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신약이 놓친 곳…20년 만에 찾은 새 표적
2026.06.09 09:16
부모님이 같은 말을 반복해도 아직 괜찮다고 넘기기 일쑤다. 하지만 뇌에서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무엇인가가 달라지고 있다.
알츠하이머가 왜 생기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30년 넘게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단백질을 주범으로 지목해 왔지만, 그것을 없애는 신약들조차 기대만큼 효과를 내지 못했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ETH 취리히)는 분자약리학과 우르술라 퀴테러 교수팀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단서를 찾아냈다고 8일 밝혔다. 연구 결과를 실은 논문은 지난 3월 국제학술지 《셀 리포츠 메디신(Cell Reports Medicine)》에 게재됐다.
뇌세포 발전소에 자물쇠가 채워졌다
연구팀이 발견한 단서는 'GRK2'라는 효소다. 세포가 외부 신호와 스트레스에 올바르게 반응하도록 돕는 조절 단백질이다. 특히 심장과 뇌 신경세포에서 활발히 작동한다.
하나는 정상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비정상적으로 응집된 형태다. 치매 환자의 뇌에는 기능을 잃은 GRK2가 비정상적으로 많았다. 알츠하이머 마우스 모델에서도 같은 현상이 확인됐다.
비정상적으로 응집된 GRK2는 서로 엉겨 덩어리를 이룬다. 덩어리는 미토콘드리아 입구 역할을 하는 단백질(TOMM6)까지 끌어들여 함께 뭉친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곳이다. 입구가 막히면 에너지 생산이 줄고, 신경세포는 점점 스트레스 상태에 놓인다.
연구팀은 GRK2 응집과 미토콘드리아 기능 저하가 심해질수록 아밀로이드 베타 축적도 함께 증가하는 현상을 확인했다. 늘어난 아밀로이드 베타는 거꾸로 신경세포에 스트레스를 가해 기능을 잃은 GRK2를 더 만들어낸다. GRK2 덩어리가 늘면 미토콘드리아가 더 망가지고, 아밀로이드 베타가 또 늘어난다.
동물모델에서 치매가 스스로 악화를 가속하는 구조가 드러난 셈이다.
18개월 기다려야 시작된다
여기까지 오는 데 20년이 걸렸다.
알츠하이머는 노화 질환이다. 젊고 건강한 뇌에서는 이 병의 특징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마우스는 생후 18개월이 넘어야 인간의 노년에 해당하는 상태가 된다. 어린 마우스로는 단백질 이상도, 아밀로이드 침착도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실험 한 번에서 결론을 얻고 다음 실험을 설계하기까지, 또 다른 마우스가 그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 주기가 반복될 때마다 최소 2년이 흘렀다.
암 연구였다면 몇 달이면 끝낼 사이클이, 알츠하이머에서는 수년이 된다. 20년 동안 같은 가설을 여러 세대의 노화 모델에서 반복 검증한 셈이다.
30년 이상 연구비 쏟았는데 왜 아직인가
1991년 이후 알츠하이머 연구의 주류는 아밀로이드 가설이었다.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가 쌓여 신경세포를 죽인다는 이론이다.
세계 주요 제약사들은 이 단백질을 없애는 데 수십 년과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지만 대부분 임상에서 실패했다.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레카네맙과 도나네맙도 인지 저하 진행을 20~30% 늦추는 수준이다. 완치와는 거리가 멀고, 뇌부종·미세출혈 같은 부작용 우려도 남아 있다.
이번 연구의 출발은 20년 전 이집트 카이로 아인샴스대학병원 동료 의사가 보내온 뇌 조직 샘플이었다. 뇌종양 수술 중 제거한 조직으로, 치매 환자와 일반 환자 것이 섞여 있었다.
두 조직을 비교하던 퀴테러 교수는 GRK2의 이상을 발견했다. 그는 아밀로이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또 다른 이상이 존재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신약들이 기대에 못 미친 이유 역시 그곳에 있을지 모른다고 여겼다.
GRK2 응집 억제하자 아밀로이드 줄었다
연구팀은 악순환의 출발점을 막는 물질을 탐색했다. 수십 개 후보를 추린 끝에 찾아낸 것이 '컴파운드 10(Compound 10)'이다. GRK2가 서로 뭉치지 못하게 막는 물질이다.
마우스 실험에서 결과는 뚜렷했다. 컴파운드 10을 투여한 마우스에서 신경세포가 기능을 유지하며 살아남았고 생존 기간도 늘었다.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회복됐고 아밀로이드 베타 침착도 줄었다. 심장 기능이 개선됐고 흰 털 증가 같은 노화 관련 변화도 일부 줄었다. 연구팀은 GRK2가 뇌와 심장 모두에서 작동하는 단백질인 만큼 전신에 영향이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컴파운드 10의 특허를 출원하고 임상 개발에 나설 제약사를 찾고 있다.
퀴테러 교수는 "기존 알츠하이머 약물과 전혀 다른 기전으로 작동하는 새 표적을 찾아냈다"며 "다른 약물과 병용하면 언젠가 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아직 동물 실험 단계다. 실제 치료제로 이어지려면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
그래도 30년간 닫혀 있던 문 하나가 열렸다. 왜 신약이 기대만큼 듣지 않았는지, 이제 그 답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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