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나라에서 출산과 육아... 산모의 손을 잡고 말한 것
2026.06.09 10:07
"베트남 출신 산모입니다."
회사에서 전화를 받고 잠시 망설였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언어는 통할까, 육아 방식이 다르진 않을까, 내가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 때문이었다.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일을 하며 수많은 가정을 만났지만, 외국인 산모를 직접 돌보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난해 여름, 폭염이 막바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까지도 긴장이 됐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내가 걱정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산모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듯한 젊은 엄마는 낯선 나라에서 출산과 육아를 동시에 감당하고 있었다. 남편은 아내가 힘들어할까 걱정돼 출근도 미루고 있었고,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시어머니가 반찬과 생필품을 챙겨 들고 오셨다.
"제가 옆에서 돌봐주고 싶지만 사정이 안 돼 늘 마음이 쓰여요."
시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산모는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다. 서툰 한국말로 질문을 하고, 내가 알려주는 방법을 하나라도 놓칠까 집중해서 들었다. 어느 날, 산후조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물었다.
"아기 낳고 나니까 엄마 생각 많이 나지요?"
잠시 나를 바라보던 산모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출산의 고단함보다 더 큰 외로움이 그 안에 숨어 있다는 것을. 친정엄마가 곁에 있었다면 자연스럽게 털어놓았을 고민과 두려움을, 그녀는 낯선 나라에서 혼자 견디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나는 산모의 손을 잡고 말했다.
"지금 엄마가 곁에 없지만 저를 엄마라고 생각해요.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뭐든 이야기해요."
산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 어색함은 조금씩 사라졌다. 서툰 한국말과 손짓, 몸짓으로 대화를 나누었고, 때로는 번역기의 도움도 받았다. 함께 웃는 날도 많아졌다. 어느 날 자신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산모에게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면 이미 좋은 엄마예요" 하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자 산모는 환하게 웃었다.
마지막 근무일, 산모를 꼭 안아주며 아기 건강하게 잘 키우라고 인사를 건넸을 때, 눈시울이 붉어지던 산모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 ▲ 눈 녹듯 내려간 걱정 |
| ⓒ omarlopez1 on Unsplash |
그 경험이 채 잊히기도 전에 또 다른 다문화 가정을 만나게 됐다. 이번에는 브라질 출신 산모였다. 첫날 방문했을 때 브라질 출신의 친정어머니가 함께 계셨다. 서류를 작성할 때 "어려우시면 남편 분 오셨을 때 같이 쓰셔도 돼요"라고 하자, 산모는 고개를 저으며 "제가 해볼게요" 라고 말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적어 내려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들으니 한국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오래 기억하는 것은 그녀의 한국어 실력이 아니었다. 산모는 늘 주변을 먼저 살피는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밤새 잠을 설친 뒤에도 내가 아기를 안고 있으면 다가와 "관리사님도 좀 쉬세요"라고 말했고, 간식을 예쁜 쟁반에 담아 식탁 위에 올려놓고는 "나중에 꼭 드세요"라며 마음을 썼다. 아기가 잠든 어느 오후, 산모가 조용히 내 옆에 와 앉더니 말했다.
"사실 신청할 때만 해도 걱정이 많이 됐어요. 어떤 분이 오실지 몰랐거든요. 그런데 관리사님을 만나서 정말 감사해요."
그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나만 걱정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 역시 언어는 통할까,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하며 그 집 초인종을 눌렀었다. 서로 다른 걱정을 안고 만났지만, 함께 지내는 동안 그 걱정들은 조금씩 눈 녹듯 사라져 갔다.
돌이켜보면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의 나는 다문화 가정을 하나의 틀 안에 넣어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국적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막연한 거리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두 엄마는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을 조용히 무너뜨렸다.
국적과 언어라는 껍질을 벗겨내고 마주한 그들은, 그저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주변을 배려할 줄 아는 귀한 이웃이자 어머니였다. 돌봄이 끝난 지금도 두 산모는 가끔 아기 사진을 보내오며 안부를 묻는다.
"정말 많이 컸네요."
나는 사진을 보며 반가운 마음에 엄지척 이모티콘과 하트를 꾹 눌러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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