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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가 기본인 세대…출산은 ‘기회비용 싸움’이다

2026.06.06 00:26

[이태환의 세상만사 경제학] 저출산의 경제학적 분석
2026년에도 출생아 수 증가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5월 말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3월 출생아 수는 2만5200명으로 지난해 3월보다 19.4% 늘었다. 1분기 출생아 수는 7만5013명으로 7년 만의 최대치다.

지난 4월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가 신생아를 돌보고 있다. [연합뉴스]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자녀 수의 기댓값)은 1970년만 해도 4.5명이었는데, 1980년 2.8, 2000년 1.5로 빠르게 낮아지다가 2018년에 처음으로 1보다 작아졌고 2023년 0.72로 최저점을 찍었다. 최근 출생아 수가 조금씩 늘어난다지만 한국의 출산율은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이다. 그런데 사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은 아주 보편적인 현상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한국만큼은 아니더라도) 저출산 문제를 이미 한 번씩 심하게 겪었거나, 출산율을 조금 더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지속 중이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경제학, 사람의 선택을 연구하는 학문
경제학자들이 출산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중반이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1960년에 게리 베커가 쓴 ‘출산의 경제학적 분석’이라는 논문인데, 우리가 출산과 관련해 지금 알고 있는 대부분의 경제학 연구들은 이 논문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 논문은 사회학이나 인류학, 심리학 등 다른 학문 분야의 학자들이 “왜 이런 것까지 경제학자가 연구를 하느냐” “경제학은 제국주의적이다”라고 비판을 하게 만든 원흉(?)이기도 하다. 남녀가 사랑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는 문제를 경제학으로 분석한다고 나서다니. 너무 생뚱맞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은 저출생 대응 수석비서관을 경제학자가 맡을 정도로 ‘출산 결정은 경제문제다’라는 사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베커
출산은 20세기 초까지는 경제문제가 아니었다. 1950년대 후반 경구 피임약의 발명이라는 기술 혁신과 그에 따른 사회 변화 과정에서 경제문제로 바뀌었다. 그전에는 결혼한 부부가 약물이나 기구를 이용해 피임을 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을 뜻했고, 미국에서도 20~30대의 기혼 여성은 2~3년에 한 번씩 임신과 출산을 겪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1960년대에 이것이 확 바뀐다. 이제 결혼한 부부도 아이를 언제 몇 명 낳을지 쉽게 선택하여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많은 역사학자가 20세기의 주요 기술 혁신으로 자동차·비행기·원자폭탄, TV 및 가전제품 등과 함께 피임약을 꼽을 정도로 피임법의 확산은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선택’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내 앞에 놓인 여러 대안 중에서 비용과 편익을 따져 어느 것이 가장 좋은지 고르는 것이 경제문제다. 자녀 출산이 필연이 아닌 선택이 되었다면 이것 역시 자연스럽게 경제문제가 된다. 베커도 논문 첫 페이지부터 이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20세기 초반까지는 나잇대별로 인구가 몇 명 있느냐, 즉 가임기 연령의 부부가 몇 쌍 있느냐만 알면 앞으로의 인구증가율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는데, 20세기 중반부터 이런 관계가 깨졌다. 피임법이 보편화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자녀의 수에 대해 부부가 명시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종전과는 다른 경제학적 분석이 필요해졌다.” 대략 이런 논리다. 베커는 이렇게 경제학의 연구 영역을 가족 구성이라든가 범죄·인종차별·약물중독에 이르기까지 크게 넓힌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지난 3월 인천시청 천원주택 접수처가 붐비는 모습. '천원주택'은 신혼부부 등을 대상으로 하루 임대료 1000원, 월 3만 원으로 전세임대주택을 제공하는 저출산 대응 주거정책이다. [연합뉴스]
경제성장이 출산율을 낮추는 첫 번째 이유는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데 따르는 기회비용이 커지기 때문이다. 기회비용은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의 가치다. A와 B 사이에서 A를 선택했다면, 포기한 B의 가치가 A의 기회비용이 된다. 부모가 되려면, 특히 여성이 아이를 한 명 낳으려면 임신과 수유 기간을 고려할 때 노동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소득을 대략 반년에서 2년 정도는 포기해야 한다. 경제가 성장하면 평균임금이 올라가는 만큼 출산으로 포기해야 하는 소득, 즉 출산의 기회비용이 점점 커진다. 말 그대로 아이가 비싸지는 거다. 경력이 단절되면서 이후의 커리어에서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이 전반적으로 낮아지는 것까지 고려하면 아이 1명 출산의 기회비용은 평균적으로 수억원에 이를 수 있다. 저출산 문제를 이야기할 때 결혼비용이나 주거비, 교육비가 올라가는 것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보다는 이 기회비용의 상승이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경제가 성장하면 아이에 대한 교육투자의 기대수익이 커진다. 저개발국의 경우에는 청소년기에 열심히 공부하더라도 미래에 기대할 수 있는 보상이 그리 크지 않지만, 선진국에서는 어릴 때, 또 젊을 때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 사람이 나중에 훨씬 큰 소득과 보상을 얻을 수 있다. 그러면 제한된 경제적 자원을 가지고 아이를 한 명 더 낳을지, 아니면 이미 낳은 아이들에게 교육비를 더 투자할지 판단하려는 부모 입장에서는 선진국이 될수록 교육투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적게 낳는 대신 하나하나를 잘 기르는 쪽으로 바뀐다는 얘기다. 베커는 이런 과정을 아이에 대한 ‘양과 질 사이의 선택’이라고 불렀다.

