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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재단 이사장 해임 요청안, 그 뒤엔 ‘짜인 각본’이 있었다 [정동에서 세종대로까지 ②]

2026.06.05 06:42

한국언론진흥재단 상임이사들은 표완수 이사장에게 모든 업무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했다. 이사장 해임 요청안이 결재판에 올라오던 날, 각본의 윤곽이 완성됐다.편집자주: 표완수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은 1980년 〈경향신문〉 기자 시절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강제 해직되었다. 이후 해직 기자 출신으로 경인방송, YTN, 〈시사IN〉 대표이사를 거쳐 2020년 10월~2023년 10월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그를 재단 이사장직에서 쫓아내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진행됐다. 검찰 출입 기자 출신 상임이사 임명, 보수 인터넷 매체 허위 보도, 국민의힘 동조, 보수단체 고발, 문화체육부 장관 압박 등 윤석열 검찰 정권 특유의 ‘표적 수사’를 연상시켰다. 언론재단의 각종 대외 보조금 지원 사업을 자신들 입맛대로 진행하기에는 ‘꼬장꼬장한 표완수’가 걸림돌이었다. 단행본 〈정동에서 세종대로까지-언론인 표완수의 50년 기록〉 출간을 앞둔 표완수 전 이사장이 당시 과정을 3회에 걸쳐 특별 기고한다.

2022년 12월14일 표완수 당시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주한 중국 대사관과 공동주최한 ‘한·중 수교 30주년, 성과와 전망’ 언론 포럼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여름 윤석열 정권은 언론 장악을 본격화했다. KBS 이사장과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장을 해임하는 등 본색을 드러냈다. 한국언론진흥재단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해 7월10일은 언론재단의 월요 정례 간부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간부회의 말미 임원 발언 시간에 경영이사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제 국회 답변에서 ‘열독률 조작’ 문제와 관련해 이사장께서 책임 떠넘기기를 하셨습니다. 이사장님은 관련 전문가들이 알아서 한 일이라고 했어요. 재단 내부 사정을 외부에 알렸습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얘기 안 하고 유리한 것만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장께서는 본인이 관련된 ‘열독률 조작’에 대한 조사에서뿐만 아니라 재단의 모든 업무에서 손을 떼십시오. 이것이 전체 상임이사들의 합의 사항입니다.”

뜻밖의 말이었고, 배은망덕한 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말을 받았다.

“경영이사는 국회 답변에서 이사장이 했다고 지금 경영이사가 주장하는, 소위 책임 떠넘기기, 재단 내부 사정을 외부에 알렸다고 하는 내용 등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여 문서로 작성해서 이사장에게 제출하시오. 정말 뜻밖이오. 이사장은 꼭 발언했어야 할 사항도 재단을 위하여, 본인이 고발되어 있음을 핑계로 ‘말씀드리기 부담스럽다’고 함구해줬는데, 이사장의 그런 진심을 이런 식으로 폄훼하다니···.”

회의를 마치면서 임원들과 간부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사실이 아닌 것, 진실이 아닌 길로 가지 마시오. 사실이 아닌 길로 가면 나중에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명심하시오!”

간부회의를 마친 뒤 경영이사와 광고이사를 각각 이사장실로 따로 불러 대화하려고 하였으나 두 사람 모두 이사장실에 들어오기를 거부했다.

30여 분이 지난 오전 10시쯤 상임이사 3인이 임원회의실에서 이사장을 뵙자고 한다고 비서가 이사장실에 와서 보고했다. 이사장실로 오라고 할 때는 안 오고, 셋이 임원회의실에 모여서 이사장을 오라고 하는 게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비겁한 자들은 항시 떼로 몰려다니는 법이니까’라고 생각하면서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기색을 살펴보니 셋 다 심각한 표정이었다.

자리에 앉아 이사들 얼굴을 둘러보고 있자니 광고이사가 경영이사에게 “어서 말씀하시라”고 다그쳤다. 경영이사가 사전에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 쪽지를 꺼내 읽었다. 요지는 이사장이 모든 업무에서 손을 떼라는 압박이었다. 나는 폭발하려는 감정을 누르며 말했다.

