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뚫고 무대로…영화 원작 뮤지컬·연극 잇따라
2026.06.05 01:39
"상업성 증면된 IP, 관객 진입장벽 낮추고 원작 팬덤 흡수"[데일리안 = 박정선 기자] 검증된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해 흥행 리스크를 낮추고 관객 저변을 확대하려는 공연계의 전략은 올해 하반기에도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 스크린에서 대중성을 입증한 서사를 무대 예술의 현장성과 결합하는 방식은 이미 시장의 안정적인 공식으로 자리 잡았고, 신작과 재연작이 잇따라 무대에 오르며 그 흐름을 이어가는 중이다.
2차원 스크린의 이미지를 3차원 무대로 옮기는 과정은 각 작품의 성격에 따라 차별화된 기술과 연출을 동원한다. 8월 13일 한국 초연을 앞둔 뮤지컬 ‘겨울왕국’은 원작인 애니메이션 영화의 세계관을 시각화하기 위해 퍼펫(인형)과 특수 효과를 사용한다. 특히 영화보다 3배에 달하는 넘버(음악)을 창작하면서, 원작의 음악 세계를 무대 예술로 확장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2000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가 담았던 소년의 성장사를 배우의 실시간 퍼포먼스와 육체적 에너지로 보여주면서 현장성을 확보한 작품이다. 특히 광부들의 파업 현장과 빌리의 발레 수업이 교차하는 ‘솔리다리티’(Solidarity) 장면은 영화의 교차 편집을 무대 위 앙상블의 입체적인 동선과 안무로 구현하며 라이브 공연만의 역동성을 극대화한다. 이미 2010년 초연하고, 2017년과 2021년에 이어 올해 네 번째 시즌까지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7월 개막을 앞둔 연극 ‘타인의 삶’과 ‘죽은 시인의 사회’는 시각적 화려함 대신 무대 예술 특유의 밀도에 집중한다. ‘타인의 삶’은 독일의 플로리안 헹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동명 영화를 손상규 연출이 각색해 2024년 초연했고, 올해 재연으로 관객을 만난다. 영화의 교차 편집 없이도, 비즐러의 도청실이나 드라이만의 집, 극장 등 다양한 장소를 무대에 구현했다는 평가를 얻으면서 객석 점유율 98%를 기록했다. 간결한 무대를 활용하면서 구체적인 공간의 시각적 요소 없이도 인물 간 관계로 시공간을 표현하자는 게 연출 의도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1989년 개봉해 이듬해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영화 각본을 쓴 톰 슈말이 연극 대본도 직접 집필했다. 앞서 2024년 프랑스 파리 공연 당시 2년 연속 전석 매진과 누적 관객 35만명 돌파라는 기록을 세우며 ‘제35회 몰리에르상’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만큼 검증된 콘텐츠의 경쟁력을 뒷받침한다. 조광화가 연출하는 한국 공연에는 키팅 선생 역에 차인표를 비롯해 오만석, 연정훈이 발탁됐다.
창작 뮤지컬이 시장의 자생력을 증명하며 외연을 확장하고 있음에도 제작사들이 영화 IP 기반 작품을 꾸준히 도입하는 이유는 시장의 안정성 확보에 있다. 영화라는 검증된 안전 자산으로 창작물의 불확실성을 상쇄하면서 균형을 맞추려는 것이다. 검증된 서사와 캐릭터는 투자의 안정성을 높이고 특정 비수기 없이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관객층의 다변화 측면에서도 영화 원작 공연은 유효한 수단이다. 원작에 대한 향수를 지닌 중장년층부터 익숙한 IP를 선호하는 청년층까지 폭넓은 연령대를 동시에 수용하기에 용이하다. 이는 특정 연령대에 집중된 공연 관람객 범위를 확장하고, 영화라는 친숙한 매체를 통해 연극과 뮤지컬에 입문하는 신규 관객을 창출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실제 올해 1분기 공연 시장 티켓 판매액 상위 20개 공연 목록 중 대중음악 공연 11개를 제외한 나머지 9개 중 7개가 뮤지컬, 2개가 연극이 이름을 올렸는데 이 중 대다수가 영화 원작의 공연이다. 1위를 기록한 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비롯해 뮤지컬 ‘킹키부츠’(2위), ‘비틀쥬스’(3위), ‘데스노트’(5위), ‘물랑루즈!’(6위) 등은 모두 영화를 기반으로 제작됐고, 얀 마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8위) 역시 동명의 영화를 두고 있다.
한 공연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검증된 영화 원작 작품의 무대화는 입증된 서사에 공연 예술만의 문법을 덧입히는 과정”이라며 “단순히 스크린을 무대에 재현하는 것을 넘어 독립적인 예술 장르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무대만의 문법’을 어떻게 입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미 상업성이 증명된 원작은 초기 마케팅 단계에서 관객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원작 팬덤을 안정적으로 흡수하는 근거가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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