고 각자의 주권·안전·발전 이익을 단호히 수호하며 지역의 평화와 발전을 공동으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고 중국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시 주석은 전날 북한 노동신문에 게재된 기고문에서도 “(중국은 북한과) 지역과 나아가서 세계의 평화와 안정, 발전과 번영을 위하여 더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했다.
2019년 6월 시 주석이 방북해 열린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문제가 주로 언급됐는데, 이번엔 의제가 지역·국제적 차원으로 확대된 게 특징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에 북한은 한반도에 국한된 관리 대상에서 지역·국제 현안의 공조·관리 대상, 대미 견제 전선의 파트너로 그 위상이 커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동시에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인 한반도 비핵화가 언급되지 않고, 북·중 경제 협력 확대가 논의되며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묵인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비핵화 압박 수단 사라져…전문가 “바늘구멍 뚫는 외교적 노력 필요”
시 주석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국경 전면 개방을 통한 관광, 무역뿐 아니라 법 집행, 군대, 농업, 건설, 과학기술, 의료보건, 청년, 우호도시 등 교류·협력을 강화하자고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중국이 대북 제재 위반을 피해갈 수 있는 회색 지대에 있는 분야들에 대한 지원을 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북한의 위상 강화는 러·우 전쟁 참전을 계기로 한 북·러 밀착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 주석 방북에는 러시아를 견제하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시 주석에게 “조·중 친선을 가장 중대한 제1의 전략적 사업으로 견지”하겠다고 했지만, 북한은 향후 중·러 사이를 줄타기하며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뜻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는 “두 나라 사이에 맺어진 동맹적 성격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최대로 중시”하겠다고 한 바 있다.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유라시아센터장은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으로 러시아와 동맹에 준하는 관계를 맺고 전략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전략적 자율성도 높아졌다”고 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석좌교수는 “북한의 ‘안러경중’(안보는 러시아, 경제는 중국)이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으로선 외교·안보적 난제를 안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고수하는 가운데 중국·러시아와의 전략적 관계는 강화하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견인할 수단이 사라지고 있어서다. 양 석좌교수는 “한국의 실용적 대미, 대중 외교가 절실하다”며 “한반도가 강대국의 대결장이 되지 않도록 남북관계 바늘구멍 뚫기 노력도 해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현 상황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면 ‘한국 패싱’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트럼프 행정부와 철저히 공조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박일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한반도 비핵화는 다수의 유엔 안보리 결의로 확인된 국제사회의 일관된 목표이며, 우리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흔들림 없이 견지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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