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 전 유럽 귀족의 비밀 과외, 더현대서울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 완벽 가이드
2026.06.04 20:08
더 현대 서울 ALT.1 미술관 전시장 입구는 오후 일찍부터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유럽 회화 거장들의 원화전 소식에 설렘과 걱정을 동시에 안고 전시장으로 들어섰다. 미술 지식이 얕은 나로서는 오랜 지인인 미술평론가 도선생의 동행이 그저 든든하기만 했다.
“도선생, 내 미술 지식은 아직 구석기 시대 수준인데 미술관 이름은 무려 더 현대라니, 이거 어쩐지 민망해지는데요? 전시장 바닥을 파헤쳐서 빗살무늬 토기라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만.” 도선생은 넉넉한 미소로 내 실없는 농담을 받아주었다. “인류가 빚어낸 미학의 정수가 바로 고전 명작입니다. 저를 믿고 그저 편안하게 즐기시면 됩니다.”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 톨레도 미술관 명작展’은 3월 21일 오픈했다. 70여 일이 지났지만, 관람객들의 발길은 틀어놓은 수도마냥 끊어지지 않고 있다. 전시는 7월 4일까지 관객을 맞이한다.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 중 50점 이상을 엄선해 국내 최초로 여는 대규모 전시다. 유리 산업가 에드워드 드러먼드 리비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탄생해 미국 최고 수준의 공공 미술관으로 자리 잡은 이곳은 3만 점 이상의 명작을 보유 중이다. 이 세계적인 미술관의 보물들이 한국을 찾은 것이다.
첫 번째 공간인 ‘1부 회화와 권력’ 전시실은 묵직하고 짙은 붉은색 벽면이 왕실의 엄숙한 위엄을 풍겼다. 아치형 구조로 연출된 강렬한 붉은 벽면 아래로 관람객들이 모여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도선생이 내 소매를 가볍게 끌었다. 우리는 프랑스 신고전주의 거장 자크 루이 다비드가 완성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앞에 섰다.
“이 작품을 보십시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세 형제의 결연한 눈빛과 그들에게 칼을 쥐여 주는 아버지의 손길이 느껴지십니까. 인물들의 역동적인 구도가 공간 전체를 팽팽하게 압도하고 있으니 과연 권력의 미학이라 부를 만하군요”라며 도선생은 적극적으로 관람을 권했다.
나는 화폭을 찬찬히 눈에 담으며 대답했다. “지배층의 강력한 위엄을 세우고 대중과 소통하려는 목적이 숨어있지 않을까요? 저 서슬 퍼런 칼날 세 자루를 쥐어 올린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맹세를 받는 연출이 무척 서늘합니다.”
도선생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내 감상에 공감했다. “그 서늘함 속에 바로 권력의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당시 예술가들은 상류층 후원자들로부터 경제적 안정과 직업적 성공을 보장받는 대신, 그들의 지위를 대변하는 정교한 시각 자료를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다비드의 대작이나 앙투안 장 그로의 ‘아일라우 전장의 나폴레옹’ 같은 역사화가 이토록 숨 막히는 연출을 보여주는 것도 결국 지배층을 위한 직접적인 정치 선전물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다른 벽에는 프랑스 궁정 화가 엘리자베스 루이 비제 르 브룅이 그린 ‘세레스 백작부인’이 걸려 있었다. 푸른 모자에 타조 깃털을 꽂고 황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자태는 대단히 매혹적이었다. 검은 숄과 어두운 배경 대비 덕분에 백작부인의 기품이 한층 돋보였다. 이 전시실은 스페인 왕실과 프랑스 귀족, 가톨릭교회 고위 추기경들이 주문한 수작들로 가득했다.
