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부지·전력·용수 포화상태…반도체 제2클러스터로 호남 낙점
2026.06.09 19:26
패키징 생산능력 HBM 게임체인저
수요 급증 발맞춰 공장신설 불가피
정부, 지방균형 발전 드라이브에
현대차도 새만금에 AI 기지 구축
이에 따라 반도체 산업의 수요도 바뀌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추론 능력 향상을 위해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초고성능 AI 반도체를 자사의 사업 모델에 맞춰 제작하는 주문형반도체(ASIC) 형태로 주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에 탑재되는 HBM4에서 연산 보조를 담당하는 베이스다이가 주문형 형태로 제작되기 시작했고 HBM4E, HBM5로 갈수록 ASIC의 수요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ASIC 반도체는 고객사의 주문에 맞춰 설계되고 제작되기 때문에 첨단 패키징 능력이 요구된다. D램 등 여러 개의 칩이 하나의 칩처럼 결합하는 능력에 따라 고성능 반도체의 성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변화하는 AI 반도체 시장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새로운 첨단 패키징 공장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신규 패키징 기지 건설은 온양캠퍼스 구축 이후 35년 만이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전 공정 라인을 포함하면 평택캠퍼스 착공 이후 11년 만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산업 생태계의 물리적 여건이 한계에 직면한 영향도 있다. AI 혁명에 맞춰 설비를 대규모로 늘리려 해도 부지를 찾기부터 마땅하지 않은 형편이다. 수도권 지역의 전력 및 용수 공급 여력 역시 여유가 사라진 상황이다. 여기에 지역 균형 성장을 추구하는 정부가 비수도권 투자를 지원할 의사가 상당해 반도체 산업을 확장할 적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삼성전자는 이미 경기 용인·화성·평택에 메모리·파운드리 설비와 연구개발(R&D) 센터를 가동하고 있다. 반도체 제작의 후공정에 해당하는 ‘패키징’ 설비는 이미 충남 천안과 아산 등 충청권까지 뻗어간 상태다. SK하이닉스 역시 경기 이천과 용인뿐 아니라 충북 청주에 생산 거점을 두고 있다. 아산만에 위치한 평택시를 기점으로 반경 50㎞에 반도체 투톱의 국내 생산시설이 모두 모여 있는 셈이다.
반도체 클러스터를 지방에 조성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것이 업계 안팎의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실제 대만의 TSMC의 경우 생산 거점이 수도권 중심의 신주단지에서 시작해 남부 가오슝까지 뻗어 있다”며 “일본도 규슈 남서부 끄트머리에 있는 구마모토에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고 혼슈 동북부 센다이를 반도체 산업 거점으로 키우지 않느냐”고 말했다. 최첨단 R&D나 실증 설비는 인재가 모이기 쉬운 대도시에 위치하더라도 생산 클러스터는 얼마든지 다른 곳에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수도권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지역 균형 성장에 정책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동안 지역 균형 성장에 대해 “배려나 시혜가 아니라 국가의 생존을 위한 전략”이라고 말해왔을 뿐 아니라 10대 그룹 총수를 만난 자리에서도 “길게 보면 지방에 오히려 더 큰 기회가 있겠다”고 지역 투자를 독려했다.
앞서 현대자동차그룹이 전북 새만금 일대에 9조 원을 투입해 수소와 로봇, AI 글로벌 전진기지로 만들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 같은 흐름의 연장선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포화된 수도권을 벗어나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지원을 받는 일석이조를 누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산업통상부 역시 지역 광역권별로 성장 전략을 짜는 ‘5극3특’을 핵심 추진 과제로 내놓고 기업이 지방으로 사업장을 이전하는 경우 다양한 세제 혜택은 물론 규제 개선, 인력 양성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도 하반기 중 수도권에서 멀수록 전력요금이 저렴해지는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를 도입해 산업계의 비용 부담을 덜어낼 예정이다.
지역 정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가 구체화될 경우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은 8일 광주시의회에서 열린 ‘반도체 팹 유치 전략 토론회’에서 “광주전남은 여러 가지 기반 시설이 잘 갖춰진 후보지”라며 “머지않아 반도체 공장과 관련해 좋은 소식이 들릴 것”이라고 언급했다. 광주를 지역구로 둔 정진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국회 차원에서 예산과 제도를 지원하고 산업 인재와 에너지·용수 문제를 전략적으로 묶어 지원 대책을 내야 한다”며 “광주가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도약하도록 주어진 역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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