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관리위원회는 어떻게 몰락했나
2026.06.09 17:40
이른바 ‘잠실 시위’가 연일 계속되는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은 어제(6월 8일) 청와대에서 ‘4부 요인’과 만나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 조정식 국회의장, 조희대 대법원장, 김상환 헌법재판소장, 김민석 국무총리 등이 참석했다. 통상 ‘5부 요인’이지만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사태 책임을 지고 사퇴해 대통령과 ‘4부 요인’ 회동이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일 “국민의 참정권은 어떠한 이유로도 제한되거나 침해되어서는 안 됩니다”라는 제목으로 SNS에 올린 글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국가 5부 요인으로 규정된 이유는 선관위가 행정부·입법부·사법부와 마찬가지로 그에 상응하는 권한과 의무, 책임을 지닌 독립기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의 말대로 중앙선관위원장은 통상 '5부 요인'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5부 요인은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제외하고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그리고 독립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원장을 함께 일컫는 관행적 표현이다. 선관위원장은 국가 행사 등에서 통상 서열 5위의 예우를 받는다. 이 서열은 법령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행정안전부의 '정부의전편람' 등을 통해 관례로 굳어졌다. 그만큼 중요 국가기구로 인정받고 있다.
헌법기관로서의 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 114조에 규정돼 있다. 중앙선관위는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합의제 기구다. 독립성 보장을 위한 장치로 대통령이 3명을 임명, 국회가 3명을 선출, 대법원장이 3명을 지명하게 한다. 중앙선관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호선한다. 모두 헌법 규정이다.
하지만 이상한 구석이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어제(6월 8일)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밝힌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의 사의를 받아들여 지명을 해제했다. 대법원장이 위원장을 직접 임명할 권한은 없다. 그러나 대법원장은 위원장이 될 '위원'을 지명하고 또 해제할 수 있다.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선관위원으로 지명하면 그 대법관은 곧 위원장으로 호선되는 관행이 굳어졌다. 그래서 대법원장은 사실상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장 인사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선관위원장은 독립 헌법기관의 수장이지만, 그 거취가 사법부 수장의 손에 달려 있는 구조다.
노태악 위원장의 사례는 이 기형적 구조를 압축해 보여준다. 2022년 김명수 대법원장에 의해 선관위원에 지명된 그는 바로 선관위원장으로 호선됐다. 그런데 2026년 3월 대법관 임기가 끝났다. 대법관에서 물러나면 관행상 위원장직에서도 함께 물러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3월 그 후임으로 지명한 천대엽 대법관의 국회 인사청문이 표류하면서 노 위원장은 대법관이 아닌 신분으로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터질 때까지 석 달 넘게 위원장 자리를 지켰다.
이런 관행 때문에 역대 중앙선관위원장 자리는 대부분 대법관이 차지해 왔다. 현행 헌법은 위원장을 선관위원 중에서 호선하도록 했지만, 실제로는 대법원장이 자기 몫으로 지명한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아 온 것이다. 이 관행의 뿌리는 1960년 제2공화국 헌법이다. 당시 헌법은 중앙선거위원회를 독립 헌법기관으로 두면서 대법관의 위원 겸직을 명문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1962년 제3공화국 헌법에서 그 겸직 조항이 사라졌고, 현행 헌법(1987년 제9차 개헌)에는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호선한다"는 규정만 남았다. 대법관이 선관위원장을 겸직하는 근거는 이미 60여 년 전에 사라졌는데도 그 관행만 남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독립 합의제 기구인데 사법부가 장악…폐쇄적 운영
선거관리위원회를 사법부가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구조는 위원 인적 구성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8일 지명 해제된 노태악 전 선관위원장까지 포함해 이번 6.3 지방선거를 관리한 중앙선관위원 9명은 헌법 규정에 따라 대통령 임명 3명, 국회 선출 3명, 대법원장 지명 3명으로 짜였다. 행정부·입법부·사법부가 위원을 3분의 1씩 나눠 상호 견제가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위원 면면을 보면 한쪽으로 쏠려 있다. 9명 가운데 6명이 판사이거나 법조인 출신이다. 대법원장이 지명한 노태악, 박순영, 김대웅 위원은 모두 현직 또는 전직 고위 법관이다. 대통령이 임명한 전현정 위원과 국회가 선출한 조병현 위원도 판사 출신이다. 노태악 위원장 사임 뒤 직무대행을 맡은 위철환 상임 위원은 변호사 출신이다. 선관위원 임명 주체는 3부로 나눠 놓았지만, 위원회의 3분의 2가 고위 법관이나 법조인이다.
