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류·음악·축제까지 일상 공간에 스며든 극우 생태계 [.txt]
2026.06.05 05:05
2021년 1월6일, 수천명의 군중이 미국 워싱턴의 연방의사당에 난입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앞서 두달 전 대선에서 패배한 도널드 트럼프가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결과에 불복했고, 지지자들에게 “도둑맞은 선거”를 되찾아야 한다는 선동적 암시를 되풀이한 후폭풍이다.
꼭 4년 뒤, 거의 비슷한 장면이 한국에서 재연됐다. 2025년 1월, 수백명의 군중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들이닥쳐 창문과 기물을 부쉈다. 내란을 획책했다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한 윤석열의 지지자들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잡겠다며 난동을 부렸다. 한국 극우세력의 조직적 결집과 준동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는 상징적 순간이었다.
충격적인 폭력은 많은 질문을 낳았다. 그들은 누구인가? 도대체 왜? 극우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다양한 분석과 진단이 쏟아졌다. 미국의 사회학자 신시아 밀러 이드리스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극우는 ‘언제, 어디에서’ 나타나는가? 그가 2020년에 출간한 ‘극우는 어디서 태어나는가’(원제: Hate in the Homeland)는 오늘날 극우주의의 성장 환경과 영향력 확대 방식, 사회·문화적 의미를 분석하고 바람직한 대응 방식을 모색한다. 지은이는 수십년 동안 극단주의와 청년 급진화 현상을 연구해 왔다.
오늘날 극우 운동은 단순히 정치 조직이나 거리 시위에만 있지 않다. 극우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첫 단계는 정치적 주장이나 폭력이 아니라 공간 감각과 소속감이다. 명확한 이념을 제시하기보다 소속감과 문화적 경험, 공통의 감정을 통해 사람들을 연결한다. 책의 원제 ‘조국 안에서의 혐오(Hate in the Homeland)’에 그런 함의가 담겼다. ‘홈랜드’는 ‘나(우리)의 땅’이다. 이 의미는 극우 집단에서 ‘나(우리)만의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공간’이란 뜻으로 전유된다. 강력한 감정적 동질감 속에서 “사람들은 때로 자신이 정치적 메시지에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특정한 세계관과 정체성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최근 몇년 새 학계가 주목하는 ‘정동(Affect )’ 개념과도 맥이 닿는다.
지은이는 온라인 커뮤니티, 유튜브 영상, 밈(meme), 티셔츠와 스티커, 체육관과 격투기 모임, 게임 문화, 인터넷 농담 같은 평범해 보이는 영역에서 극단주의적 메시지가 확산하는 양태에 주목했다. 현대 극우는 ‘정치적 변화는 문화적 변화가 먼저 이뤄질 때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해 왔다는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게 극우 집단이 말하는 ‘메타 정치(metapolitics)’다. “사회 전반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바꿔 궁극적으로 사회·정치 변화를 일으키는 문화·이념 운동”이다.
극우는 이미 하나의 독립된 시장이 됐다. 의류에서 커피까지, 음악에서 축제까지, 상품을 생산하고 브랜드를 만들고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한다. 그 본질은 동지애·정체성·소속감이다. 미국에선 ‘증오 조장 의류’들이 등장한 지 오래다. 한 티셔츠에는 “진정한 다양성을 축하하라”는 글귀에 방독면과 기독교 십자군 헬멧 등이 새겨졌다. 또 다른 티셔츠에는 반자동총을 든 이모지가 미국 국기의 별들을 대신하고 그 위에 “장전 완료”라는 문구가 쓰였다. “백인 죄책감 제로”라는 메시지가 쓰인 티셔츠도 있다.
특정한 상징을 공유하는 경험은 정치적 소속감을 강화한다. 한국에서도 특정 상징과 암호화된 표현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일베의 ‘ㅇㅂ’ 손가락 모양은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스타벅스는 5월18일에 맞춰 ‘탱크 데이’ 마케팅을 하면서 “책상에 탁”이라는 홍보 문구까지 썼다가 거센 역풍을 맞았다. 특정한 의도가 없는 우연이라는 회사 쪽 해명도 개운치는 않다. 일상적인 소비 공간마저 극우적 상징과 혐오의 맥락으로 제공되고 소비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이런 흐름을 가속한다. 극단주의는 알고리즘과 추천 시스템을 타고 확산한다. 노골적 선동보다 유머와 풍자, 문화적 상징을 앞세운다. 농담처럼 보이는 메시지에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음모론이 감춰져 있다. 극우 집단이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에 편승해 혐오 주장을 정당한 의견처럼 강변하거나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현상도 위험한 징후다.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았던 표현들이 반복 노출로 익숙해지고, 익숙함은 경계심을 약화한다.
극우 이념은 인종·민족·국적·성별·종교·성적 지향에 따라 우열의 경계가 분명하다. 지은이는 “이런 위계와 배타성이 극단으로 흐르면 백인 우월주의, 가부장제, 기독교 우월주의, 강제적 이성애와 같은 형태로 수세대에 걸친 폭력을 정당화해, 열등하다고 간주되는 사람들을 비인간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된다”고 경고한다.
‘비인간화’는 특정 집단 전체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규정하는 언어 표현이나 신념으로 나타난다. 나치는 유대인을 ‘하등 인간’(운터멘셴·untermenschen)으로 낙인찍어 제노사이드를 정당화하려 했다. 그로부터 8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한 건 없다. 트럼프는 남쪽 국경을 넘는 남미 난민들을 가리켜 수차례 “짐승들”이라고 했다.
지은이는 극우주의를 단순히 정치적 양극화나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문화생태계’로 설명한다. 사회적 조건과 문화적 환경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소셜미디어 기업의 책임, 지역 공동체의 붕괴, 불평등의 확대, 시민교육의 약화가 서로 얽혀 있다.
극우 이념의 성장이 증명한 위험성은 역설적으로 민주주의가 무엇으로 유지되는지를 보여준다. 지은이는 “극단주의 예방과 민주주의 보호가 본질적으로 맞물려 있다”고 강조한다. “모든 개인이 일상의 공간과 삶의 현장에서 포용성을 증진하고, 소수자 권리를 보호하며, 차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이에 맞서 싸워야 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후 독일의 사례를 들어, 학교 교육과 시민 정치교육의 중요성도 되짚었다.
지은이는 이 책을 독자가 충분히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맨 뒤에 ‘토론 질문 및 심화 자료’를 덧붙였다. 이와 별개로, 번역서 편집부가 원저의 서론과 결론, 그리고 본문 6개 장의 맨 앞에 그 장의 내용을 압축한 설명문과 ‘○장이 던지는 질문’, ‘○장의 핵심 개념’을 정리해 보탠 것도 상당한 공을 들인 편집으로 눈길을 끈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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