안토니 반 다이크의 ‘남자의 초상’은 귀족의 엄격한 신분적 위엄을 담고 있었다. 거장 엘 그레코의 ‘겟세마네의 기도’는 독특하게 변형된 신체 표현과 강렬한 색채로 종교적 신비로움을 자아냈다. 프란체스코 살비아티의 ‘성가족과 세례 요한’과 파올로 베로네제의 ‘그리스도와 백부장’도 우리의 시선을 오래 붙잡았다.
백색의 아치 구조물이 돋보이는 ‘2부 신화와 기억: 1600년대에서 1700년대’ 전시실로 자리를 옮겼다. 고전 고대의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방 전체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눈에 띄는 작품 앞으로 걸어가 도선생을 불렀다.
“클로드 로랭의 ‘춤추는 님프와 사티로스가 있는 풍경’을 보니 묘한 해방감이 듭니다. 울창한 나무 그늘에서 신화 속 존재들이 자유롭게 어우러진 모습이 무척 아늑해 보이는군요.” 도선생은 내 감상에 고개를 끄덕이며 캔버스 이면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 아늑함이야말로 당대 지식인들이 가장 갈망했던 풍경입니다. 당시 유럽의 엘리트들은 고전적 영감을 얻고 복잡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이탈리아로 그랜드 투어를 떠났습니다. 그리스 로마의 역사와 신화 속 평화로운 세계를 빌려와 휴식을 취하고자 했던 열망이 클로드 로랭이나 프란체스코 프리마티초의 회화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위베르 로베르가 그린 ‘로마 고대 유물 복원가의 작업실’은 정교한 묘사가 일품이었다. 캔버스 속 고대 조각의 간격과 건축물의 균형이 마치 자를 대고 잰 듯 치밀했다. 그 정밀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랜드 투어의 명소들을 사진처럼 똑같이 베껴 그린 것은 아닐 텐데요. 하하!”
도선생은 내 농담을 흥미로워했다. “당시의 창작 기류를 정확하게 관통하셨군요. 이 화가들은 유적들을 정밀하게 묘사하면서도 자신만의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비전을 결합했습니다. 신화와 기억의 경계를 절묘하게 허문 예술적 성취로 봐야겠지요.”
유럽의 옛 무역항을 연상시키는 ‘3부 예술의 비즈니스: 1600년대에서 1700년대’ 전시실에 도착했다. 상업적 시장과 예술가의 관계를 다룬 기획이 신선했다. 예술가들이 마주했던 치열한 삶의 흔적이 공간 곳곳에 배어 있었다.
“예술가들도 결국 마감을 지켜야 돈을 벌었을 텐데요.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생업을 유지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점에서는 오늘날의 자영업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만.” 도선생은 내 분석(?)에 웃음으로 화답했다.
“시장 경제의 냉철한 이면을 아주 예리하게 포착하셨군요. 위대한 걸작이 오직 가난과 고립 속에서만 태어나야 한다는 관념을 완전히 깨부수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유럽 예술가는 정교한 사회적 네트워크와 활발한 미술 시장 속에서 철저하게 생업을 영위했습니다.”
루이즈 무아용과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의 작품은 가족 중심의 작업 환경을 명확히 증명하고 있었다. 가문 기반의 결속 체계가 화가의 경력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가르쳐 주었다. 창작의 중심이 기술적인 공예에서 개별 예술가로 이동하면서 국제적인 스타 화가들이 출현한 시기이기도 했다.
네덜란드 거장 렘브란트 하르먼스존 판 레인의 ‘깃털 모자를 쓴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받아 떠오른 청년의 얼굴과 타조 깃털의 질감이 생생하다. 카날레토로 불린 지오반니 안토니오 카날의 ‘베네치아 리바 델리 스키아보의 풍경’은 이국적인 해안가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었다. 베네치아의 활기찬 일상이 손에 잡힐 것만 같다.
도선생이 한 발 앞으로 나아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작품들을 보세요. 렘브란트나 카날레토 같은 대가들이 등장한 배경에는 길드와 아카데미, 후원자들이 핵심 축이 되어 정교한 비즈니스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었던 구조적 환경이 존재합니다.”
