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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들 대신 입양한 AI로봇이 “나는 누구냐” 묻는다면…

2026.06.05 00:42

SF ‘상자 속의 양’ 고레에다 감독
200:1 오디션 합격한 아역과 내한

버려진 아이, 뒤바뀐 아이, 납치된 아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엔 수많은 아이들이 뛰논다. 이번엔 AI로 만들어진 아이다. 10일 개봉하는 신작 ‘상자 속의 양’은 죽은 아들과 꼭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집에 들인 부부의 이야기다. AI를 다루는 많은 디스토피아 영화들과 달리, 가족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맑고 따스한 SF 드라마다. 고레에다의 열 번째 칸 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올해 경쟁 부문에 진출했지만 수상은 하지 못했다.

죽은 아들을 대신해 가족이 된 로봇 카케루(쿠와키 리무)는 건축가 엄마와 목수 아빠의 DNA를 이어받은 것처럼 나무와 집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다. /NEW

뺑소니 사고로 아들을 잃은 건축가 오토네(아야세 하루카)는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휴머노이드 렌탈 서비스를 신청한다. 로봇 카케루(쿠와키 리무)는 일곱살 아들의 얼굴, 목소리, 기억까지 그대로 지닌 채 집 앞으로 배송된다. 오토네는 돌아온 아들을 반기지만, 남편 켄스케(야마모토 다이고)는 수시로 충전해야 하는 카케루를 보며 “로봇 청소기와 뭐가 다르냐”며 좀처럼 정을 주지 않는다.

4일 내한한 고레에다 감독은 이날 시사회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바탕으로 죽은 사람의 모습을 재현하는 중국 스타트업을 보고 시나리오를 떠올렸다”고 했다. 문제는 남은 가족들이 생전의 가장 좋았던 기억들만 골라 고인을 다시 빚어낸다는 것.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존재를 마음대로 편집해도 되는 걸까.

줄거리만 보면 눈물 펑펑 쏟게 할 것 같지만, 슬픔은 절제돼 있고 웃음이 터지는 장면도 적지 않다. 로봇 카케루가 인간 세상을 조금씩 배워가는 모습은 귀엽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카케루가 차츰 자신이 인간과는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만의 경험과 관계를 쌓아가면서 가족에도 균열이 생긴다.

영화 '상자 속의 양' /NEW

제목은 소설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가 상자를 보며 자신이 원하는 모습의 양을 상상하는 장면에서 따왔다. 로봇 카케루도 어른들의 바람을 투영하는 작은 상자가 된다. 부모는 아이에 대한 그리움,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다시 행복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그 안에 욱여넣는다. 그러나 여느 아이들이 그렇듯, 카케루도 어느 순간부터 부모가 만들어놓은 상자를 벗어나려 한다.

“첫인상을 보고 직감으로 캐스팅한다”는 고레에다의 안목은 이번에도 돋보인다.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배우 쿠와키 리무는 인형처럼 말간 얼굴로 천진난만한 로봇을 연기한다. 고레에다와 함께 한국을 찾은 쿠와키는 “다른 감독님들은 지시를 많이 하시는데, 고레에다 감독님은 ‘너답게 연기하면 된다’고 편하게 대해주셨다”고 연기 비결을 밝혔다.

영화 '상자 속의 양' /NEW

전작들처럼 밀도 높은 가족극을 기대한다면 아쉬울 수 있다. AI 윤리, 부모와 자식의 관계, 자연과의 공존 같은 여러 주제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AI와 구별되는 인간다움에 대한 통찰은 새겨들을 만하다. 고레에다는 “인간에게는 본래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스스로 상상하는 힘이 있었을 텐데, 요즘은 그것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고 느꼈다”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이 영화도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을 상상하며 봐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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