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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꼴은 못 본다"…탁재훈이 180억 배경 뒤로하고 예능 현장 지키는 이유

2026.06.05 04:54

상속자의 가면 뒤에 숨겨진 30년의 땀방울, 스스로를 소진하며 얻어낸 ‘진짜 웃음’의 무게

180억. 예능계에서 탁재훈을 지칭할 때 자주 쓰이는 이 숫자는 그를 단순히 웃기는 방송인이 아닌 상속자로 정의하곤 한다. 부친 배조웅 회장이 운영하는 레미콘 회사의 규모가 알려지며 만들어진 수식어다. 하지만 최근 아들의 경영학과 전과와 회사 승계 연관성을 묻는 질문에 탁재훈이 “그 꼴은 못 본다”고 응수한 반응은 대중의 호기심을 빗겨갔다. 가업 승계에 대한 세간의 시선보다 지금 당장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는 일을 우선시하는 그의 방송관이 잘 드러나는 지점이다. 넉넉한 배경을 뒤로하고 30년 가까이 예능의 최전선을 지켜온 그는 누군가 물려준 자산이 아닌 본인의 이름으로만 승부하겠다는 남다른 고집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상속자라는 수식어 뒤 녹화 현장에서 쉼 없이 역할을 점검하는 탁재훈. 연합뉴스
부친이 가업 승계를 바란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음에도 탁재훈의 선택은 언제나 카메라 앞이었다. 이는 단순한 농담을 넘어 방송인으로서 성과를 직접 확인하려는 평소 가치관이 반영된 태도다.

탁재훈이 왜 180억이라는 배경보다 카메라 앞에서 이름을 증명하는 데 몰두하는지는 굴곡진 경력을 보면 답이 나온다. 1995년 데뷔 후 긴 무명과 빚더미를 지나 컨츄리꼬꼬로 이름을 알렸으나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2007년 연예대상은 영광의 정점이었으나 이후 불법도박 혐의로 활동을 중단하며 긴 공백을 가졌다. 3년의 자숙은 180억 상속자라는 배경이 예능의 치열한 판에서 아무런 보호막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확인한 시간이었다. 복귀 후 마주한 방송가는 과거와 사뭇 달랐다. 예능의 왕으로 불렸던 그가 겪은 소외감과 고립감은 겸손함이라는 자양분을 심어주었다. 판도가 바뀐 현실의 속도를 체감하며 그는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자리를 닦아 나갔다.
30년의 세월 동안 숱한 굴곡을 지나 다시 현장의 중심에 서기까지 그가 걸어온 예능의 길. SBS ‘신발 벗고 돌싱포맨’
이러한 과정은 부친의 소망과 탁재훈이 마주한 현실 사이의 온도 차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안락한 회장실을 뒤로하고 그가 매일 마주하는 곳은 조명이 비추는 스튜디오다. 스포트라이트가 꺼진 대기실에서 고민하는 것은 상속자가 누리는 여유가 아니라 당장 내일 녹화에서 뽑아내야 할 분량이다. 그는 부친의 회사로 출근하는 대신 오늘도 카메라 앞으로 달려가 타인의 웃음을 위해 재능을 아낌없이 소진한다. 이는 부친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식을 넘어 결과물을 직접 빚어내려는 탁재훈만의 원칙이다.


탁재훈의 일상은 대중이 상상하는 유복한 상속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행보는 예능인으로서 고단했던 복귀 과정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방송 현장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매 순간 주어진 몫을 완수해내는 프로의 태도에 가깝다. 180억이라는 수치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할 때도 그는 덤덤히 일터로 향하는 일상을 반복한다. 가벼운 농담 뒤에 숨겨진 우직함은 방송가에서 그가 다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실질적인 배경이었다.
상속자가 누리는 여유 대신 현장에서 웃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스스로를 소진하는 매일의 일상. 탁재훈 SNS
방송은 단순히 웃고 떠드는 일이 아니다. 탁재훈은 예능의 최전선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빈틈을 찌르는 입담으로 승부한다. 이는 치밀하게 짜인 대본보다 녹화 현장에서 벌어지는 날것의 상황에 즉각 반응하는 탁재훈만의 감각이다. 아들의 전과 소식에 보인 단호함은 탁재훈의 가치관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아들이 단순히 가업에 기대기보다 자신의 영역에서 스스로 역량을 증명해 나가길 바라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는 아들에게 세상의 풍파를 직접 헤쳐 나가는 법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묵직한 응원이다.

결국 탁재훈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스스로 쌓아 올린 이름이다. 180억 상속자라는 프레임보다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곳이 그가 유일하게 살아있음을 느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방송인으로서 조명 뒤에 숨지 않는다. 오히려 그 조명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예능인으로서의 진가를 드러낸다.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살아남은 비결은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만들어내는 특유의 본능에 있다. 숱한 굴곡을 겪으며 다시 돌아온 그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은 이제 녹화 무대가 되었다. 그곳에서 끊임없이 웃음을 만들어내며 시청자와 호흡하는 과정은 그가 예능인으로서 자리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승부수였다.
돈이나 배경이 아닌 스스로 쌓아 올린 이름으로 무대를 지키는 이유. tvN ‘내게 남은 48시간’
이제 그는 180억이라는 수치와 자신의 삶을 분리해 생각한다. 그에게 그 돈은 아버지의 성취일 뿐 자신과는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촬영장으로 향하는 일상은 때로는 버겁고 허망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진솔한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거액의 숫자보다 오늘 녹화에서 웃음을 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사람. 배경 대신 방송 현장에서 증명해 온 탁재훈의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삶은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힘으로 개척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매일 무대 위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수진 기자 s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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