이제 아늑한 노란빛 조명이 감도는 ‘4부 삶을 비추는 아름다움의 시선: 1600년대에서 1700년대까지’ 전시실로 간다. 관람객의 마음을 평온하게 가라앉히는 묘한 마력이 있는 방이었다. 관람객들이 분홍색 긴 벤치에 편안하게 앉아 초상화들을 여유롭게 감상하고 있었다.
네덜란드 화가들의 소박한 풍속화 앞에 섰다. 캔버스의 깊은 어둠과 대비되는 따스한 빛을 바라보며 도선생에게 물었다. “배경은 컴컴한데 사람 얼굴에만 무대 조명을 비춘 것처럼 빛이 납니다. 거창한 영웅도 아닌 평범한 이웃들의 일상인데 묘하게 눈길을 사로잡네요.” 도선생은 내 직관적인 감상에 수긍하며 답했다.
“빛을 연극적인 효과로 다룬 심미안이 탁월하십니다. 17세기 바로크 화가들은 사회 계층을 막론하고 평범한 삶 속에서 발견되는 자연스러운 미를 포착해 냈습니다. 후세페 데 리베라와 헤라르트 테르 보르흐의 초상화가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프랑스 로코코 양식의 수작들로 발걸음을 옮겼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까막잡기 놀이’와 장 마르크 나티에의 ‘로앙 공주’가 눈부신 필치를 과시했다. 화폭 속 인물들은 아랫배에 은은한 꼬마 등불을 켠 반딧불이처럼 부드러운 빛을 품고 있었다. 도선생이 말했다.
“프랑스 예술가들은 부유한 후원자들의 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집중했습니다. 반면 프란스 할스의 ‘풍경 속의 판 캄펜 가족 초상’이나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수레를 탄 아이들’은 당대인들의 삶을 꾸밈없이 투영합니다.”
아브라함 블루마르트의 ‘소네트를 읽는 양치기 여인’과 조슈아 레이놀즈 경의 ‘마스터 헨리 호어’도 정서적 교감을 끌어냈다. 생동감이 전시장 전체를 가득 채웠다.
싱그러운 초록색 벽면으로 단장한 ‘5부 자연의 포착: 1600년대에서 1800년대까지’ 전시실에 들어섰다. 존 컨스터블의 1837년 작 ‘아런델 방앗간과 성’ 앞에 서자 시원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뺨을 스치는 듯했다. 화폭 속 대지는 숨을 쉬는 것처럼 평화로웠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니 얀 브뤼헐 1세와 야코프 판 라위스달 등 네덜란드 거장들의 풍경화가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그린 미술품인데 네덜란드의 항구와 수로가 유독 지도처럼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마치 지형 실측도를 보는 느낌이다.
“자연을 담은 순수 예술인데 항구와 수로의 상태가 지도처럼 정밀하게 기록되어 있군요. 여기에는 혹시 다른 목적, 예를 들어 경제적인 목적이 숨어있지 않을까요?” 도선생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도선생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명화 속의 실용적 기능을 정확하게 짚어내셨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에서는 국가 경제의 근간인 항구를 기록한 사실적인 작품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도선생은 역사적 배경을 덧붙였다. “해상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신흥 시민 계급이 새로운 미술품 소비자로 부상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종교적 주제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무역 거점과 경제적 성공을 시각적으로 증명하고 싶어 했습니다. 국가 번영의 상징인 항만과 수로를 정밀하게 기록하려는 사회적 요구가 사실적인 해양 풍경화의 전성기를 끌어낸 것이죠.”
도선생은 안 발라예 코스테르의 세밀한 재현 방식과 낭만주의 화가들의 야외 사생 기법을 비교하며 설명을 보탰다. “안 발라예 코스테르가 작업실 내부에서 정물을 정밀하게 관찰해 화폭에 그렸다면, 낭만주의 화가들은 캔버스를 들고 아예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현장에서 자연의 조명과 기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작업하는 ‘외광 회화’ 방식을 지향한 것입니다.”
