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전
22살 두 청년의 다른 삶... 보육원 나온 이들은 이렇게 살아간다
2026.06.05 11:56
| ▲ 두 자립준비청년은 비슷하고도 다른 삶을 살아왔다. |
| ⓒ 챗GPT |
선우(남·22세·가명)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님 손에 끌려 시설에 들어갔다. 경제적 사정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어머니를 만난 건 딱 한 번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점심을 먹고 3시간을 함께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부모님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진짜 해본 적이 없어요. 거기서 이미 너무 큰 사랑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은지(여·22세·가명)는 7살에 시설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상하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엄마는 처음부터 없었다. 같이 살았던 할머니가 더 좋은 환경을 주고 싶다며 서울의 한 아동복지시설로 보냈다.
"그냥 그 공간을 빨리 뜨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퇴소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두 사람은 22살 같은 나이다. 둘 다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주거 지원을 받아 아파트 7~8평 공간에서 혼자 사는 것도, 자립수당과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을 꾸리는 것도 같다. 국가가 동일하게 지원하는 두 청년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기억하는 '시설'은 전혀 다르다.
환경이 달랐던 두 청년의 어린 시절
| ▲ 두 청년에게 '시설'은 다른 의미였다. |
| ⓒ 챗GPT |
선우가 자란 곳은 경기 이남 지방 A군 소재 B복지재단 산하 아동양육시설이다. 종교 법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가정형 소규모 구조였다. 방 하나에 2~3명. 복지사들이 한 가족처럼 아이들을 돌봤다.
"형들이랑 직원분들이 너무 잘 챙겨주셔서 좋은 기억밖에 없어요."
은지가 자란 곳은 서울 C구 소재 D아동복지시설이다. 아파트 형 구조의 7층 건물에 아동 80~90명이 생활했다. 4층부터 7층까지 7개의 호실이 있었고 한 호실에 10명에서 15명이 함께 지냈다.
"고인물 이모들이 너무 많았어요. 기가 눌리고..."
은지가 말하는 '고인물 이모들'은 경력이 많고 타성에 젖은 복지사를 일컫는다. 마치 사감 선생님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퇴소 청년인 선우와 은지에게 시설은 전혀 다른 의미다. 선우에게 시설이 그리운 곳이라면 은지에게 시설은 서류를 떼야 하거나 필요할 일이 생길 때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곳이다. 공통점이라면 둘 다 자신이 시설 출신이라는 사실을 외부에 밝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우는 대학 친구들에게 굳이 그런 말을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은지는 조금은 다른 이유였다. 은지가 중학교 친구들과 다른 특성화고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시설 출신임이 특정되는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다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다 보니까 단체로 학교를 빠질 때 특정될 수밖에 없어요. 사는 곳이 알려지는 게 너무 싫었어요."
시설에서 원생들이 참석해야 하는 행사나 단체 외부 활동이 있을 때 시설에 사는 아이들만 학교를 빠질 때가 종종 있었다. 그 때문에 자신이 시설 출신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게 싫었던 것이다.
은지는 초등학교 때 딱 한 번 가장 친했던 한 명의 친구에게 자신이 시설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집에 가는 길 내내 은지가 불쌍하다며 울었다.
"그게 평생 기억에 남아요. 고맙기도 하고."
은지는 지금도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대학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말을 꺼내면 내 과거를 다 설명해야 되고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상황이 귀찮아요."
자신이 시설 출신이라는 사실은 스스로 설명해야만 이해받을 수 있는 배경이었다.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은 어쨌든 추가적인 설명이 요구된다.
선우는 부모와 법적으로 단절됐다. 입소 당시 친권이 포기됐다. 가족관계등록부에 부모는 없다. 부모의 현재 거처도 모르지만 찾을 생각도 없다. 어머니를 만난 그날을 선우는 새로웠다고 표현했다. 좋았다고 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도 부모님을 보고 싶고 찾고 싶다면, 그게 애정 결핍이 될 것 같아요. (저는)이미 거기서 충분히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은지는 다르다. 할머니와 고모 두 분이 초등학교 때까지 한 달에 한두 번 은지를 찾아 시설을 방문했다. 지금도 명절이면 할머니 집에 간다. 그러나 친모의 행방은 아직도 모른다. 호적에는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만 남았다. 그러나 그 아버지마저도 친아버지가 아니란 사실을 은지는 고등학교 때 우연히 알았다. 지금도 할머니에게 말하지 못한 은지만의 비밀이다.
