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Aview 로고

VIEW

원자력 발전소
원자력 발전소
AI발 전력난에 탄광촌 부활 아이러니… 첨단 원전 짓는 美와이오밍 가보니 [르포]

2026.06.04 12:01

테라파워 SMR 케머러 1호기 착공
고지대 벌판서 미국 첫 상용화 도전
“인구밀집지도 안전” CEO 자신감
4년 전 투자한 SK, 한국 도입 추진
지난달 28일 미국 와이오밍주 케머러의 테라파워 소형모듈원자력발전소(SMR) 건설 공사 현장에서 소듐(나트륨) 테스트 시설을 짓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케머러=권경성 특파원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로키산맥 서쪽 유타주(州)의 주도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2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와이오밍주 케머러. 한라산보다 높은 해발 2,200m 고지대의 드넓고 황량한 벌판에 높다랗게 걸린 미국 성조기와 와이오밍 주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미국 소형모듈원자력발전소(SMR) 설계 기술 업체인 테라파워는 4월 22일 이곳에서 ‘케머러 1호기’ 건설에 착공했다. 사무동과 임시 시뮬레이터실, 소듐(나트륨) 테스트 시설 등 서너 채가 서울 여의도공원만 한 24만㎡ 부지에 자리한 건물의 전부였다. 그나마 현재 가장 큰 건물인 테스트 시설에서는 원자로의 모든 구성 요소가 시험될 예정이다. 시뮬레이터실에서는 SMR의 실제 운전 및 비상 시나리오 상황을 가정한 안전성 확인 등이 이뤄지고 있다.

에너지의 미래

지난달 27일 미국 와이오밍주 케머러의 테라파워 소형모듈원자력발전소(SMR) 건설 현장에서 소듐(나트륨) 테스트 시설이 지어지고 있다. SK 제공


브리핑부터 들었다. 전면 연단 양쪽에 입간판 두 개가 서 있었다. 오른편 배너에 쓰인 문구는 “오늘 에너지의 미래를 구축한다(Building the future of energy today)”였다. 왼편에는 “진전 속에서 증명된다(The proof is in the progress)”고 적혀 있었다. 첨단 기술 상용화의 선두 주자라는 자신감이 녹아 있었다.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이곳을 ‘에너지의 미래를 건설하는 곳’이라 부른다”며 “이곳은 차세대 원자력 에너지의 탄생지”라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미국 와이오밍주 케머러의 테라파워 소형모듈원자력발전소(SMR) 건설 현장에서 소듐(나트륨) 테스트 시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SK 제공


테라파워 SMR의 가장 큰 특징은 물이 냉각재인 경수로형 원전과 달리 액체 나트륨을 냉각재로 쓴다는 점이다. 이른바 ‘소듐냉각고속로(SFR)’가 기반이다. 원전은 원자핵 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섭씨 수백 도의 고열로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들고 이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기존 경수로 원전은 300도가 넘는 운영 환경에서 물이 끓지 않도록 높은 압력을 유지해야 하지만, 액체 나트륨은 880도의 고온에서도 끓지 않아 일반 대기압에 가까운 환경에서도 운전이 가능하다는 게 업체 측 소개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상계획구역’(EPZ·방사선 누출 사고 때 인근 주민 보호를 위해 설정한 구역)도 넓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대형 원전이 반경 20~30㎞인 데 비해 SMR은 300~400m면 된다. 팻 영 테라파워 원자로 프로젝트 총괄 수석부사장은 “고압이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하에 원자로가 설치되기 때문에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확산될 가능성이 훨씬 작다”고 말했다. 르베크 CEO는 “인구 밀집 지역에 지어도 문제가 없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사용후 핵연료 발생량이 기존 원전 대비 3분의 1 수준인 데다 물도 훨씬 덜 쓴다.

지난달 28일 미국 와이오밍주 케머러의 테라파워 소형모듈원자력발전소(SMR) 건설 현장에서 팻 영 테라파워 원자로 프로젝트 총괄 수석부사장이 한국 특파원들에게 원전 시설 전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SK 제공


‘부하추종(load following)’과 ‘피동안전시스템(passive safety system)’도 테라파워가 자랑하는 SMR의 특장점이다. 전력 수요 변화에 맞춰 발전소 출력도 유연하게 조절하는 운전 방식이 부하추종이다. 원자로에서 발생한 열을 별도로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발전 계통으로 보내는 열 저장 시스템 덕에 가능한 기술이다. 전력 수요 변동성이 큰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시대에 긴요한데도 기존 원전은 한계가 있다고 업체 측은 설명했다.

