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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전술 ‘카브아웃’의 미학…허물 벗은 매미 날아오르듯 성장 동력에 수혈

2026.06.05 09:02

2024년 1월, 블랙스톤은 소니뱅크의 결제서비스 사업부를 약 500억엔(약 4677억원)에 인수하며 일본 핀테크 시장에 처음 발을 들였다. 미국 뉴욕에 있는 블랙스톤 본사. REUTERS

손자병법 36계 중 제21계인 ‘금선탈각’(金蟬脫殼)은 매미가 허물을 벗고 날아오른다는 뜻이다. 위기의 순간이나 성장의 임계점에서 낡고 무거운 껍데기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본체만 실속 있게 빠져나와 새로운 생존의 길을 찾는 전술이다. 현대 자본시장에서 이 병법을 가장 정교하게 구현한 인수·합병(M&A) 전술이 바로 ‘카브아웃’(Carve-out)이다.

카브아웃은 기업이 특정 사업부나 자산을 분리해 독립된 회사로 만들고, 그 지분을 외부 투자자에게 일부 또는 전부 매각하는 방식이다. 이는 단순히 적자 사업을 정리하는 ‘구조조정’을 넘어선다. 오히려 모회사의 거대한 그늘에 가려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알짜 비즈니스’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모회사에는 미래를 위한 실탄(현금)을 제공하고 분리된 신설법인에는 독자적인 성장의 기회를 부여한다.

1. 왜 지금 ‘카브아웃’인가
지난 20년 동안 세계 화학·소재 산업의 나침반은 중국을 가리켰다. 무엇을 만들어도 중국이라는 ‘수요 블랙홀’이 모두 빨아들일 것이라는 믿음 아래 설비 증설 경쟁이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의 지도는 정반대다. 중국은 이제 물량을 흡수하는 곳이 아니라, 저가 물량을 뿜어내는 ‘공급 분수대’가 됐다.

2000~2022년 글로벌 6대 석유화학 제품의 과잉설비는 연평균 7600만 톤(t) 수준이었으나, 2024년에는 2억2200만t으로 급증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30년 평균보다 세 배 가까운 잉여 설비가 시장을 짓누르는 ‘구조적 뉴노멀’의 시대다.

이 파고를 넘기 위해 기업들은 ‘자산 경량화’(Asset Light)와 ‘고성능 소재’로의 전환을 선택하고 있다. 그 핵심 수단이 바로 카브아웃이다. 이뿐만 아니라, 2022년 이후 고금리로 인해 전통적인 ‘레버리지(차입) 매수’(LBO) 비용이 치솟자, 사모펀드(PE)들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합리적이고 현금흐름이 검증된 대기업의 카브아웃 매물로 눈을 돌리고 있다.

2. 글로벌 전장(戰場)의 사례
글로벌 큰손들은 이미 카브아웃을 통해 산업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미국의 글로벌 자산운용사 아폴로글로벌(Apollo Global)이 파나소닉의 자동차사업 부문(PAS)을 인수한 것이다. 2024년 3월, 아폴로는 파나소닉홀딩스가 재무건전성 강화를 위해 매각한 PAS를 약 3110억엔(약 2조9천억원)에 인수했다. 일본의 지배구조 개혁 흐름 속에서 대형 카브아웃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글로벌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의 브로드컴(Broadcom) 사업부인 최종사용자컴퓨팅(EUC·End User Computing) 인수도 잘 알려져 있다. 2024년 2월, KKR은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으로부터 EUC 사업부를 40억달러(약 5조8천억원)에 인수했다. 핵심 역량에 집중하려는 매도인과, 검증된 소프트웨어 자산을 확보하려는 매수인의 이해관계가 정확히 일치한 사례다.

블랙스톤의 소니페이먼트 인수도 빼놓을 수 없다. 2024년 1월, 블랙스톤은 소니뱅크의 결제서비스 사업부를 약 500억엔(약 4677억원)에 인수하며 일본 핀테크 시장에 처음으로 발을 들였다. 이런 거래의 특징은 단순히 ‘싸게 사는 것’이 아니라, 분리된 사업부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비용 구조를 개선해 단기간에 기업가치(Value-up)를 끌어올린다는 점에 있다.

