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시간 전
하나금융硏 “1700원 위기설은 과장…적정 환율 1330~1350원”
2026.06.09 13:05
페트로달러 균열에 원·달러 출렁…“고환율=위기 공식은 낡았다”
미·중 환율전쟁 전초전…원화, 위안화 절상 따라 1400원 밑돌 수도
외환보유고 4200억달러…“근거 없는 위기론은 시장 불안만 키워”
미국과 이란 전쟁 이후 글로벌 외환시장이 다시 달러 패권 논쟁에 휩싸이고 있다. 한쪽에서는 지정학적 충격이 달러 수요를 자극할 것이라는 '킹달러론'이 제기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페트로달러 체제 균열과 위안화 부상을 근거로 '달러 폭망론'까지 거론된다.
하나은행 하나금융연구소는 9일 '하나금융포커스: 킹달러론과 달러 폭망론으로 본 원·달러 환율 전망' 보고서에서 "국내 외환시장이 과거보다 높은 환율 수준과 변동성을 보이고 있지만 외화 유동성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다. 근거 없이 외환위기설을 제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며 "실질실효환율 기준 원·달러 환율의 적정 수준을 1330~1350원"이라고 밝혔다. 보고서 작성에는 한상춘 연구자문위원이 참여했다.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달러화 가치는 어느 때보다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미국과 이란 전쟁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페트로달러 체제에 가해진 가장 강력한 도전으로 평가된다.
페트로달러 체제는 미국이 산유국의 안보를 보장하는 대신 원유 결제를 달러화로 유지하는 구조다. 금 태환 정지 이후 달러 패권을 지탱해 온 핵심 장치였지만 최근 중국과 중동 산유국의 위안화 결제 확대 움직임이 이 체제의 균열을 키우고 있다.
보고서는 과거 이라크가 원유 결제를 달러화에서 유로화로 바꾸려 했고 사우디아라비아도 중국과 위안화 결제 협정을 맺었던 사례를 언급했다. 여기에 미국과 이란 전쟁 과정에서 호르무즈 해협과 위안화 결제 유조선 문제가 부각되며 페트로달러 질서가 다시 흔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전쟁 이후 달러 가치가 '킹달러론'과 '달러 폭망론'으로 양분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정학적 위기 때마다 달러가 안전자산으로 부각되는 흐름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동시에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와 페트로달러 균열은 달러 신뢰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보고서느 미국과 이란 전쟁이 끝난 뒤 미국과 중국 간 환율전쟁이 본격화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위안화 국제화를 핵심으로 하는 금융강국론을 내세우고 있고 최근 위안화 가치가 달러당 6.8위안대까지 절상됐다는 점이 배경이다.
반면 트럼프 2기 정부는 집권 1기와 달리 저금리와 약달러를 선호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제조업 부활과 무역적자 축소를 위해 약달러가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보고서는 미·중 간 이른바 '베이징 밀약'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위안화 절상이 원화 강세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지난 5월말 기준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위안화의 '스위트 스폿'을 달러당 6.5위안 수준으로 추정했다. 최근 원화와 위안화 간 상관계수가 0.7 내외라는 점을 고려하면 위안화가 해당 수준까지 절상될 경우 원·달러 환율은 1400원 밑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는 원화가 독자적으로만 움직이는 통화가 아니라 동아시아 통화질서와 위안화 흐름에 상당 부분 연동돼 있다는 의미다. 미국 입장에서도 무역적자와 대미 투자 문제의 핵심 상대가 중국뿐 아니라 한국·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라는 점에서 향후 환율 조정이 다자적 성격을 띨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국내 외환시장은 이미 상당한 변동성을 경험했다. 전쟁 국면에서 원·달러 환율 1700원 가능성까지 거론됐지만 이후 환율은 1500원 안팎으로 내려왔다. 극단적 비관론이 확산됐던 주식시장도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는 현재 원·달러 환율 수준이 적정선보다 높다는 진단을 하면서도 특정국 통화가치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대표 지표인 실질실효환율 기준으로 원·달러 환율의 적정선을 1330~1350원으로 추정했다.
한상춘 위원은 "전쟁 중이나 현재 환율 수준은 분명히 높다"고 지적했다. 다만 "고환율 자체가 곧바로 외환위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외화 유동성에 문제가 없다면 고환율은 순수출 기여도를 높여 성장률 제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1.7%에 달한 것도 총수요 항목별 기여도 측면에서 순수출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고환율이 물가와 금융시장에는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수출 경기 측면에서는 경기 방어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 위원은 외환위기설의 핵심 근거로 제기돼 온 외환보유액 부족론도 반박했다. 그는 "일각에서는 한국의 적정 외환보유액이 8000억달러에 달한다며 위기 가능성을 주장해 왔지만 이른바 BIS 방식의 적정 외환보유액 산식이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직격했다.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200억달러 내외로 국제통화기금(IMF), 그린스펀-기도티 기준, 캡티윤 방식 등 주요 기준에서 산출한 적정 규모를 모두 웃도는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가장 넓은 개념인 캡티윤 방식으로 추정해도 적정 외환보유액은 3800억달러 안팎이라고 제시했다.
경상수지 역시 외화 유동성을 뒷받침하는 요인이다. 보고서는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가 1230억달러를 넘었고 올해는 2000억달러를 훨씬 웃돌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의 하루 평균 변동 폭이 커지면서 원화가 취약 통화로 전락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변동성이 커졌다는 이유만으로 외환위기를 단정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통화가치는 펀더멘털을 의미하는 '머큐리' 요인과 정책 대응을 의미하는 '마스' 요인이 함께 결정한다. 펀더멘털에 문제가 없다면 환율 변동성 확대는 오히려 외환 관련 금융상품과 헤지 수요를 키워 시장의 중층적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상춘 연구자문위원은 "전쟁과 같은 비상 국면에서 단면적인 지표만 보고 위기설을 제기하는 것은 가장 경계해야 한다"며 "특히 부정적 편향은 긍정적 편향보다 훨씬 빠르게 확산되는 만큼 외환시장 불안을 자극하는 무리한 위기론은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원·달러 환율은 단기적으로 지정학적 위험과 미·중 환율전쟁 가능성에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외환보유액, 경상수지, 대외건전성 등을 종합하면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 국면에 진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고환율은 부담이지만 위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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