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간 전
스타벅스와 김충열씨의 눈물 [전국 프리즘]
2026.06.09 19:00
하늘에 빌었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지 못하게 해주세요.’ 김충열(68)씨는 1993년부터 매일 밤 물 떠놓고 빌었던 아내 이야기를 하다가 울먹거렸다. 군에서 남편의 판결문조차 떼어주지 않는 것을 보고, ‘반공법 위반자’라는 빨간 낙인이 두 딸과 아들을 옭아맬까, 아내는 빌었다. 그런 아내를 지켜보며 무너진 김씨의 마음은 33년 뒤 눈물로 흘러나왔다.
김씨는 1980년 5월 전남 영암군 시종면에서 방위병으로 근무했다. 5·18 당시 광주 시민군이 시종면에 오자, 음식을 나눠 주며 그들을 격려했다. 같은 해 6월 말~7월 초 경찰에 끌려갔다. 그는 라디오를 통해 북한 방송을 듣고 북한을 찬양했다는 누명을 쓰고 군 법정에서 반공법 위반으로 2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당시 후유증으로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평범한 청년이 시민군에게 음식을 줬다는 이유로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고 2년을 감옥에 갇혔다. 2년 복역 뒤, 호남에 있으면 또 감옥에 끌려갈 것이라는 주변의 우려에 고향을 떠나 부산과 경남에서 살았다. 부산에서 사는 10년 동안 사복 경찰들이 자주 찾아오자 집을 여덟번 옮겼다. ‘반공법 위반자’라는 사실이 주변에 알려져 아이들도 ‘낙인’이 찍힐까 두려웠다. 그는 올해 어버이날에야 두 딸과 사위들에게 반공법 위반으로 2년 복역한 사실을 밝혔다.
국가가 인정하고, 사람들이 지지해줄 때 그는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2023년 광주시로부터 보상을 신청해보라는 문자가 왔을 때, 친구가 초등학교 동창들이 모인 단체 메신저 방에 김씨의 5·18 유공자 인정 사실을 알리며 ‘충열이 고생했다’고 써줬을 때 그는 펑펑 울었다. 이번엔 기쁨의 눈물이었다.
그는 “그땐 시대가 그랬으니까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군사 법정에서 허위 증언을 한, 지금도 이름을 모르는 방위병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어떻게 용서가 되느냐’는 물음엔 “시대가 그랬으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만 했다. 누군가를 원망하는 대신 명예 회복에 힘썼다. 지난달 4일 광주지법에 재심을 신청했다.
5월18일 당일, 스타벅스코리아는 김씨가 ‘비극의 역사’라고 칭했던 46년 세월을 우습게 만들었다. 광주에 있는 수많은 ‘김충열들’과 그들의 눈물을 위로해왔던 시민들을 조롱했다. 분노는 불매로 표현됐다. 지난달 22일 광주 스타벅스 매장 3곳을 가보니 손님이 별로 없었다는 스케치 기사를 썼다. 지난 8일 그때 찾았던 매장 한곳을 다시 가봤다. 손님은 그때보다 2배 많았지만 빈자리도 여전히 많았다. 매출에 영향을 줄 정도의 ‘불매’는 3주째 이어지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대화를 나눈 광주 지역의 한 고등학교 학생회장은 “학교 현장에는 여전히 5·18을 희화화하고 장난으로 소비하는 문화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사실이 아닌 걸 알면서도 학생들이 ‘북한군 침투설’ 등을 장난스럽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자녀들을 충청도에 있는 학교로 보낸 중학교 2학년 때 은사님은 “광주에 있을 때는 딸이 5·18 계기 교육을 받았는데, 지금 학교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딸이 속상해한다”며 5·18 계기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현장의 목소리를 방치하지 않아야 불매의 의미가 사회에 안착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1일 김씨와 통화를 했다. 그는 인터뷰 뒤 용기를 내어 당시 중대장 연락처를 수소문했다고 한다. 자신의 억울함을 증언해줄 수 있는 사람 찾기에 직접 나선 것이다. 연락처를 구했지만 중대장은 이미 사망한 뒤였다. 김씨는 올해 68살이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부터 정성호 법무부 장관까지 5·18을 조롱한 스타벅스코리아에 즉각적인 분노를 표했다. 조롱의 대상이 된 역사의 피해자를 구제하는 일에도 속도가 필요하다. 최근 광주지법에서 광주지검에 김씨 재심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고 한다. 김충열씨는 다시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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