"그 상자를 열기가 좀 두려워요."
할머니에게도 은지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을 것이다. 둘이 가진 각자의 비밀을 지금에 와서 캐묻는다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은지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평생을 이어온 할머니와 인연이 도무지 알 수 없는,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원가정이 가까울수록 상처도 가깝다. 은지가 시설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집단생활 그 자체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내내, 할머니가 방문을 마치고 돌아갈 때마다 은지는 울었다.
"매일 밤 울었을 거예요."
어린 은지가 시설 문을 나서는 할머니 등을 바라보며 눈물을 쏟았을 생각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자립정착금, 그리고 흉흉한 소문
| ▲ 자립준비청년 일러스트 [강민지 제작] |
| ⓒ 연합뉴스 |
두 사람이 시설을 나오면서 받은 자립정착금은 액수가 크게 달랐다. 선우는 지방 A군에서 1000만 원을 받았다. 은지는 서울에서 2000만 원을 받았다. 여기에 디딤씨앗통장에서 약 2000만 원을 더 받을 수 있었던 은지는 총 4000만 원을 손에 쥐고 독립했다.
선우는 디딤씨앗통장에 얼마가 쌓였는지 모른다. 아파트가 해결됐고 대학 학비도 무료이기 때문에 그걸 꺼내 쓸 생각이 없어 시설 관리자에게 맡겼다. 디딤씨앗통장은 취약계층 아동이 성인이 되었을 때 필요한 자립 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자산형성 지원사업이다. 아동 이름으로 후원자가 매월 일정 금액을 저축하면 정부가 1:2 비율로 매칭하여 월 최대 10만 원까지 추가로 적립해 준다.
선우의 자립정착금은 1000만 원, 은지의 자립정착금이 2000만 원인 이유는 그들이 사는 곳이 어디인지에서 연유한다. 이 격차는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정착금의 규모를 결정하는 구조 안에서 어느 지역의 시설에 배치됐느냐가 첫 출발선의 높이를 결정한다. 이는 보호아동 전달체계 전체를 관통하는 '지방이양사업'이라는 구조적 문제다.
2024년 기준 자립정착금은 지자체마다 500만 원에서 2000만 원 이상까지 벌어진다. 아이는 선택하지 않았다. 국가가 배치했다. 금액을 결정하고 지급한 건 지자체였다. 공적 배치가 결과적으로는 사적 차이를 만들었다.
자립정착금에 대한 흉흉한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시설을 나오면 선배나 가족이 찾아와 온갖 명분으로 그 돈을 요구하는 일이 있다고 들었는데 본 거나 들은 게 있는지를 질문했다. 두 사람은 직접 당하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본 건 있었다.
선우가 말했다.
"주로 원가정에서 와요. 시설 선배들이 그런 건 없었어요."
은지는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돈 달라고 찾아오거나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은지가 전해준 사례는 같은 시설을 나온 언니였다. 아버지의 폭력이 심해 접근금지 명령까지 받았고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아버지가 보이지 않도록 처리까지 했다. 연을 완전히 끊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병원에 있고 수술비가 필요하다. 수소문해서 따님 번호를 찾아서 연락드렸다고 주민센터 직원이 말했다고 해요."
그 언니는 거절했다. 거절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시설에 있을 때는 잊을 만하면 연락하는 게 전부였던 부모가, 퇴소 후에 찾아와 자립정착금과 디딤씨앗통장에 있는 목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시설에 살 때는 상처이기만 했던 가족이라는 단어가 이제 와서 거절하기 어려운 명분이 된다.
자립정착금과 디딤씨앗통장 잔액은 퇴소 시점에 일시 지급된다. 20살 청년이 생애 처음 쥐는 큰돈이다. 법적으로 반환 의무가 없는 '지원금'이지만, 실제로는 원가정의 청구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은지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퇴소하고 나서 같이 살았던 사람들이 끈끈해지는 것 같아요. 그때보다.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 의지가 되다 보면 정이 드니까요."
그 말의 이면에는 이런 뜻도 있다. 퇴소 이후, 원가정이 아닌 시설 형제들이 서로의 안전망이 된다는 것. 국가가 채워주지 못한 자리를 또래가 채운다.
