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막겠다지만 ‘이주노동자 족쇄’ 그대로
2026.06.04 20:48
노동계 “사업장 이동 막는 ‘고용허가제’ 개선 없인 반쪽 대책”전남 나주 ‘지게차 가혹행위’ 사건과 경기 화성 ‘에어건’ 사건 등 이주노동자 인권침해가 잇따르자 정부가 익명 신고시스템 구축과 특별감독 확대를 골자로 하는 대책을 내놨다. 노동계는 이주노동자를 특정 사업장에 묶어두는 고용허가제의 근본 문제는 그대로 둔 채 사후 대응책만 내놨다며 “반쪽 대책”이라고 비판한다.
고용노동부는 4일 ‘이주노동자 인권침해 방지대책’을 발표했다. 국내 이주노동자가 110만명을 넘어섰지만 언어 장벽과 체류 불안 등으로 폭행·괴롭힘·임금체불 피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판단에서다.
노동부는 사건을 조기에 파악하기 위해 모국어 익명 설문조사와 익명 신고센터를 운영하기로 했다. 또 이주노동자 커뮤니티와 현장을 연결하는 ‘외국인 인권 리더’를 위촉해 폭행·괴롭힘 등 인권침해 사례를 상시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피해 사실이 확인되면 즉시 근로감독에 착수하고, 추가 확인이 필요한 사안은 정기감독 대상에 포함해 조사할 방침이다.
이주노동자 밀집 지역과 인권침해 우려 사업장 100여곳을 대상으로 폭행·괴롭힘 특화 기획감독도 실시한다. 또 안산·경기·인천북부 등 14개 지방노동관서에 이주노동자 전담팀을 신설해 피해자 보호와 권리 구제를 강화한다. 피해 노동자에게는 인근 쉼터를 연계해 가해자와 분리하고, 인권침해가 확인된 경우 사업장 변경 등 보호조치를 지원할 계획이다.
노동부는 위험한 근무환경에 놓인 이주노동자가 원활하게 사업장을 옮길 수 있도록 사업장 변경 제도 개선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한은숙 노동부 외국인력수급대응TF 과장은 “현재 의견을 수렴하는 단계”라며 “상반기 발표를 목표로 준비 중인 ‘외국인력 통합지원 로드맵’에 관련 내용이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이번 대책이 예방보다 사후 대응에 무게가 실려 있다고 평가했다. 김호세아 민주노총 정책차장은 “피해가 발생하면 신고받고 조치하겠다는 건 사후 수습책에 가깝다”며 “피해가 생기고 나서 사업장을 옮기게 하는 게 아니라 위험하다고 느끼면 스스로 떠날 수 있어야 근본적 예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이주노동자는 원칙적으로 사업주 동의 없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다. 임금체불, 폭행, 성희롱 등 피해를 보고 이를 입증했을 때만 예외적으로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노동계는 신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기존 사업장에 남아야 하는 구조라 신고 자체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정부 내에서도 사업장 이동 제한 완화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시행 시기와 적용 범위 등을 둘러싼 이견이 이어지고 있다.
김 차장은 “사업장 변경 제한 완화는 고용허가제와 외국인고용법을 담당하는 노동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노동부가 더 적극적으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인력 정책이 여러 부처에 분산된 점도 제도 개선의 걸림돌로 꼽힌다. 현재 법무부는 비자·체류자격과 출입국 관리를, 노동부는 고용허가제 운영과 노동권 보호 정책을 맡고 있다. 노동부는 이달 중 ‘외국인력 통합지원 로드맵’을 발표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비자·정주체계 개편 등 핵심 과제를 둘러싼 부처 간 조율이 길어지면서 발표가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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