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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가 40년 만에 허가한 미래 원전… “AI 시대 전력난, 답은 SMR에 있다”

2026.06.04 12:01

와이오밍州 차세대 SMR 건설 현장 가보니
안전·효율 극대화한 소듐 냉각 고속로 기반
‘원전 르네상스’ 표방한 美정부 전폭 지원
SK이노·SK㈜, 테라파워 2大 주주로 협력
국내 1호 4세대 SMR 건설 목표… 亞시장도 공략

미국 와이오밍주 케머러의 소형모듈원전(SMR) 건설 현장. /테라파워

“우리는 여기를 에너지의 미래를 건설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한국 역시 막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겠지요. 차세대 원자력 에너지에 관한 모든 것이 여기서 시작될 겁니다.”

지난달 28일 와이오밍주(州) 케머러의 소형모듈원전(SMR) 건설 현장에서 만난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는 본지에 고무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유타주 주도(州都)인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차를 타고 북동쪽으로 2시간을 달려 도착한 광활한 자연 속 약 24만㎡의 부지에선 미국 최초의 상업용 첨단 원전인 345㎿(메가와트)급 ‘케머러 1호기(Kemmerer Unit 1)’ 건설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10년 만에 승인한 신규 상업용 원전이고 40년 만에 허가된 비경수로 원자로 프로젝트다. 미 조야(朝野)의 관심과 지원 속 SMR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SMR은 AI 시대를 맞아 급증하는 전력 수요, 탄소 중립 실현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케머러 1호기는 2031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2008년 설립한 테라파워는 차세대 원자로의 한 유형인 소듐냉각고속로(SFR) 설계 기술을 보유한 원전 업계의 혁신 기업이다. 물이 아닌 나트륨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차세대 원자로 노형(爐型)인데, 액체 나트륨은 끓는점이 물보다 훨씬 높아 더 많은 열을 흡수하면서 발전 출력을 높일 수 있다. 사용후 핵연료도 기존 10% 수준으로 줄어든다. 케머러 1호기는 이런 SFR을 적용한 첫 상업용 SMR이다. 르베크 CEO는 “현재 원자로도 충분히 안전하지만 확률로 보면 약 1000배 더 안전하다”며 “향후 수십 년 창출될 에너지 수요를 생각하면 이제는 새로운 기술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시장 조사업체 IDTechEx에 따르면 글로벌 SMR 시장은 2033년 724억 달러(약 103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28일 와이오밍주 케머러의 소형모듈원전(SMR) 건설 현장에서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케머러(와이오밍주)=김은중 특파원

이날 공사 현장에는 공장에서 제작된 모듈형 설비들이 현장에서 조립되는 ‘어셈블리 센터’를 비롯해 원자로, 발전기, 핵연료 보관 장소 등 기본 공사들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SFR 발전소 운전 시뮬레이터에서는 실제 운전 상황과 비상 시나리오 등을 구현해 놓고 있었다. 부지 내 ‘교육 훈련 센터’도 건설돼 방문객을 맞이하고, SFR 발전소 운전에 특화된 전문 운전원 육성을 병행할 계획이다. SMR은 주요 설비와 구조물을 미리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설치가 가능해 기존 대형 원전에 비해 공정 관리가 간편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케메러 1호기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패트릭 영 총괄 부사장은 “원자로 자체가 지하에 설치돼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확산될 가능성이 훨씬 더 낮고, 부지 자체도 훨씬 작은 면적으로 (건설이) 가능하다”고 했다. 테라파워가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12기 중 8기는 데이터 센터 인근 전력 공급용 건설을 염두에 두고 메타에서 계약했다고 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원전 르네상스’를 선언한 트럼프 정부의 관심과 지원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공화당 소속 마크 고든 주지사는 현장을 다섯 번 찾았다고 한다. 미국은 원전 종주국임에도 불구하고 1979년 스리마일섬(TMI) 방사성 물질 유출 사고 이후 30년 넘게 신규 원전을 짓지 않아 경쟁력이 크게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트럼프는 지난해 원전 발전 용량을 현행 100GW에서 2050년 400GW까지 확대하는 원자력 산업 육성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원전은 정말 뜨거운 산업으로 아주 안전하고 환경 친화적이게 됐다”며 “제대로 해야 하는 멋진 산업”이라고 했다. 테라파워는 에너지부(DOE)가 민간 기업과 협력해 7년 이내 가동 가능한 차세대 원자로를 실증하는 ‘첨단 원자로 실증 프로그램(ARDP)’의 지원을 받았다. 르베크 CEO는 “트럼프 1기 때 시작해 바이든 정부, 트럼프 2기까지 권력 교체와 관계없이 지속되고 있다”며 “백악관, 의회 양당 모두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아왔다”고 했다.


최태원 SK 회장(오른쪽)과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이 지난해 8월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만나 소형모듈원전(SMR) 협력 방안을 논의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과 지주사인 SK㈜는 지난 2022년 테라파워에 2억5000만 달러(약 3750억원) 지분 투자를 통해 2대 주주로 올라섰다. 단순히 재무적 투자자(FI)에 그치지 않고 테라파워의 실증 경험, 첨단 기술을 국내 첫 4세대 SMR 건설에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르베크 CEO는 SK하이닉스(반도체)를 비롯해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는 SK가 “테라파워에 투자한 것은 선견지명”이라며 “앞으로 나트륨 원자로가 반도체 생산 뿐 아니라 데이터 센터 전력 공급까지 지원하는 모습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고 했다. SK이노베이션은 SFR 기반 SMR 기술의 아시아 시장 독점 활용 권리도 확보하고 있다. 한국과 함께 베트남 등이 SMR이 들어설 수 있는 유력한 사업장으로 거론된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AI 데이터 센터와 반도체 등 미래 산업의 전력난 해소는 물론 대한민국이 글로벌 첨단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SK이노베이션은 국내에서 AI 산업이 창출하는 신규 에너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2035년 상업화를 목표로 첫 4세대 SMR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국무회의에서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이 심의·의결됐는데, ‘사전검토제도’ 등을 활용해 SMR 건설 및 상용화 기간도 상당 부분 단축할 계획이다. 르베크 CEO는 “테라파워는 20년이 된 회사로 우리는 오랫동안 이 기술을 개발해 왔다”며 “인구 밀집 지역에 SMR을 건설하는 데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 상업화를 통해 공사 기간, 예산, 경제성, 안전성 등을 입증한 뒤 한국에서도 SMR을 보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이어 “원자력은 에너지 안보, 에너지 집약적 경제에 반드시 필요한 산업”이라며 “안전 기준은 엄격해야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이점을 가진 에너지원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SMR은 이달 18일 발효되는 대미투자특별법에 따라 이뤄질 대미(對美) 투자 사업으로도 유력하게 거론된다. 르베크 CEO는 “한미는 경제, 안보 측면에서 많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며 “SMR이 무역 협정에 포함될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와이오밍주 케머러의 소형모듈원전(SMR) 건설 현장. /테라파워

☞ 소형 모듈 원전(SMR)

대형 원전의 핵심 장치를 하나로 합쳐 크기를 줄인 소형 원전. 사고가 일어날 확률도 10억년에 한 번꼴로 비교적 작고, 사고가 나도 피해가 제한적이라 ‘차세대 원전’으로 불린다. 대형 원전(1000~1400㎿·메가와트)에 있던 원자로와 증기 발생기 등 주요 장치들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규모가 3분의 1에서 5분의 1 수준(300㎿ 안팎)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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