3. 한국 기업의 결단
국내에서도 카브아웃은 이미 M&A 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2022년 8건이던 국내 카브아웃 거래는 2024년 17건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특히 에스케이(SK)그룹은 이 ‘병법’을 가장 공격적으로 구사한다. SKC는 한때 그룹의 모태였던 필름사업부를 한앤컴퍼니에 약 1조5950억원에 매각하는 파격적인 결단을 내렸다. 이를 통해 확보한 현금은 동박(SK넥실리스) 등 배터리 소재 중심의 ‘미래 산업’으로 정체성을 바꾸는 실탄이 됐다. 2024년 말 SK스페셜티 지분을 약 2조6천억원에 매각하기로 한 결정도 비핵심을 넘어 ‘알짜’까지 팔아 인공지능(AI)과 차세대 에너지라는 더 높은 가치의 미래를 선점하려는 전략적 행보다.

엘지(LG)그룹의 행보도 날카롭다. LG화학은 2023년 진단사업부를 글랜우드PE에 매각(1500억원)했고, 이에 앞서 2020년에는 중국발 과잉공급으로 수익성이 떨어진 엘시디(LCD) 편광판 사업부를 약 1조3천억원에 정리했다. 수익성이 한계에 다다른 범용 소재를 떼어내고, 하이니켈 양극재나 탄소나노튜브(CNT) 도전재 등 ‘고성능 소재’ 분야에 자본을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4. 성공적 ‘수술’을 위한 체크포인트
카브아웃은 단순한 지분 매각보다 훨씬 난도가 높다. 대기업의 몸에서 한 부위를 정밀하게 도려내는 수술이기 때문에 다섯 가지 사항을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첫째, 정교하게 분리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사업양수도, 자산양수도, 현물출자, 물적분할 중 세금과 우발채무 리스크를 고려한 최적의 구조를 딜 초기에 결정해야 한다.

둘째, 독립 재무제표(Standalone)의 신뢰성이다. 그룹 공통 서비스 비용을 어떻게 배분하고, 독립법인으로서의 추가 비용을 얼마나 공정하게 추산하느냐가 가격 협상의 핵심이다. 셋째, 전환서비스계약(TSA)의 생명줄이다. 분리된 법인이 자체 정보기술(IT)·재무 시스템을 갖출 때까지 모회사가 지원하는 TSA 기간과 비용 설정은 사업 연속성의 핵심이다.

넷째, 안전·보건·환경(SHE) 이슈의 선제적 치유다. 대기업 시스템에 묻혀 있던 환경·안전 리스크가 독립 후 부각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종결 전 철저한 점검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인력 유지와 오너십을 재설계 해야 한다. 소속이 바뀌는 임직원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새로운 동기부여와 인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금선탈각의 지혜
손자는 “기정(奇正)의 변화는 끝이 없다”고 했다. 정석적인 성장(Buy)과 변칙적인 분리(Sell)가 조화를 이룰 때 기업의 세는 강해진다. 지금 우리 기업들에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소유가 아니라, 자본과 자원을 어디에 집중할지에 대한 냉정한 결단이다.

카브아웃은 기업의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수혈하는 강력한 처방전이다. 금선탈각의 지혜로 담대하게 허물을 벗고, 고성능 소재와 미래 기술의 전장에서 새롭게 비상할 한국 기업들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반영은 휴맥스해운항공 대표 uokiok11@gmail.com

반영은은 1992년 1월 산업은행 국제금융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2020년 M&A실장까지 주로 M&A와 사모투자펀드 업무를 담당하며 현대건설·하이닉스 등 대형 딜의 매각 자문, 금호아시아나그룹·현대그룹·동부그룹 등 대기업의 구조조정 M&A 업무를 수행했다. 2005~2008년, 2017~2020년 두 차례 산업은행 뉴욕지점장 등으로 근무하며 미국 금융시장에서 M&A 인수금융에 참여하는 등 선진 금융시장을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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