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가 기본인 세대…출산은 ‘기회비용 싸움’이다
2026.06.06 00:26
[이태환의 세상만사 경제학] 저출산의 경제학적 분석
경제학자들이 출산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중반이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1960년에 게리 베커가 쓴 ‘출산의 경제학적 분석’이라는 논문인데, 우리가 출산과 관련해 지금 알고 있는 대부분의 경제학 연구들은 이 논문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 논문은 사회학이나 인류학, 심리학 등 다른 학문 분야의 학자들이 “왜 이런 것까지 경제학자가 연구를 하느냐” “경제학은 제국주의적이다”라고 비판을 하게 만든 원흉(?)이기도 하다. 남녀가 사랑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는 문제를 경제학으로 분석한다고 나서다니. 너무 생뚱맞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은 저출생 대응 수석비서관을 경제학자가 맡을 정도로 ‘출산 결정은 경제문제다’라는 사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선택’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내 앞에 놓인 여러 대안 중에서 비용과 편익을 따져 어느 것이 가장 좋은지 고르는 것이 경제문제다. 자녀 출산이 필연이 아닌 선택이 되었다면 이것 역시 자연스럽게 경제문제가 된다. 베커도 논문 첫 페이지부터 이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20세기 초반까지는 나잇대별로 인구가 몇 명 있느냐, 즉 가임기 연령의 부부가 몇 쌍 있느냐만 알면 앞으로의 인구증가율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는데, 20세기 중반부터 이런 관계가 깨졌다. 피임법이 보편화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자녀의 수에 대해 부부가 명시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종전과는 다른 경제학적 분석이 필요해졌다.” 대략 이런 논리다. 베커는 이렇게 경제학의 연구 영역을 가족 구성이라든가 범죄·인종차별·약물중독에 이르기까지 크게 넓힌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경제가 성장하면 아이에 대한 교육투자의 기대수익이 커진다. 저개발국의 경우에는 청소년기에 열심히 공부하더라도 미래에 기대할 수 있는 보상이 그리 크지 않지만, 선진국에서는 어릴 때, 또 젊을 때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 사람이 나중에 훨씬 큰 소득과 보상을 얻을 수 있다. 그러면 제한된 경제적 자원을 가지고 아이를 한 명 더 낳을지, 아니면 이미 낳은 아이들에게 교육비를 더 투자할지 판단하려는 부모 입장에서는 선진국이 될수록 교육투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적게 낳는 대신 하나하나를 잘 기르는 쪽으로 바뀐다는 얘기다. 베커는 이런 과정을 아이에 대한 ‘양과 질 사이의 선택’이라고 불렀다.
그러면 소득이 높아질 때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은 영원히 피할 수 없는 철칙일까. 노스웨스턴대의 마티아스 돕케와 동료들이 2022년에 내놓은 연구결과를 보면 이런 트렌드에 변화가 보인다. 1980년에만 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소득이 높은 국가가 합계출산율이 낮은 경향이 강했는데 2000년에는 이것이 반대로 뒤집혔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과 출산율 사이에도 1980년에는 음의 상관관계가 나타났지만 2000년에는 양의 상관관계가 나타난다. 그러니까 21세기 들어서는 소득이 높고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은 나라에서 출산율도 높은 경향성이 나타난다는 얘기고, 경제성장이 무조건 저출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아이 1명당 출산 기회비용 평균 수억 원
그렇다면 중진국 수준을 벗어나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것이, 그러니까 웬만큼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잘 살게’ 되는 것이 출산율 제고를 위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선 사회 전체적으로 육아에 필요한 노동력을 충분히 고용하는 데 돈이 든다. 개인 수준에서는 고소득 가구일수록 육아 도우미를 고용하기 쉽고, 정부에서도 세금이 많이 걷혀야 어린이집이나 유아교육에 쓸 수 있는 재정 여력이 커진다. 육아를 남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직접 하려면 육아휴직을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와 사회 분위기가 필요한데, 여기서도 선진국 수준의 생산성 향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남성과 여성이 모두 직장에서 아주 높은 생산성으로 일할 수 있어야 육아휴직 중인 동료의 빈자리를 충분히 메울 수 있고, 야근 없이 근무시간 중 모든 일을 끝내야 퇴근하고 나서 어린 자녀들에게 시간과 체력을 더 쓸 수 있을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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