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만 좇는 세상, 목적에 대한 저항
2026.06.05 02:41
우리는 왜 무엇인가 해야 할까
우리는 왜 그냥 즐기지 못할까
고쿠분 고이치로 지음, 박영대 옮김
유유, 각 220쪽, 각 1만7000원
삶에 중요한 문제이지만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것이 많다. 그것을 끄집어내서 다시 한번 생각하는 만드는 것이 철학이 아닐까.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려고 든다. 그것에는 항상 목적이 있다. 목적이 없이는 어떤 것도 하려 들지 않고 목적 없는 행위에는 대체로 머뭇거림과 때로는 비난이 따른다. 그것이 우리가 삶을 즐기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현대 일본 철학계에서 주목받는 철학자 고쿠분 고이치로의 두 책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저자는 “필요와 목적으로 환원될 수 없는 삶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왜 무엇인가 해야 할까’의 원제는 ‘목적에 대한 저항’이다. 목적에 저항하는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자유’다. 저자가 목적이라는 개념에 천착한 이유는 코로나 팬데믹 위기 속에서 가졌던 ‘꺼림칙한 느낌’ 때문이었다. 전 세계인들은 전염병 확산 방지와 생존이라는 ‘목적’을 위한다는 정부의 방역 정책을 기꺼이 따랐다. 임종을 앞둔 가족을 병문안하는 일도, 죽은 이를 애도하는 장례식 참석도 하지 못했다. 더더욱 중요하게는 기본권인 ‘이동의 자유’마저 포기했다.
물론 저자가 정부의 방역 조치가 부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코로나 사태 당시 정부의 자유 제한 조치를 비판했던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주장을 빌려, 자유를 기꺼이 포기했던 상황 속에서 행정 권력의 폭주와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이면을 짚어낸다. 코로나라는 ‘예외 상태’ 속에서 행정 권력은 법적 절차(입법권)를 능가하는 행정 명령만으로 시민의 자유를 너무 쉽게 제한했다. 저자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외 상태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자유를 포기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의회에서 논의하는 것보다 행정 권력이 사안을 결정하는 게 빠르고 효율적이라는 말은 사실상 독재를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행정 권력이 입법권의 우위에 설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과거 독재와 전체주의 시대를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목적’의 개념을 심화시킨다. 코로나 위기 당시 일본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말은 ‘불요불급(不要不急)’이었다고 한다. ‘필요하지도 긴급하지도 않은’ 일들은 자제해야 했다. 필요하다는 것은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때 ‘목적’은 생존이었다. 저자는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을 목적으로 환원하고 목적에서 벗어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되고 있다”면서 “무엇이든 목적을 위해 행해지는 상태란 모든 것이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리는 상태”라고 지적한다.
목적을 위해 무언가를 희생하고, 어떤 행위가 목적을 위한 수단이 돼 버린다면 그 삶에서 즐거움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우리는 왜 그냥 즐기지 못할까’의 주제다. 저자는 ‘즐거움’을 설명하기 위해 임마누엘 칸트의 생각을 빌려, 목적과 수단의 개념이 없는 만족감을 ‘향유의 쾌(快)’로 이름 붙인다. 대상의 목적이나 쓸모를 따지지 않고 그 대상 자체를 온전히 누리고 느끼는 깊은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커피나 술 같은 기호품은 순수하게 즐기기 위한 것이지만 약물은 치료나 통증 완화 등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다. 기호품인 술도 ‘취하기 위해’ 마신다면 술은 ‘취한다’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된다. 저자는 “일상이나 과거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을 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그 사람은 알코올 의존증에 빠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낭비와 소비를 즐거움과 연결한다. 낭비라는 말에는 ‘쓸데없는 사용’이라는 안 좋은 이미지가 있지만 ‘필요의 한계를 넘어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일’로 해석한다. 음식을 생존에 필요한 양만큼만 먹어야 한다면 만족감을 느낄 수 없다. 낭비는 대상 자체를 즐기는 행위다. 중요한 것은 낭비에는 끝이 있다는 점이다. 실컷 먹고 만족하면 식사는 끝이 난다. 하지만 소비는 끝이 없다. 현대인은 대상이 아니라 상징이나 관념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유행하는 옷을 사거나 맛집을 탐방하는 등의 소비 행위에 만족이 있을 수 없다. 저자는 “무언가를 향유하는 방법을 아직 충분히 배우지 못한 단계에서 ‘이것을 향유하라’고 상품을 보내 주고, 사람들의 향유 감각을 지배해 버리는 것이 소비 사회”라며 “우리는 소비 사회에서 즐거움을 빼앗기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즐긴다는 것에는 인간의 삶에 기쁨을 줄 뿐만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변해 버린 이 사회를 바꿀 힘이 있다”고 강조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의 저자 서강대 철학과 서동욱 교수의 추천사를 뒤늦게 봤다. 역시나 책의 핵심을 찌르는 말이다. “철학은 삶으로부터 태어난다. 삶이 주는 생생하고 구체적인 먹이를 받아먹으며 철학은 고도의 추상적인 개념과 이론으로 자라난다. 그러나 철학은 결코 추상성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삶으로 회귀해야 한다. 그리하여 삶에 몰아치는 폭풍우의 정체를 이해하고 견디게 해주는 인간의 벗이 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이 책들을 통해, 철학이 추상성을 벗어나 삶에 밀착해 우리의 절실한 문제를 이야기하는 장면과 만난다.” 저자가 “철학이라는 것을 공부하면 세상에 만연한 ‘판에 박힌 사고방식’과 거리를 둘 수 있다”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세·줄·평★★★
·우리가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끝없는 소비 속에서 빼앗긴 진짜 즐거움을 되찾는 길
·목적과 수단으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다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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