현 선관위원 중 법조 출신 아닌 사람은 정치학 교수 2명(윤광일·조성대)과 선거행정 관료 출신 1명(남래진)뿐이다. 시민사회나 일반 유권자를 대표할 인선은 찾아보기 힘들다. 선거를 관리하고 정당과 정치자금 사무를 관장하며, 유권자와 소통해야 하는 합의제 기관이 사실상 법률가 집단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구성이다.
이해충돌 우려도
이 때문에 선거 결과를 다투는 소송이나 선거 범죄의 최종 심판자가 같은 법관들이라는 점도 문제가 된다. 즉 관리자와 심판자가 같은 직역에서 나오는 이해충돌 우려다. 권력분립과 독립을 명분으로 3:3:3 인선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지만 결국 법조, 그중에서도 법관이 다수를 차지하는 구조가 선거관리위원회를 겉으로만 독립적인 헌법기구로 만들었다. 그리고 실상은 사법부처럼 외부 감시와 견제는 받지 않는 폐쇄적 조직이 됐다.
법관 쏠림 현상은 중앙선관위에만 그치지 않는다. 선거관리 조직 전체가 사실상 법관을 정점에 둔 피라미드 형태로 짜여 있다. 선관위는 중앙→시·도→구·시·군→읍·면·동의 4단계로 조직돼 있는데, 행정구역에 대응해 17개 시·도선거관리위원회와 255개 구·시·군선거관리위원회를 둔다.
중앙선관위원장을 대법관이 맡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도선관위원장은 관할 지방법원장이, 구·시·군선관위원장은 해당 지역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겸직하는 것이 관례로 굳어졌다. 대법관에서 지방법원장, 부장판사로 이어지는 법관의 위계가 선거관리 체계에도 그대로 옮겨 온 셈이다.
위원장만이 아니다. 선거관리위원회법은 아예 법관이 각급 위원회에 들어가도록 설계했다. 시·도선관위는 관할 지방법원장이 추천하는 법관 2인을 위원에 포함하도록 명시했고, 구·시·군선관위 위원도 법관 중에서 위촉할 수 있게 했다. 또 “법관과 법원공무원, 교육공무원 외의 공무원은 각급 선관위 위원이 될 수 없다"(법 제4조 6항)고 규정해, 일반 행정공무원의 진입은 막으면서 법관에게는 자리를 열어 두었다.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호선한다는 형식이 중앙부터 일선까지 똑같이 적용되고, 그 위원장 자리를 법관이 차지하는 관행도 지역 단위로 내려간다. 선거를 관리하는 일선 조직의 책임자가 대부분 법관이라는 사실은, 선거 결과를 다투는 소송을 같은 법관들이 심판한다는 점과 맞물려 이해충돌 우려를 전국 단위로 확대한다.
물론 이런 관행에는 나름의 명분과 역사성이 있다. 출발점은 1960년 3·15 부정선거다. 이승만 정권의 노골적 선거 개입 이후 선거관리를 정치권력에서 떼어내 독립 헌법기관에 맡기게 됐다. 또 선관위에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법관을 배치한 것이다. 대통령이 임명하거나 국회가 선출한 위원은 아무래도 정파적 색채를 의심받기 쉬운 반면, 대법원장이 지명한 현직 법관은 상대적으로 정치에서 거리가 멀다는 인식이 작용했다. 역대 위원장이 대부분 대법관이었음에도 선관위가 비교적 정치적 시비에서 벗어나 있었던 데에는 이런 측면이 작용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적 중립성과 법적 전문성이 고위법관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건 아니다. 오히랴 중립성을 이유로 사법부에 자리를 몰아준 결과가 오히려 이해충돌과 책임 공백, 무사안일을 낳았다. 비상임 대법관이 위원장을 겸하는 탓에 실무는 사무처가 쥐고, 사고가 나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지는 구조는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독립성은 양날의 칼이다. 정치권력의 개입을 막기 위해 외부의 간섭에서 선관위를 떼어 놓았지만, 그 독립이 곧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는 성역으로 작동할 때 문제가 불거진다. 한쪽에서 '사실상 사법부에 종속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다른 쪽에서는 '독립을 방패 삼아 외부 감시를 회피한다'는 정반대의 비판이 함께 제기됐다. 그리고 그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대표적 사례가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다.
