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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까지 이용한 킹 … 그는 치밀한 전략가였다

2026.06.05 16:54

정치권·언론 이목 끌기 위해
대선 직전 수감돼 단식 투쟁
결국 케네디 도움으로 석방
'아이 해브 어 드림' 명연설
흑인 차별 현실 고발하면서
美헌법을 '부도수표'로 비유
반박 힘든 논리로 대중 설득




전설이 된 사람들은 대개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 속에 갇힌다. '위대한 인물'이란 정형화된 틀로 그의 생은 규격화되며, 실수나 잘못은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그는 한 개인으로 남지 못하고, 만인 앞에 전시되기에 합당한 이미지 속으로 봉인된다. 마틴 루서 킹 역시 '평화주의자'란 이미지 속에서만 찬사를 받았다. 상대를 벼랑 끝까지 몰아가는 킹의 전략가적 면모는 '비폭력주의'에 가려졌고, 그의 내적 고뇌나 실수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로 뛰어난 평전이나 전기물은 한 인물의 포장된 이미지의 '뒷면'까지 도려내지 않고 밝혀내는 책일 것이다. 2024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이 책은 킹의 전략가적 기질과 불완전한 인간이란 정체성을 빠뜨리지 않고 다룬다는 점에서 위대한 평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뉴욕타임스, 타임, 워싱턴포스트가 전부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던 이 책의 내부로 들어가보자.

마틴 루서 킹
조너선 아이그 지음, 장상미 옮김
아르테 펴냄, 4만8000원


20세기 중엽까지도 인권의 개념은 지금과 달랐다. 흑인들은 '2등 시민'이었다. 학교, 기차, 식당, 화장실, 심지어 묘지에서까지 흑백의 공간은 엄격히 분리됐다. 1876년 제정된 인종차별법인 '짐 크로 법' 때문이었다.

조모와 모친의 헌신 속에서 성장한 킹은 대학 시절 비폭력 저항 이론을 온몸으로 빨아들이듯이 흡수했다. 신학교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학습하며 근대적 사고를 배웠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루소, 홉스, 벤담, 밀, 니체, 마르크스 등을 섭렵하며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관한 자기만의 철학적 사유를 키웠다. 인간을 사유한 철학자들의 이름 앞에서 빈부 격차나 불공정은 있을 수 없었다. 킹은 "하느님의 왕국에는 사회정의도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1954년 킹은 침례교 목사로 부임한다. 그가 도착한 도시는 백인우월주의의 '요새'와도 같던 몽고메리 지역이었다. 수입 대부분이 백인에게 나왔기에, 이 동네 흑인들은 저항할 여력이 없었다. 그러다 '사건'이 벌어진다. 한 흑인이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경찰에 체포된 것. 그 유명한 '로자 파크스 체포 사건'이었다.

상황은 이렇다. 당시 흑인은 백인 버스 운전사에게 요금을 낸 뒤 하차하고, 다시 뒷문으로 타도록 요구받았다. 그래야 버스 앞쪽에 앉은 백인들이 덜 불편할 수 있었다. 똑같이 돈을 내고 타는데도 버스에서 내릴 땐 '검둥이, 암소 새끼' 같은 욕설이 'N'으로 시작하는 그 단어와 뒤섞여 뒤통수에 박혔다.

흑인들은 "우리가 뭔가를 하지 않으면 이런 체포가 계속될 것"이라며 버스 탑승 보이콧 운동을 전개했다. 보이콧은 381일간 지속됐고, 킹은 대중 앞에서 연설했다. "우리가 틀렸다면, 미국 헌법도 틀렸다." 킹은 그렇게 미국 사회 전면에 등장했고, 흑인들의 대변인을 넘어 흑인들의 지도자로 주목받는다.

하지만 킹은 '공정과 평화'를 말로만 부르짖는 순박한 연설가가 결코 아니었다. 그는 흑인이 처한 삶의 고통을 미디어에 어떻게 보여줘야 효과적인지, 또 정치권을 어떻게 움직여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를 정확히 꿰뚫는 타고난 전략가였다. 1960년 대선에도 영향을 끼친 '자리 잡기 운동(sit-in movement)'과 1963년 워싱턴 행진 및 '아이 해브 어 드림(I have a dream)' 연설이 대표적이다.

흑백 분리 정책은 식당, 카페, 백화점 식당에서도 여전했다. 참다못한 흑인 학생들은 "흑인은 여기서 먹을 수 없다"는 백인들의 요구에도 그저 '앉아서 버티며' 저항했다. 그때, 킹은 자신이 수감되면 언론이 주목한다는 점을 간파했다. 때마침 대선 기간이기도 했다. 킹은 보석과 음식을 모두 거부하면서 승부수를 던졌고, 존 F 케네디 후보가 개입하며 상황이 급변한다. 킹은 8일 만에 석방됐다.

흑인 유권자들은 "킹의 석방을 위해 행동에 나선 건 케네디"란 내용이 담긴 소책자 5만부를 배포했다. 리처드 닉슨과의 득표 차이가 11만표에 불과해 케네디가 신승을 거뒀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킹의 체포 사건은 미국 현대사를 바꾼 결정적 한순간이기도 했다.

킹의 '아이 해브 어 드림' 연설도 그렇다. 킹은 이 연설에서 헌법과 독립선언서를 '부도 수표'에 비유했다.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겠다던 선조들의 약속이 부도 수표에 불과한 것이냐고 주장함으로써, 흑인들의 주장은 '정당한 채권'으로 이해됐다.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논리로 킹은 백인의 제도권에 '싸움'을 건 것이다. 미국이라는 기울어진 링은 비로소 균형을 잡기 시작했다.

킹은 그러나 완벽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한 개인으로서 우울증이 깊었고, 때로 게으르기도 했다. 킹은 불면증과 탈진에 시달렸다. 또 자녀들 몰래 담배를 피우고, 회의에도 줄곧 지각했다고 이 책은 기록한다. 심지어 바람까지 피웠다. 그는 연방수사국(FBI)이 자신을 도청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상태에서도 불륜을 멈추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 책은 킹의 성생활 등 그의 사생활과 일탈을 도청하는 데 집중했던 FBI 수장 존 에드거 후버의 이야기도 상세히 전한다.

비(非)인간으로 취급받던 흑인에게 인간의 권리를 부여하기 위해 킹은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인간이 돼야 했다. 겉으로는 차분한 목소리로 평화를 언급하면서도 그는 제도권의 합의를 받아내기 위해 누구보다 '위협적인' 인간이길 바랐다. 그는 고통을 지렛대로 삼아 분노를 활용하는 전략으로 흑인들을 인간의 자리에 올려세웠다. 그 결과 세상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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