통제된 공간을 탈피해 자연으로 들어간, 제작 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이었다. 시시각각 바뀌는 햇빛의 위치와 바람의 방향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대자연의 생동감을 캔버스에 붙잡아 두려는 열망이 투영된 결과물이었다.
마지막 ‘6부 세계 속의 유럽 미술: 1600년대에서 1800년대까지’ 전시실은 거대한 세계지도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벽면에는 커다란 금빛 액자 속 명화들이 질서정연하게 걸려 있었고, 관람객들이 저마다 작품 앞에 멈춰 서서 집중하고 있었다. 외젠 들라크루아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귀환’이 압도적인 위용으로 다가왔다.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인들의 인식 변화를 상징하는 대작이었다.
마리아 판 오스터베이크의 ‘엔터블러처 위 라인강 유역 석기 꽃병에 담긴 꽃다발과 조개 장식’과 발타사르 판 데르 아스트의 정물화도 눈부셨다. 이국적인 조개와 아시아의 도자기 그릇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글로벌 무역의 흔적이 작품에 지문처럼 선명하다.
“이 작은 캔버스 하나에 전 세계를 누비던 거대한 무역 항로가 통째로 고여 있군요. 대양을 건너온 진귀한 보물들을 이토록 촘촘하게 모아놓은 모양새가 볼수록 신기합니다.”
도선생이 부드럽게 말을 받았다.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아시아의 도자기와 아메리카의 조개껍데기처럼 먼바다의 숨결을 품은 이국적인 재료들이 화가의 붓끝에서 세밀하게 살아난 덕분입니다. 단순한 사물 배치가 아니라 당대 네덜란드가 쥐고 흔들던 글로벌 무역의 당당한 이정표인 셈입니다.”
도선생의 손가락이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베네치아의 캄포 산토’로 향했다. “이 작품은 더 흥미롭습니다.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서서히 저물어가는 이탈리아 항구 도시와 새롭게 힘을 얻고 떠오르는 제국의 대조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작품을 가만히 바라보며 마지막 해설을 건넸다. “물건과 자본뿐 아니라 아이디어와 예술까지 지구 전역으로 활발하게 오가는 현대 글로벌 경제의 출발을 예고하는 상징으로 보면 이해하기 쉬우실 겁니다.”
모든 구역을 둘러본 우리는 미술관을 나와 인근의 조용한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커피 향이 조용히 번졌다. 전시장 안에서의 긴장과 피로가 느긋하게 일렁이는 바다처럼 풀어졌다.
“오늘 전시를 관람하고 나니 미술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진 것 같습니다. 미국 톨레도 미술관이 100년 넘게 수집한 유럽 회화 컬렉션이라니. 거장들의 진품 원화를 한자리에서 만나는 시간은 지적 문화 소비 욕구를 가진 관객들에게 완벽한 선물이 되겠군요.”
도선생은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며 내 의견을 받아주었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오늘 전시는 회화가 역사 속에서 수행한 핵심적 역할과 후원자, 예술 시장 등 광의의 사회적 맥락을 다각도로 탐구할 기회를 선사한 훌륭한 자리였습니다. 국장님과 대가들의 흔적을 따라가며 예술적 영감을 나눌 수 있어 저로서도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꼭 불러주세요. 기꺼이 달려오겠습니다.”
카페 통유리창을 통과해 쏟아지는 오후의 볕은 온몸의 피로를 기분 좋게 녹여낼 만큼 아늑했다. 화폭 속 위대한 유산들을 잔뜩 눈에 담은 덕분인지, 쉼 없이 굴러가던 머릿속 생각들이 서랍 안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휴식을 취하는 기분이었다. 식어가는 찻잔 주위로 잔잔한 바다의 숨결 같은 평화가 소리 없이 고였다. 멋진 날이다. 하이! 렘브란트, 쌩유! 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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