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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대한민국의 딜레마

2026.06.04 21:01

반도체 착시에 가려진 ‘3高’ 그늘
한은, AI 호황에 금리 인상 신호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산업이 벌어들일 천문학적인 이익을 두고 우리 사회 각계에서 여러 논쟁이 분출되고 있다. 기록적인 호황의 과실이 반도체 산업 종사자에 집중되는 반면, 고환율·고금리·고물가 부담은 국민 경제 전체가 짊어져서다.

때마침 한국은행은 5월 28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연내 금리 인상 신호탄을 쐈다. 반도체 초호황으로 성장률 둔화 우려는 줄었고 확장재정까지 더해져 통화당국은 물가 대응을 위해 긴축으로 방향을 틀었다. 반도체 의존도 심화에 따른 K자 양극화 우려는 물론, 누가 성과를 가져야 하는지 분배 갈등이 가열될 것이란 시각이 확산한다.

K자 양극화 심화

초호황 과실은 극소수만

반도체 초호황으로 성장률이 순항 중이지만 그늘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반도체 의존도 심화다. 한국 수출에서 반도체 쏠림은 올 들어 더 심해졌다.

산업통상부 수출입 통계를 보면, 지난해 4월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 비중은 20.1%였는데 올 4월 37.1%로 뛰었다. 반면, 같은 기간 자동차 비중은 11.2%에서 7.2%로, 일반기계는 7.4%에서 4.9%로 뚝 떨어졌다. 15대 주력 품목도 크게 다르지 않다. 15대 품목 가운데 4월 수출이 증가한 품목은 반도체, 컴퓨터, 석유제품, 석유화학, 선박, 무선통신기기, 바이오헬스, 섬유 등 8개다. 자동차(-5.5%), 일반기계(-2.6%), 디스플레이(-2.7%), 자동차부품(-6%), 철강(-11.6%), 2차전지(-6.5%), 가전(-20%) 등 7개 품목은 감소했다.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은 각각 39.9%, 7.8% 늘었지만 수출 물량은 줄었다. 유가 급등에 따른 단기 효과가 컸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반도체 다운턴 국면에서는 한국 경제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9년이 대표적이다. 당시 메모리 호황이 끝나고 D램 가격이 급락한 데다 미·중 무역 분쟁까지 겹치자 한국 수출은 곤두박질쳤다. 2019년 6월 전체 수출은 전년 대비 13.5% 줄어 3년 5개월 만의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같은 달 반도체 수출은 25.5% 줄었다.

한국 수출 호황의 체감도가 낮은 것도 반도체 중심 성장의 파급 경로가 과거 제조업 호황기와 달라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반도체 산업은 자본집약도가 높고 생산 과정의 수입 의존도도 커 전후방 연관 효과가 제한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산업연관표 기준 반도체의 취업유발계수는 2.4명으로 전산업 8.2명, 서비스업 10명은 물론 제조업 평균 5.1명에도 크게 못 미친다. 반도체 부문 취업자 수도 8만5000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0.3%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반도체 초호황으로 한국은행이 연내 기준금리 인상을 공식화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2027년 2분기까지 매 분기 한 차례씩 총 3회 인상해 3.25%까지 올릴 것”으로 봤다. 이미 고물가와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소비 여력이 약해진 중산층·저소득층이 반도체 호황 때문에 금리 부담만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초과 세수 분배 논쟁

대만은 감세로 전 국민 나눠

반도체 호황으로 정부도 전례 없는 숙제를 받아들었다. 급증할 세수를 어디에 쓸 것인가 하는 문제다.

정부의 고민은 내년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초호황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둘 경우 두 회사 법인세만 예년보다 최소 100조원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여기에 내년 초 성과급 지급이 현실화되면 근로소득세 수입이 증가하고 증시 호조가 이어질 경우 증권거래세 수입도 늘어난다.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5~2029년 중기재정전망’에서 2027년 국세 수입을 412조원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세수는 이보다 100조~150조원가량 더 들어올 수 있다는 계산이다. 반도체 호황이 정부 재정 운용과 초과세수 배분 논쟁으로 번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대만 사례를 지목한다. 대만은 올해부터 월급이 5만대만달러(약 230만원) 이하 국민에 대해 종합소득세 면제 정책을 시행한다. 2024년에도 반도체 호황으로 국민 1인당 1만대만달러(약 45만원) 현금을 지급했다. 반도체 쏠림에 따른 낮은 노동소득 분배와 임금 양극화 등을 우려한 고육지책성 감세로 평가된다. 한국에서도 유사 논의가 불붙을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이 많다.

세수 활용 논쟁에 불을 지핀 건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김 실장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AI 기업 호황이 초과 세수로 이어질 경우 기업의 수익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국민배당금’ 제도를 제안해 구설수에 올랐다.

고용노동부도 군불 때기에 나섰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지난 5월 27일 삼성전자 성과급 논란을 거론하면서 “대기업 초과 이익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재분배할 것인지, 한국형 사회연대임금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론을 열고 싶다”고 말했다. ‘사회연대임금’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임금 격차를 줄이자며 유럽에서 도입했던 정책이다. 노동계에선 산별 교섭을 확대해 동종 산업 간 임금 격차를 줄이거나 원·하청 간 ‘상생 협약’을 맺는 기업에 세제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삼성전자가 성과급 타결 이후 5조원 규모 상생기금을 발표한 것도 이런 논란을 염두에 둔 조치로 풀이된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5월 27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기자실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차담회에서 삼성전자 성과급 논란과 관련해 대기업 초과 이익의 사회적 재분배 방안을 언급했다. (연합뉴스)
파업권 제한 주장도

노동권 vs 생산 연속성

이번 사태로 파업권 제한 논쟁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일각에서는 AI 패권 경쟁 속 전략 물자로 편입된 반도체를 국가방위 산업으로 지정해 노조의 과도한 쟁의행위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편다. 헌법 제33조 3항은 법률이 정하는 주요 방위산업체 종사자의 단체행동권을 제한하거나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한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산업의 중단을 막기 위한 장치를 국가 전략 산업인 반도체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도체 생산라인은 24시간 운영되는 초정밀 제조 시설이다. 셧다운될 경우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산업계에서는 파업으로 인한 직간접 손실이 100조원에 이를 것이란 추산도 나왔다. 지난 2018년 삼성전자 평택 공장 정전 사고 당시 생산라인이 28분간 멈추자 500억원 규모 손실이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노동권과 생산 연속성 사이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현행 노조법은 방위 산업 노동자들의 쟁의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반도체 산업에도 노조 파업권 제한에 관한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앞으로는 성과급 합의안도 주주총회 의결을 거치도록 해 부결이 날 경우에도 이를 따르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성과급 파장 확산으로 산업공동화 가속을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관세 전쟁과 중국발 공급 과잉(대외 요인), 규제를 비롯한 역(逆)인센티브 구조(국내 요인)가 맞물려 우리 기업 상당수는 해외로 생산기지를 줄줄이 옮기는 중이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 해외 이전은 당연한 선택”이라며 “노사 관계가 철저히 계약형 구조로 바뀌어야 갈등이 발생해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노동 유연성에 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때”라며 “경직됐던 직무 구조에서 벗어나고 성과 측정 체계를 개인별로 바꿔야 이번 사태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이채원 기자 lee.chaew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62호(2026.06.03~06.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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