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들의 뚜벅이 여행 성지, 강원도 동해를 가다
2026.06.04 17:57
【동해(강원)=정순민 기자】 최근 여행 트렌드를 이끄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뚜벅이 여행'이다. 자동차 대신 기차와 두 발로 도시를 천천히 걸어보는 여행 방식이다. 강원도 동해시는 이런 흐름의 중심에 선 곳이다. 서울에서 KTX를 타고 한 번이면 닿을 수 있는 접근성에 바다와 골목, 역사와 산업유산,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풍경을 품고 있어서다.
동해 여행의 출발점은 묵호다. 한때 석탄과 시멘트, 오징어와 명태를 실어 나르던 동해안 대표 항구였지만 산업구조 변화와 함께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낡은 옛 골목과 항구의 기억을 지우지 않고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되살리면서 지금은 MZ세대가 찾는 '가장 힙한 바닷가 마을'로 변신했다. 최근 젊은 여행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강원도 동해를 다녀왔다.
■'뚜벅이 여행 성지' 묵호를 아시나요?
묵호항은 한때 동해안 최대 어항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탄광산업 쇠퇴와 어획량 감소, 동해항 개항 이후 항만 기능이 축소되면서 항구는 점차 활력을 잃었다. 전환점은 도시재생 사업이었다. 주민과 행정, 민간이 함께 골목과 마을의 가치를 재발견하기 시작하면서 묵호는 새로운 여행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교통망 확충이었다. KTX가 동해시까지 연장되면서 수도권 여행객들은 환승 없이 동해를 찾을 수 있게 됐다. 과거 3∼4시간 걸리던 이동 시간이 크게 줄어들면서 당일치기 여행도 가능해졌다.
묵호의 매력은 자동차 창밖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골목길을 두 발로 직접 걸어봐야 비로소 풍경이 열린다. 대표 명소인 논골담길은 묵호의 역사와 삶을 품은 공간이다. 가파른 언덕과 좁은 골목, 벽화와 조형물 사이로 옥빛 동해바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생선을 말리던 덕장과 바닷물을 머금은 골목의 기억도 곳곳에 남아 있다.
요즘 묵호에서 가장 핫한 장소는 어달삼거리 언덕길이다. 언덕 위에서 동해바다 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마치 일본의 가마쿠라 해변과 닮았다고 해서 젊은 여행객들이 반드시 찾는 '인생샷' 명소가 됐다. 알록달록한 테트라포드가 눈길을 끄는 어달항과 인근 골목길에 들어선 작은 카페와 공방, 소품점들도 전국에서 모여든 청춘남녀들로 늘 북적인다.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도 빼놓을 수 없는 장소다. 묵호항 절벽 위에 조성된 이곳에는 유리바닥 아래로 동해 바다가 펼쳐지는 스카이워크와 하늘을 달리는 스카이사이클, 아찔한 스릴을 맛볼 수 있는 자이언트 슬라이드 등이 있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북평에서 정선까지, 동해소금길
묵호 바닷가에서 동해의 안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강원판 솔트로드(Salt Road)'라고 해야 할 동해소금길이다.
동해소금길은 옛 보부상들이 동해 북평장에서 구입한 소금을 정선 임계장터까지 운반하던 교역로다. 과거 소금을 팔러 다니던 길은 지난 2015~2022년 진행된 동해소금길 조성사업을 통해 트레킹 코스로 복원됐다. 동해소금길 복원사업을 주도했던 동해시와 동해문화관광재단은 최근 증가하는 걷기여행 수요에 맞춰 다양한 소금길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동해소금길은 3개 코스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과거 보부상 문화의 흔적을 간직한 신흥마을에서 출발해 용소폭포와 원방재를 지나는 제1코스는 역사와 생태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길이다. 여기선 보부상 복장을 입고 지게를 메보거나 전통 먹거리를 맛보며 옛 상인들의 삶을 간접 체험해보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제2코스는 동해시 삼화동 이기마을과 이기령을 잇는 전통 옛길이다. 바람과 숲, 바다 풍경이 어우러지는 구간으로, 출발점은 과거 보부상들이 백두대간을 넘기 전 잠시 쉬어가던 장재터다. 여기서부터 이기령 정상을 찍고 다시 돌아오는데 왕복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가장 인기가 많은 제3코스는 근대산업 문화유산을 따라 걷는 길이다. 그 중심에 옛 폐채석장을 복원해 만든 무릉별유천지가 있다. 이 구간의 하이라이트는 석회석을 채굴하고 난 구덩이에 물이 흘러들어 형성된 두 개의 인공호수, 청옥호와 금곡호다. 호수 풍경이 아름답지만 길 초반부터 오르막이 이어져 최종 도착지인 미역널이(주막터)까지 다녀오려면 체력 안배를 잘해야 한다.
■6월 무릉별유천지는 보랏빛 물결
동해소금길 제3코스가 시작되는 무릉별유천지는 그 자체로도 꼭 가볼만한 여행지다. 지난 1968년부터 쌍용양회 석회석 광산으로 반세기 넘게 시멘트 원료를 공급하던 이곳은 지난 2017년부터 관광지 조성사업이 추진돼 2021년 하반기 무릉별유천지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동해시는 이곳을 단순 복구하는 대신 산업유산을 보존하면서 이를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재생의 길'을 선택했다. 그 결과 32만여평 규모의 공간은 에메랄드빛 청옥호와 금곡호, 거대한 석회절벽, 각종 체험시설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관광지로 탈바꿈했다.
무릉별유천지의 가장 큰 볼거리는 채석장에 자연스럽게 물이 차오르며 형성된 청옥호와 금곡호다. 석회석 성분이 녹아든 호수는 맑고 선명한 에메랄드빛을 띠며 웅장한 석회암 절벽과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6월이면 이곳은 또 한번 화려한 변신을 한다. 광활한 부지에 심은 라벤더가 꽃망울을 터뜨리면서 세상이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어서다. 여기선 해마다 축제도 열린다. 오는 13일 개막하는 '2026 무릉별유천지 라벤더축제'에선 정원 관람은 물론,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 플리마켓, 야간 경관 콘텐츠 등이 운영될 예정이다. 또 금곡호 상공을 가로지르는 스카이 글라이더를 비롯해 롤러코스터형 집라인, 알파인코스터, 오프로드 루지 등 이른바 '4대 액티비티'도 즐길 수 있다.
특히 아시아 최초로 도입된 스카이글라이더는 호수와 절벽을 한눈에 조망하며 급하강하는 극강의 짜릿함을 제공해 무릉별유천지를 대표하는 체험시설로 꼽힌다. 과거 중장비와 덤프트럭이 오가던 길을 씽씽 달려볼 수 있는 오프로드 루지도 신바람을 내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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