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값 1550원 턱밑까지 밀려 … 외국인 주식 팔고 수출기업은 환전 늦춰
2026.06.05 17:59
외국인 20거래일 연속 매도세
기업 벌어들인 돈 달러로 보유
대미투자 앞둬 환전 유인 없어
5일 달러당 원화값이 장중 1550원 턱밑까지 떨어지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최저치 수준에 근접했다. 반도체 섹터 급등 이후 차익실현과 리밸런싱에 나선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증시 매도세가 20거래일 연속 이어지면서 달러 수요가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수출기업들이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계속 달러로 보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원화값 하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화값은 전 거래일 대비 9.4원 내린 1539.1원에 주간거래를 마쳤다. 지난 3월 30일(1530.1원) 이후 두 달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장중에는 한때 1549.2원까지 급락하며 1550원 선에 바짝 다가서기도 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10일 장중 저점(1561원)에 근접한 수준이다.
이날 원화값 급락은 외국인이 국내 증시 매도세를 확대하면서 달러 환전 수요가 증가한 영향이 컸다. 외국인은 이날 국내 증시에서 3조5000억원 넘게 순매도했다. 이로 인해 올해 누적 순매도 규모는 약 120조원에 육박했다.
시장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최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주 급등 이후 차익실현에 나선 데다 글로벌 펀드들이 국가별·자산별 비중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국내 반도체 섹터 비중을 축소하는 리밸런싱에 나서면서 외국인의 순매도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 수출기업들이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바꾸지 않는 것도 원화값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KB국민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달러 공급 채널에서 수출기업들이 외환 시장에 달러를 충분히 내놓지 않아 병목이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수출액 대비 기업의 선물환 매도액 비중은 지난해 2~4분기 평균 98%에서 올해 1분기 66%로 떨어졌다. 선물환 매도는 향후 들어올 달러를 미리 정해진 환율로 파는 거래다. 이 비중이 낮아졌다는 것은 수출기업들이 달러를 시장에 내놓기보다 보유하려는 성향이 강해졌다는 의미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대미투자협정으로 미국 투자를 앞두고 있는 만큼 (대기업들이) 달러를 시장에 내놓을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달러를 가장 많이 보유한 반도체 기업들은 설비 투자와 증설 계획이 많아 시장에 내놓을 달러 물량 자체가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수급 요인뿐 아니라 대외 요건도 우호적이지 않다. 당장 이달 중순 예정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물가 불안을 이유로 금리가 인상되면 강달러 압력이 한층 커질 수 있다.
외국인 매도세와 수출기업의 달러 보유 확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현실화할 경우 원화값이 과거 금융위기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혜란 기자 /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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