“그게 옳은 일입니까? 지금까지 여러분이 살아온 인생 경험에 비추어 무엇이 옳은 길인지 판단해보시오. 정도로 가고, 옳은 길로 가시오. 당신들 지금 총만 안 찼지 나를 ‘최규하’로 만들고 있는 게 아니오?”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회의실 문을 나섰다. 하루 종일 기분이 언짢았다.

2023년 8월21일 윤석열 정부 방송통신위원회가 권태선 당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해임안을 의결하자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규탄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사실이 아닌 길은 대가를 치릅니다”



7월14일 〈미디어오늘〉에 ‘언론재단이 광고 단가로 특정 언론 밀어줬다? 애초부터 오류였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내가 보기에는 객관적 보도로, 지금까지 언론재단에 대한 일련의 공격이 얼마나 의도적이고 편향적이었으며, 또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잘 나타내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제헌절인 7월17일, 경영기획실장에게서 뜻밖의 보고가 올라왔다. 경영이사가 매주 월요일 오전 9시10분에 열리는 임원, 국·실장 등이 참석하는 이사장 주재 간부회의를 생략하고, 본부별로 따로 간부회의를 하도록 각 국·실장에게 통보하라고 경영기획실장에게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이제 최후의 발악을 하는구나!’ 싶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상임이사 셋과 그들의 윗선이라 할 수 있는 문체부 장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직원들에게 상황을 전하고, 무엇이 옳은 길인지 방향을 알려주는 수밖에 없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직원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이사장 편지가 완성되었다. 그것을 언제, 몇 시에 사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릴 것인가? 시간이 중요했다. 너무 일찍 올리면 전파되기 전에 그들에 의해 차단될 수 있다. ‘그래, 점심시간 직전에 올리자!’ 그렇게 해서 이사장이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직원에게 쓴 유일한 편지 ‘직원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은 2023년 제헌절 낮 12시 직전 언론재단 사내 게시판에 올라갔다.

이날 오후 보수 인터넷 매체 〈트루스가디언〉은 즉각 이에 대해 보도했다. 기사 제목은 ‘언론재단, 업무 배제 이사장이 임원에게 “항명이냐” 내부 분란 점입가경’. 〈트루스가디언〉의 기능과 역할이 확연히 드러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언론재단 노동조합은 ‘노동조합 입장문’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같은 날 〈기자협회보〉도 이런 상황을 기사로 다루었다. ‘이사장 업무 배제한 언론재단 이사들’이 그 제목이었다.

며칠 뒤, 문체부 장관 면담 일정이 잡혀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8월1일 오전 8시30분이라고 했다. 당일 아침 사무실에 출근해 현안 몇 가지에 대해 자료를 점검한 뒤 서울역 근처 장관의 서울 집무실로 향했다.

표완수 당시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 해임이 추진된 2023년 6월 윤석열 정권의 언론 장악이 본격화되었다. 당시 야당은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연합뉴스


장관은 두 가지 사안을 중점적으로 따졌다. 그는 ‘문제의 열독률 조사’와 관련하여 재단의 직원을 책임자로 특정하고 있었으며, 기관 최고 책임자인 언론재단 이사장이 직접 그것을 사실로 확인해주기를 바랐다. 다른 하나는, 언론재단의 ‘리더십 문제’였다. 장관은 재단에서 이사장의 리더십이 와해되었다고 주장하며, 이사장 자신이 그것을 직접 확인해주기를 바랐다.

첫 번째 사안에 대한 나의 답변은 분명했다.“열독률 조사와 관련한 세부적인 사항들이 누구누구의 아이디어라고 이사장이 특정하지 못합니다. 만약에 문제가 있다면 총체적으로는 이사장인 나 자신이 책임을 집니다.”

