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니뇨 내습, “폭염·폭우 대비하고 식량 비축을”[이규화의 지리각각]
2026.06.05 01:48
태평양 해수면 온도 엘니뇨 전조 현상 진입
지구온난화에 기름 붓는 격, 상승효과 우려
세계적 강수량의 편차가 재앙적 국면 초래
한반도, 올여름 폭우·폭염 발생 빈도 늘 듯
인도·동남아 농업생산 위축…식량난 경고
지구온난화에 기름 붓는 격, 상승효과 우려
세계적 강수량의 편차가 재앙적 국면 초래
한반도, 올여름 폭우·폭염 발생 빈도 늘 듯
인도·동남아 농업생산 위축…식량난 경고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세계기상기구(WMO)가 지난 2일(현지시간) 올해 강력한 엘니뇨 발생 가능성이 높다며 각국 정부와 산업계, 시민사회에 조기 대응을 촉구했다.
WMO는 6월부터 8월 사이 엘니뇨가 형성될 확률을 80%로 제시하며 적어도 11월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90% 이상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기후를 좌우하는 자연현상인 엘니뇨가 다시 찾아오면서 폭염과 폭우, 가뭄, 식량난 등 복합 위기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엘니뇨는 적도 태평양 중부와 동부 해역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섭씨 0.5 이상)을 말한다. 통상 2~7년 주기로 발생하며 약 9개월에서 1년 정도 지속된다. 현재 적도 태평양의 해수는 이미 이례적으로 따뜻한 상태에 접어들었다.
WMO에 따르면 중동부 적도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는 관측 기준상 엘니뇨 임계점에 근접했다. 수면 아래에는 평년보다 6도 이상 높은 대규모 열 저장층이 형성돼 있다. 이러한 열에너지가 수면으로 전달되면서 엘니뇨를 촉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WMO는 특히 이번 엘니뇨가 지구온난화와 결합해 더욱 강력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영상 성명을 통해 “엘니뇨는 지구온난화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충격은 더욱 강렬하고 광범위하며 파괴적인 속도로 국경을 넘어 확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는 한편, 조기경보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WMO는 지난달 발표한 기후 전망 보고서에서 향후 5년 안에 인류 역사상 가장 더운 해가 새롭게 기록될 가능성이 86%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기록 경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해로 2027년을 지목했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영국 기상청의 리언 헤르만손 박사는 “올해 말 엘니뇨가 예상되기 때문에 기록이 깨지는 해는 내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엘니뇨가 절정에 도달한 뒤 수개월이 지나면 전 지구 평균 기온이 상승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엘니뇨가 지역별로 강수 패턴을 뒤흔들어 홍수와 가뭄을 동시에 유발한다는 점이다. WMO에 따르면 남아메리카 남부, 미국 남부, 아프리카 동부, 중앙아시아 일부 지역, 한국과 일본, 중국 동남부 해안 지역에서는 강수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반면 호주와 인도네시아, 남아시아,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 일부 지역은 강수량이 줄어들며 건조한 날씨와 가뭄 위험에 직면할 전망이다. 특히 세계 최대 인구 밀집 지역 중 하나인 남아시아 몬순 지대는 평년 이하 강수량이 예상되고 있다.
한반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주변 해역 수온 상승으로 인해 해양에 축적된 열에너지가 폭염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강한 엘니뇨가 나타났던 2018년과 2023년에도 우리나라는 평년보다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최근 수년간 북극 해빙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감소하고 북태평양 고수온 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엘니뇨까지 겹치면서 올여름 폭염과 열대야 발생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기상청 역시 6~8월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이 절반 이상이라고 전망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집중호우 빈도도 증가할 수 있어 폭염과 침수 위험이 동시에 커질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식량이다. 엘니뇨는 역사적으로 세계 농업 생산량과 식량 가격에 큰 영향을 미쳐 왔다. 최근 로이터통신은 건조한 날씨가 이미 아시아 주요 농업지대의 파종을 방해하고 있으며, 강력한 엘니뇨가 형성될 경우 식량 공급 불안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전했다. 현재 인도 북서부 곡창지대와 태국의 벼농사 지역, 호주의 밀 생산지, 인도네시아의 팜유 농장 등에서는 폭염과 강수 부족으로 농업 생산 차질이 나타나고 있다.
위성 데이터 업체 스카이파이의 기상학자 크리스 하이드는 로이터에 “엘니뇨의 영향은 동남아시아와 인도, 호주에서 먼저 나타난다”며 이미 일부 지역에서 가뭄 초기 징후가 확인되고 있다고 밝혔다. 태국 중부의 한 농부 역시 “모두가 가뭄을 걱정하고 있으며 위험한 상황”이라며 올해 두 번째 수확이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세계 쌀 시장은 심각한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세계 쌀 수출의 약 40%를 차지하는 인도는 이미 쌀 수출을 전면 금지한 상태다. 만약 엘니뇨로 몬순 강수량이 줄어들 경우 인도는 자국 식량 안보를 위해 추가적인 수출 통제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경우 쌀뿐 아니라 설탕, 팜유, 커피, 곡물 등 주요 농산물 가격이 동반 상승하면서 세계적인 식량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
이 같은 우려는 역사적 경험에서도 확인된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기사에서 “강력한 엘니뇨가 형성되고 있으며, 전례로 볼 때 큰 충격을 피할 수 없다”고 전했다. 과거 강력한 엘니뇨가 발생했을 때 겪어야만 했던 재난적 상황을 감안할 때, 올해 예고되는 엘니뇨 역시 예외가 아닐 것이라는 판단이다.
NYT는 지금까지 대형 엘니뇨가 농업생산과 질병 확산, 사회 불안, 경제 충격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으며 일부 사례에서는 정치·사회적 변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형성 중인 엘니뇨가 과거의 대형 사례들과 비교될 정도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엘니뇨는 폭염과 집중호우, 가뭄, 산불, 전력 수급 불안, 식량 가격 급등까지 이어질 수 있는 복합 재난의 전조일 수 있다.
WMO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듯 지금 필요한 것은 사전 대비다. 각국 정부는 재난대응과 농업 보호, 식량비축 정책을 선제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공급망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 개인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올해 엘니뇨가 어떤 강도로 전개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그것이 가져올 위험에 대비해야 할 시간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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