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북중미 월드컵 코 앞인데 잠잠… 스포츠 마케팅 효과 줄어든 세 가지 이유
2026.06.09 10:57
②경쟁 콘텐츠 증가로 단체 관람 문화 축소
③승리가 주는 감동에 생긴 내성
오는 12일부터 7월 20일까지 열리는 2026 북중미 월드컵 개막일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유통·식품업계 분위기는 예상보다 차분하다. 개막일 오전 11시(한국시간)부터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가 시작되지만, 과거 월드컵 같은 대규모 마케팅 경쟁이나 응원 특수는 찾아보기 어렵다. 편의점 업계가 맥주를 비롯한 일부 주류와 가공식품 할인 행사에 나섰지만 평상시 프로모션과 비교해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형마트와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비슷한 분위기다.
일부에서는 한국 대표팀 경기가 낮 시간대에 편성된 점이 월드컵 특수를 반감시켰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현장에서는 경기 시간보다 국민적 관심도 자체가 예전만 못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2010년 동계올림픽엔 김연아 선수가 대낮에 금메달 경기를 치렀고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금메달 경기 이후로 축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외식·식품 소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최근에 열린 2026 동계올림픽은 밤 경기였는데도 흥행했다고 보기 어려웠다”면서 “낮 경기냐 밤 경기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심 자체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9일 유통·식품업계가 꼽는 월드컵 특수 실종의 배경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사람들이 국가 간 승부보다 개인 서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국가대표팀의 승리가 곧 국민적 자부심으로 연결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가 대항전 자체보다 특정 선수 개인의 서사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린다는 분석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우리나라가 이겨야 한다는 집단주의적 정서가 강했지만 지금은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가 더 중요해진 시대”라며 “국가대표 성과가 개인의 자부심으로 직결되는 경우가 줄어들었고, 좋아하는 선수나 종목을 중심으로 팬덤이 형성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했다.
이에 따라 스포츠 마케팅도 선수 발굴에 초점을 맞추는 게 효율적이란 평가도 나온다. KB국민은행이 피겨 선수 김연아를 조기에 후원하고 발탁했던 사례나 롯데그룹이 스노보드 선수 최가온을 후원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한 유통사 관계자는 “2026 동계올림픽 때도 최가온 선수가 금메달을 딴 후 그의 과거 이야기가 더 화제를 모았다”며 “단순히 이벤트 기념행사를 하거나 국가대표를 후원하는 것보다 선수 한 명을 찍어서 개인의 성장 과정에 집중하는 편이 마케팅 효과가 좋다”고 했다.
경쟁 콘텐츠가 늘며 단체 관람 문화가 축소된 것도 영향을 줬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월드컵이나 올림픽은 사실상 전 국민이 함께 시청하는 이벤트였다. 거리 응원은 물론 회사와 학교에서도 주요 경기를 함께 시청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유튜브와 OTT(over-the-top media service), 소셜미디어(SNS),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가 일상 속으로 들어오면서 국민의 관심이 분산됐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공중파 TV가 사실상 유일한 창구였지만 지금은 누구나 각자 원하는 콘텐츠를 소비한다. 모두 같은 경기를 보는 문화가 약해졌다”면서 “대낮에 사무실에서 다 같이 월드컵을 보는 광경을 젊은 사원들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며 그런 사무실도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승리가 주는 감동에 내성이 생긴 것도 원인이다.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사실이 역설적으로 관심도 하락의 배경으로 꼽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올림픽 메달 하나, 월드컵 16강 진출만으로도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제 대회 성과가 어느 정도 당연한 결과로 인식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 현상으로 설명한다. 반복되는 성공에 익숙해지면서 동일한 성과가 주는 감동과 만족감이 점차 줄어드는 현상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메달 한 개에도 온 국민이 열광했지만 지금은 기대 수준이 높아져 비슷한 성과로는 큰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며 “스포츠 이벤트가 소비를 촉진하는 효과도 함께 약해졌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팍팍한 삶 속 커진 회의주의가 영향을 준다는 분석도 있다. 고물가와 주거비 부담, 취업난 등으로 생활 여건이 악화되면서 스포츠 이벤트가 주는 심리적 보상 효과도 예전보다 줄어들었다는 분석이다. 과거에는 국가대표팀의 선전이 국민들에게 희망과 자부심을 제공했다면, 최근에는 ‘국가가 잘돼도 내 삶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인식이 일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월드컵이나 올림픽이 열리면 무조건 소비가 늘어나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며 “앞으로는 기업들이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 배정하는 예산이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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