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고현정·이병헌·변우석…스타들 빛내준 ‘착각 연금술’
2026.06.06 00:39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 전시 진행, 아트 디렉터 요시다 유니
요시다 유니. 이름은 들어본 적 없어도 그가 만든 이미지에 놀란 적은 있을 법하다. 차가운 디지털 이미지로 보이지만 꽃이나 과일같은 실물을 손으로 주물러 위트 넘치는 ‘일루젼’을 빚어내는 ‘연금술사’랄까. 자몽과 오렌지로 만든 브래지어, 딸기나 포도알을 촘촘히 이어붙인 팬티…. 농담같은 이미지에 웃음이 터진다. 자유로운 예술세계인가 싶지만 란제리 회사의 키비주얼이다. 누가 만든지도 모를 AI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 단 한 장의 사진으로 강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브랜드나 콘텐트가 그를 주목한다.
꽃이라는 한정된 테마로 62명의 배우에게 2가지씩 다른 콘셉트를 입혔다니, 보통 일이 아니다. 빡빡한 촬영 일정에 100% 생화를 이용하는 오브제를 미리 만들어둘 수도 없으니 ‘극한직업’이 따로 없다. “같은 꽃이라도 겹치지 않게, 124개의 컨셉트를 만들었는데, 촬영은 시간과의 승부였어요. 배우들도 기다릴 수 없고 꽃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버리는 조건 속에서 오브제를 만들어야 하는 미션이니까요. 하루에 4명을 찍은 날도 있었는데, 8가지 아이디어를 현장에서 거의 라이브로 완성하느라 고생했죠.”
한국 공연계와도 각별한 인연이 생겼다. 30일 개막하는 샘컴퍼니 뮤지컬 ‘유미의 세포들’의 깜찍하면서도 미스터리한 하트 모티브의 포스터가 그의 작품. 2024년 황정민의 연극 ‘맥베스’ 포스터부터 시작된 인연인데, ‘맥베스’는 세계 유수의 광고제 클리오 어워즈에서 2개 부문 금상을 받기도 했다. “양정웅 연출이 개인전을 보러 와주셔서 ‘맥베스’에 참여하게 됐죠. 황정민 배우를 원래 좋아해서 포스터 작업도 즐거웠고, 공연도 너무 좋았어요. 연기도 엄청 박력 넘치고 연출도 대단했죠. 한국 공연은 볼 때마다 소름돋을 정도로 감동적이에요.(웃음)”
맥베스가 칼을 들고 있는 줄 알았더니 칼 모양으로 등이 파진 맥베스 부인의 목을 움켜쥐고 있거나, 맥베스가 쓰고 있는 왕관이 부인이 입은 드레스의 가슴팍 디자인이라는 식의 착시효과가 기발하다. 아이디어는 어디서 올까. “다른 콘텐트에서 굳이 영감을 얻으려 의식하지는 않아요. 중요한 건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보는 이에게 전달되는 것, 그리고 내 스타일이 다 합치되는 포인트를 찾는 일이죠. 세 가지가 딱 만나는 순간을 찾기까지 오래 걸리지만, 찾고 나면 금방 만듭니다.”
“익숙한 사물을 전혀 다르게 보는 것 같다”고 하니,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여준다. 작품이 아니라 귤을 까먹다가 무심코 시작한 놀이라는데, 귤 한 개의 껍질과 과육만으로 팬티, 계란 후라이, 만두, 새우초밥, 코와 귀, 열기구, 미이라까지 못 만드는 게 없다. “영감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온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늘 뭔가 만들고 있었어요. 부모님이 슈퍼마리오 게임기를 안 사주시길래 소꿉놀이하듯 똑같이 기계를 만들고 마리오를 그려서 TV에 붙여놓고 게임하는 기분을 내기도 했죠. 그러면서 게임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게임기를 갖고 싶었을 뿐이었다는 걸 어린 나이에 깨닫기도 했고요.(웃음)”
기발한 아이디어와 스타일이 뚜렷한 오브제들은 예술의 경지지만, 자유로운 개인 작업보다 주제가 주어지고 표현에 제약이 있는 브랜드 작업을 선호한다. “문제 해결을 즐긴다”는 이유다. “이번에 일본 쪽 전시에 영상 설치작업이 있었어요. 테이블 위에 놓인 노트 위로 영상을 매핑시켜 제작 과정을 연출하려 했는데, 현장에서 프로젝터가 더 필요하단 걸 깨달았죠. 주어진 예산으론 불가능하길래 즉석에서 영상과 실물을 섞기로 결정했고, 오히려 원안보다 재밌어졌어요. 실패로 끝나는 일은 없어요. 아니다 싶으면 상황을 역전시킬 아이디어를 찾으면 되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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