2023년 선관위 고위 간부 자녀의 경력직원 특혜채용 의혹이 불거졌다. 외부 견제가 닿지 않는 조직 안에서 이른바 '아빠 찬스'가 작동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선관위는 2023년 5월 자체 특별감사를 전 사무총장과 사무차장 등 고위급 4명을 수사의뢰했다. 또 2025년에도 고위급 4명을 추가 수사의뢰하고 경력채용 업무담당자 16명을 징계처분했다.
그러나 감사원이 직무감찰에 착수하자 선관위는 정면으로 맞섰다. 자신은 헌법이 정부에서 떼어내 세운 독립 헌법기관이므로, 대통령 소속인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이 될 수 없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2025년 2월 재판관 8인 전원일치로 선관위 손을 들어줬다. 감사원의 직무감찰권은 행정부를 겨냥한 통제 장치이므로, 국회·법원·헌재와 마찬가지로 독립 헌법기관인 선관위에는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헌재는 또 이 결론이 헌법 해석에서 직접 도출되는 것이어서 법률을 고쳐서도 바꿀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선관위를 감사원 감사 대상에 넣으려면 법 개정이 아니라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선관위의 독립성이 그만큼 무겁게 인정된 셈이다.
그러나 헌재는 이 독립성이 면죄부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직무감찰에서 빠진다는 것이 곧 부패의 성역을 인정하는 것으로 호도돼선 안 되며, 국회의 국정감사·국정조사와 수사기관의 수사 같은 외부 통제까지 배제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지난 7일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국회에 국정조사를 요청하고 검경 합동수사본부를 꾸려 사건 전모를 철저히 규명할 것을 지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비상임 명예직이지만 월정액 수당 받아
선관위의 폐쇄성은 위원의 수당 문제로도 수면 위에 떠올랐다. 선관위법상 위원장을 포함한 비상임위원은 보수를 받을 수 없고 실비만 받도록 돼 있다. 그런데 선관위는 규칙을 만들어 비상임위원에게 매달 정액의 '공명선거추진활동수당'을 지급해 왔다. 위원장 290만 원, 위원 215만 원꼴이었다.
선관위의 이 수당 월정액 지급 관행에 대해 감사원이 2019년 법적 근거가 없다며 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급은 2022년까지 이어졌고, 2022년 11월까지 누적된 액수만 6억여 원에 달했다. 선관위는 2023년 들어서야 규칙 문구를 '지급한다'에서 '지급할 수 있다'로 바꾸고 지급을 멈췄다.
그러나 2024년 1월 선관위법이 '예산 범위에서 수당을 지급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개정되자, 선관위는 곧바로 다음 달 규칙을 다시 손봐 '지급한다'로 되돌렸다. 감사원이 위법하다고 지적한 수당을, 법적 근거를 새로 만들어 되살린 것이다.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에게는 상임위원 1명을 제외하고는 비상임 명예직이지만 이렇게 월정액으로 지급되는 공명선거추진활동비와 안건검토수당 및 기타 수당을 합쳐 매월 3백~5백만 원 가량의 수당이 지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체 수준의 개혁 필요
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초유의 투표 용지 부족 사태는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는 외부 견제와 감시 없이 독립성이라는 외피와 특권 뒤에 숨어, 무사안일과 무책임과 무능함이 체질이 된 조직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다는 지적이다.
여야는 국정조사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고, 수사기관이 수사에 착수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개헌을 통한 해체 수준의 개혁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잠실에서는 6월 3일 밤부터 일주일째 참정권 침해를 규탄하거나 ‘재선거’ 등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현장에서는 ‘부정선거’를 외치는 극우세력도 합류해 세를 확산해 가고 있다. 온라인 상에서는 AI를 이용한 페이크 영상과 가짜 이미지 등이 각종 음모론과 함께 퍼지고 있다.
선관위는 지난 12.3 내란 때 부정선거론에 빠진 윤석열과 방첩사에 의해 침탈당한 바 있다. 그랬던 선관위가 1년 6개월 뒤 부정선거 음모론을 퍼트리는 세력이 계속 활개칠 수 있는 연료를 제공한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황당한 부정선거 음모론을 뿌리뽑기 위해서라도 해체 수준의 선관위 개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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