그러면 소득이 높아질 때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은 영원히 피할 수 없는 철칙일까. 노스웨스턴대의 마티아스 돕케와 동료들이 2022년에 내놓은 연구결과를 보면 이런 트렌드에 변화가 보인다. 1980년에만 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소득이 높은 국가가 합계출산율이 낮은 경향이 강했는데 2000년에는 이것이 반대로 뒤집혔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과 출산율 사이에도 1980년에는 음의 상관관계가 나타났지만 2000년에는 양의 상관관계가 나타난다. 그러니까 21세기 들어서는 소득이 높고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은 나라에서 출산율도 높은 경향성이 나타난다는 얘기고, 경제성장이 무조건 저출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아이 1명당 출산 기회비용 평균 수억 원
그렇다면 중진국 수준을 벗어나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것이, 그러니까 웬만큼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잘 살게’ 되는 것이 출산율 제고를 위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선 사회 전체적으로 육아에 필요한 노동력을 충분히 고용하는 데 돈이 든다. 개인 수준에서는 고소득 가구일수록 육아 도우미를 고용하기 쉽고, 정부에서도 세금이 많이 걷혀야 어린이집이나 유아교육에 쓸 수 있는 재정 여력이 커진다. 육아를 남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직접 하려면 육아휴직을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와 사회 분위기가 필요한데, 여기서도 선진국 수준의 생산성 향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남성과 여성이 모두 직장에서 아주 높은 생산성으로 일할 수 있어야 육아휴직 중인 동료의 빈자리를 충분히 메울 수 있고, 야근 없이 근무시간 중 모든 일을 끝내야 퇴근하고 나서 어린 자녀들에게 시간과 체력을 더 쓸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골딘
결국 임신한 여성이 경력단절을 고민하지 않게 되어야 출산의 기회비용을 근본적으로 낮출 수 있다. 2023년 노벨상을 수상한 클라우디아 골딘의 주요 업적은 미국의 대졸 여성들이 커리어와 출산·육아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 왔는지 20세기 전반에 걸쳐 분석한 것이다. 최근 민세진·신자은 교수가 골딘의 방법론을 한국에 적용하여 분석한 결과를 『결혼 옵션 세대』라는 책으로 냈는데, 그 제목이 한국이 처한 현실을 잘 요약해주고 있다. 커리어가 기본이고 출산은 옵션이 된 세대. 이들이 출산을 자발적으로 ‘선택’하게 유도하기 위해서는 생산성을 더 높이고 진정한 선진국으로서의 경제적 조건들을 갖추면서 일·가정 양립 문화도 발달시킨다는 정공법 외에 다른 지름길은 없어 보인다.

이태환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와 스탠퍼드대에서 공부하고 삼성경제연구소에서 한국경제의 다양한 측면을 연구했다. 주변의 사회문화 현상을 경제학으로 해석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SERICEO에서 5년 간 ‘세상만사 경제학’ 강의를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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