소위 ‘리더십 와해’ 건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를 장관에게 설명했다. “재단에서 이사장의 리더십은 전혀 와해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리더십 와해를 획책하는 소수의 인사들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장관의 의도는 명백했다. 두 가지 사안에 대해 기어이 재단 이사장의 확인을 받고자 했다. 자연히 언성이 높아졌다. “리더십 와해를 획책하는 소수의 인사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상임이사들입니다. 장관님이 추천한 사람들입니다. 장관님 앞에서 이런 말씀 드리기는 죄송합니다만, 그 친구들 완전 XXX들이에요!”

‘리더십 와해’ 추궁한 문체부 장관



밀고 버티기가 반복되는 가운데 면담은 유쾌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어정쩡하게 끝났다. 무리한 주장을 펼쳤음에도 면담이 끝난 뒤, 장관은 다시 언론계 선배를 대하는 태도를 보였다. 담당 공무원을 불러 “이사장님을 잘 배웅해드리고 오라” 지시하며 예의를 갖췄다.

언론재단 이사장실로 복귀한 나는 황당한 사실에 직면했다. 문체부 장관이 언론재단 이사장을 면담한 사실이 이미 보도자료로 나와 있었던 것이다. “언론재단의 리더십이 와해되었으며 문체부로서는 곧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여 시행할 것”이라는 게 요지였다. 재단의 담당 팀장이 보도자료를 가지고 와서 내게 보고했고, 그 내용을 보며 ‘아, 이미 짜인 각본대로 굴러가고 있었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찌 경악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기시감이 들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1980년 6월9일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로 일하던 내가 치안본부 대공수사처(이른바 남영동)에 연행돼갔을 때가 떠올랐다. 그날 새벽 5시, 나를 남영동으로 연행해가기 전에 이미 ‘고려연방제 주장’ ‘월남은 망했어도 국토는 통일되었다’ 등등 당시로서는 무시무시한 ‘죄목’이 들어간 연행 관련 보도자료가 발표되었다. 또 그것이 내가 근무하던 〈경향신문〉 1면 ‘중간 톱’ 기사로 상세히 보도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약 1년이 지난 후에 옛 자료를 살펴보고 알았다.

그때 그 악명 높던 수사기관에서 하던 수법이 지금까지 남아 문체부와 언론재단에서도 사용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검찰 정권’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유치하고 악랄하다는 말인가!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그 수법이 매우 기분 나빴다. 하긴 언론재단과 이사장인 나를 공격하기 위해 ‘지라시’라는 이상한 수단을 활용하는 경우도 언론재단 안에서 이미 경험한 터이기는 했다.

장관 면담을 하고 하루가 지났던가, 이틀이 지났던가? 이사회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팀장이 매우 난처한 표정으로 결재판을 들고 이사장실에 들어왔다. “이사장님, 상임이사들이 긴급 이사회 개최를 요구해왔습니다. 단일 안건인데요. 말씀드리기조차 죄송한데, 이사장님 해임 요청안입니다.”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매우 급하게 진행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일전의 장관 면담이 신호탄이었구나.’

“해임안 요청 요건은 갖추어졌는가? 이사장이 이걸 결재하면 며칠 이내에 이사회를 개최해야 하지?”

“상임이사 3인이 서명했으니까 요건은 갖추어졌고요. 20일 이내에 개최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정기 이사회 날짜가 언제지?”

“8월16일입니다.”

“그럼 잘 되었네. 20일 다 채워서 열 필요가 뭐 있는가? 정기 이사회 안건에 포함해서 처리하도록 하십시다!”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었지만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상임이사 세 명 중에서 두 명을 해임시킬까를 두고 여러 날 고민했다. 그 둘은 명백히 항명, 혹은 이사장 지시 불이행을 저질렀을 뿐 아니라 이미 재단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킨 인물이었다. 관련 규정과 법규도 이미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내가 포기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감정적으로는 두 이사에 대한 해임을 추진하고 싶었고 그렇게 하는 게 옳은 일로 여겨졌으나, 그것은 험한 싸움이 될 게 뻔했다. 재단은 심한 내상을 입을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에 대한 해임안이 이사회를 통과한다고 해도 최종적으로 문체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해임이 이뤄지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기는 어려우리라 보였기 때문이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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