'다행'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 ▲ 2022년 11월 17일 당시 이기일 보건복지부 차관이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자립준비청년 지원 보완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선우에게 부모와의 단절은 어떤 의미에서는 보호였다. 부모를 기억하지 않으니 부모가 돌아올 자리도 없었다. 그러나 모든 자립준비청년이 그 단절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적으로 혹은 심리적으로 연결돼 있으면 그 줄을 타고 퇴소 후에 또 다른 청구가 시작될 수 있다.
자립준비청년 제도는 퇴소 시점에 정착금을 지급하고, 이후 5년간 자립수당 월 50만 원을 5년 동안 지급한다. LH 주거 지원도 연결되고 기초생활수급비로 연계되면서 의료혜택까지 보장받는다. 숫자로 보면 그 연령대에 결코 적지 않은 액수에 주거와 교육 문제까지 해결되는 촘촘한 구조다.
그러나 이 돈이 누구에게 흘러가는지를 추적하는 제도는 없다. 일부 청년의 경우 갑자기 생긴 큰돈을 갑자기 나온 사회에 적응도 하기 전에 탕진하는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정착금 수령 후 원가정으로부터 금전 요구를 받았는지, 실제로 지급했는지를 확인하는 구조는 없다. 담당 사회복지사가 이후 상황을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의무도 없다. 퇴소 이후 자립지원 상담 창구는 존재는 하지만, '찾아가야' 연결된다.
은지는 독립 초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냥 혼자 부딪혔죠."
부동산 계약, LH 신청, 생활비 관리, 원가정과의 문제, 모두 22살이 혼자 감당해야 할 목록이었다. 시설은 단체생활의 규칙을 가르쳤다. 하지만 혼자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라든지 가끔씩 찾아오는 과거로부터의 자신을 지키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선우가 살던 B복지재단 시설은 소규모 가정형이었다. 은지는 80~90명이 한 건물에서 생활하는 집단시설이었다. 하나는 종교법인이 운영하며 후원이 풍부했다. 다른 하나는 10년 이상 자리를 지킨 복지사들이 위계를 만들었다. 아동복지법 제3조는 '아동은 가정 또는 가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양육되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80~90명이 함께 사는 공간이 가정과 유사한 공간인지에 대해 국가는 오랫동안 대답이 없었다.
어떤 시설에 배치되느냐는 아이가 결정하지 않았다. 어느 지역이냐에 따라 자립정착금이 달라지고, 어떤 원가정을 가졌느냐에 따라 퇴소 후 위험이 달라진다. 아이는 그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선우는 인터뷰 중에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저는)운이 좋은 케이스죠."
선우가 자란 시설 환경은 전국에 있는 230여 개소의 아동양육시설 중에서도 최상위로 꼽힐 만한 곳이다. 은지가 자란 시설이 가장 보편적인 환경이다. 선우가 말한 '운이 좋은 케이스'라는 문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현상이 우리나라 보육시설의 현실이다.
은지는 잘 살고 있다. 헬스와 필라테스를 하고, 4000만 원이 넘는 돈을 불리기 위해 편의점 알바와 근로 장학생을 병행하며 학교에 다닌다. 은지는 강하고 독립적이다. 선우도 잘 살고 있다. 자립지원금과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을 하지만 아끼고 절약하며, 알바도 하지 않는데 100만 원씩 저축한다. 선우는 매우 밝고 긍정적인 청년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청년의 삶은 건강하다. 이것은 제도의 성공인가. 아니면 두 청년의 타고난 생존력인가. 두 질문의 성격이 다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인터뷰어로 많은 자립청년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삶을 깊게 들여다봤지만 선우와 은지의 삶은 가장 높은 수준의 건강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연한 기회에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두 청년의 삶을 들여다봤다. 이 나라는 좋은 시설을 만난 아이나 나쁜 시설을 만나 아이 모두에게 지자체의 형편에 맞는 지원금을 지급하고 독립을 요구한다. 원가정이 찾아오든 오지 않든, 선배로부터 돈이 지켜지든 빼앗기든, 부동산을 계약할 때 주의해야 할 것과 수천만 원이 넘는 목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구조는 없다. 그들은 지원 완료된 통계로만 기록될 뿐이다.
여기 기록된 22살 두 청년의 삶은 그래서 다행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해줘야 할 말은 다행이라는 말이어서는 안 된다. 당연하다는 말이어야 한다. 응당 그래야 마땅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 지역명, 시설명은 모두 가명 또는 익명으로 처리했습니다.
*인터뷰는 2026년 4월 27일(선우), 5월 7일(은지)에 각각 전화 통화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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