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주한 미 대사들 “이재명 정부 ‘친중·강경 좌파’라는 평가는 과장”
2026.06.05 14:46
전직 주한 미국대사들이 이재명 정부를 ‘강경 좌파’ 또는 ‘친중 정부’로 규정한 미국 보수 진영 일각의 평가에 대해 “과장됐다”고 반박했다. 다만 이들은 트럼프 2기 들어 한미 동맹이 기존의 가치·안보 중심 동맹에서 보다 거래적이고 불확실성이 큰 관계로 재편되고 있다며, 양국 간 신뢰 회복이 핵심 과제라고 지적했다.
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 미국대사(2022∼2025년 재임)는 4일(현지시각) 한미경제연구소(KEI)가 워싱턴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이재명 정부 비판 칼럼과 관련해 “한국의 진보 정부들이 어떤 면에서는 미국의 국제 정책에 대해 반사적으로 친미적인 태도를 덜 보이는 경향은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급진 공산주의자 같은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나는 그를 만나본 적이 있는데 그런 인상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1일 한국군과 주한미군이 함께 사용하는 오산 공군기지에 대한 특검의 압수수색, 미국에 본사를 둔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 수사,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한미 공유 기밀정보 공개 언급 논란 등을 열거하며 이재명 정부가 한미동맹을 위협하고 있다는 취지의 외부 필진 칼럼을 게재했다.
골드버그 전 대사는 이 대통령에 대해 “매우 뛰어난 정치인”이라며 “어제 선거 결과를 통해서도 그것이 다시 드러났다”고 했다. 이어 “그는 미국과의 동맹, 특히 미국 핵우산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있다”며 “무역과 투자처럼 매우 어려운 사안들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협력하려고 노력해왔다”고 평가했다.
캐서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2008∼2011년 재임)도 “한국의 여론조사를 보면 한미 동맹에 대한 지지는 초당적으로 계속 커지고 있다”며 “이 대통령은 한국 국민 대다수가 강력한 한미 관계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미주의와 특정 미국 정책에 대한 반대는 구별해야 한다”며 “오늘날 한국 정치를 말하면서 ‘반미주의’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매우 시대착오적으로 들린다”고 했다.
두 전직 대사는 이재명 정부의 대중국 접근에 대해서도 ‘친중 노선’이라기보다 대외정책의 재조정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골드버그 전 대사는 전임 윤석열 정부가 중국에 대해 보다 강경하고 미국 쪽으로 기운 외교를 펼친 반면, 이재명 정부는 중국과 더 적극적으로 외교하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워싱턴의 일부 사람들이 보는 것처럼 본격적인 친중 정책이라기보다는 재균형에 가깝다”고 말했다.
다만 두 사람은 현재의 한미관계가 안정적인 상태라고만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스티븐스 전 대사는 지난 1년을 돌아보며 “동맹과 관계의 안정성, 신뢰가 어느 정도 약화한 시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사용하는 ‘동맹 현대화’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오히려 관계를 재정의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는다”며 “기회도 있지만 매우 도전적인 한 해였다”고 평가했다.
골드버그 전 대사도 “우리는 이 관계의 재구조화 한가운데 있다”며 “상호방위조약에 기반한 전통적인 한미 군사·안보 동맹이 변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미국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한국의 대북 방위 책임 확대, 미국의 핵우산 역할 유지 등을 강조하는 과정이 “협상이라기보다 워싱턴에 의해 상당 부분 지시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재명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나 자체 방위 책임 확대와 맞물려 이런 변화의 일부를 활용하고 있는 측면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충분히 숙고된 합의라기보다 미국 쪽에서 밀어붙이는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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