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 못추는 원화, 17년 만에 1540원 터치… 당국 개입도 무위로
2026.06.04 18:46
외국인 주식 매도세도 상승 압력
환율방어 부담에 외환보유액 감소
원·달러 환율이 4일 야간 거래에서 한때 1540원을 넘어섰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9년 3월 이후 17년 만에 처음있는 일이다. 미국의 추가 관세 예고와 중동 정세 불안, 외국인의 국내 증시 이탈이 겹치면서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지고 있다. 외환당국이 구두개입에 나섰지만 시장의 불안 심리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습이다.
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3.3원 오른 1529.7원에 마감했다. 지난 3월 31일(1530.1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날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3.6원 오른 1530.0원으로 출발했고, 장 마감 뒤 야간 거래에서는 상승 폭을 더 키우며 한때 1540.59원까지 치솟았다. 1540원대 진입은 2009년 3월 10일 장중 1561원을 기록한 이후 처음이다. 원·달러 환율은 13거래일 연속 1500원대를 이어가고 있다.
환율 급등의 도화선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관세 발표였다. USTR은 지난 2일 한국 등 54개 경제권을 대상으로 12.5% 추가 관세를 예고했다. 중동 정세도 불안을 키웠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지난 2일 미국의 케슘섬 통신탑 공습 이후 쿠웨이트 미군 공군기지 등을 공격했다.
외환당국은 즉각 시장 안정 메시지를 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시장상황점검회의에서 “대외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불안 심리가 확산되지 않도록 높은 경계감을 가지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과도한 쏠림에 대해서는 필요한 조치를 즉시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환율은 1520원대 후반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뛰었다.
최근 원화 약세는 단순한 달러 강세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산출하는 WSJ 달러지수는 5월 한 달간 0.61% 오르는 데 그쳤다. 반면 원·달러 기준환율은 지난달 11일 1472.7원에서 지난 3일 야간거래 중 1531.11원까지 약 4% 뛰었다. 글로벌 달러 가치보다 원화 약세 폭이 훨씬 컸던 셈이다.
역대급 수출 호조도 원화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5월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53.2% 증가한 877억5000만 달러로 월간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무역수지도 269억5000만 달러 흑자를 냈다. 하지만 지난 4월 말 거주자외화예금은 1106억8000만 달러로 전월보다 85억1000만 달러 늘었다. 수출대금이 들어와도 상당 부분이 원화로 환전되지 않고 외화예금으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외국인의 주식 매도세도 환율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 외국인은 지난달 7일부터 이날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19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이어갔다. 누적 규모는 60조5000억원에 달했다. 국내 주가가 급등하자 외국인이 주식 비중을 일시적으로 조정하는 리밸런싱과 차익 실현에 나선 결과다. 주식을 판 원화를 다시 달러로 바꾸는 과정에서 달러 수요가 커지고 있다.
환율 방어 부담은 외환보유액에도 반영됐다. 5월 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269억9000만 달러로 전월 말보다 8억8000만 달러 줄었다. 한은은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등 시장안정화 조치 영향으로 외환보유액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외환당국이 구두개입을 넘어서는 적극적인 시장 개입에 나서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환율 방어를 위해 보유 달러를 계속 투입하면 외환보유액 감소 부담이 커지게 된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연구원은 “현재 유가 흐름을 감안하면 환율은 1530원 내외로 보이지만, 외국인 팔자 행렬이 환율을 끌어올리고 있다”며 “중동전쟁 종전이나 유가 급락 등의 호재가 없으면 환율이 내려오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총알을 쓰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주가가 급락해 외국인 매도세가 꺾일 것이라고 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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