영 부사장은 “기본적으로 345메가와트(㎿e) 원자로이지만 최대 500㎿e까지 약 5시간 반 동안 출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피동안전시스템은 전기나 기계장치에 의존하지 않고 순환이나 중력, 온도 차 등 자연 원리로 안전성을 확보하는 설계 방식이다. 전원이 차단돼도 자연 냉각이 가능해 비상 상황 때도 원전이 안정적으로 운용되도록 해 준다.

공사 현장에는 공장에서 미리 만들어진 모듈형 설비들이 조립되는 ‘어셈블리 센터(assembly center)’와 원자로 및 에너지(발전·저장) 시설, 핵 연료 보관을 위한 시설 등이 지어지게 된다. SMR은 주요 설비와 구조물을 미리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해 설치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 경수로형 원전에 비해 비용은 절반 수준이고 공사 기간도 훨씬 짧다.

110조 원 시장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28일 미국 와이오밍주 케머러 소형모듈원자력발전소(SMR) 건설 현장에서 한국 특파원들에게 프로젝트 추진 현황을 소개하고 있다. 케머러=권경성 특파원


테라파워는 마이크로소프트(MS) 창립자인 빌 게이츠가 2008년 설립한 기업이다. 케머러 1호 건설은 올 3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40년 만에 허가한 비경수로 원자로 프로젝트이자 미 최초 상업용 첨단 원전 건설 사업이다. 건설이 계획된 12기 중 8기는 데이터센터 인근 전력 공급을 염두에 두고 미국 거대 기술 기업 메타가 계약했다. 지난해에는 세계 최대 반도체 및 AI 기술 기업 엔비디아도 테라파워에 투자했다. 2030년 완공해 1년~1년 반의 시운전을 거친 뒤 2031년 첫 상업 운전에 착수하는 게 테라파워의 목표다.

최태원(오른쪽) SK 회장과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이 지난해 8월 21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만나 소형모듈원자력발전소(SMR)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한 뒤 악수하고 있다. SK 수펙스추구협의회


SK이노베이션과 SK㈜는 2022년 일찌감치 공동으로 2억5,000만 달러(약 4,000억 원)의 지분을 투자해 2대 주주가 됐다. 데이터센터·배터리·반도체 등 그룹의 다른 사업과 묶어 글로벌 차세대 에너지 산업을 선점하겠다는 목표에서였다. 2035년 상업화 목표로 국내 첫 4세대 SMR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르베크 CEO는 “우리는 좋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실제로 구현하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한국 파트너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첫 프로젝트는 미국에서 진행되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한국에도 테라파워 원자로가 들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테라파워 SFR 기반 SMR 기술의 아시아 시장 독점 활용권도 확보했다. 영국 신기술 시장조사 업체 아이디테크엑스(IDTechEx)에 따르면 글로벌 SMR 시장은 2033년까지 723억 달러(약 110조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테라파워의 기술과 경험은 미래 산업의 전력난 해소는 물론 한국이 글로벌 첨단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미국 와이오밍주 케머러의 테라파워 소형모듈원자력발전소(SMR) 건설 현장. 미국 성조기와 와이오밍 주기, 건설 예정 시설 안내 패널 등이 보인다. 케머러=권경성 특파원


미국에서 이제 ‘님비’(NIMBY·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는 뜻으로 혐오 시설 기피 현상)는 옛말이 됐다. 아이다호와 유타 등 로키산맥 인접 주들의 SMR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AI발 전력대란이 첨단 원전이 각광받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케머러는 석탄 채굴·발전으로 서부에 전기를 팔던 탄광촌이었는데, 저탄소 추세와 함께 몰락하던 처지였다. 그러나 테라파워 SMR을 유치하며 부활을 기대하고 있다. 건설 공사로 일자리 1,600개가 생기고 원전이 완공될 경우 정규직 250개가 창출될 전망이다.

테라파워가 와이오밍주를 고른 데에는 이유가 있다. 화력 발전의 중심지였다는 게 무엇보다 큰 매력이었다. 르베크 CEO는 “와이오밍에는 원전을 건설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전기공과 용접공, 발전소 기술 인력들이 있고 지역사회 역시 에너지 이해도가 높다”고 말했다. 송전망도 재활용할 수 있다. 테라파워는 4월 착공일 당시 보도자료에서 “미 최대 우라늄 생산지인 와이오밍은 미국의 ‘원자력 르네상스’를 위한 최적의 발판”이라는 미 연방 하원의원 해리엇 헤이그먼(공화·와이오밍)의 찬사를 인용했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

댓글 (0)

0 / 100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원자력 발전소의 다른 소식

원자력 발전소
원자력 발전소
3시간 전
AI, 똑똑한 건 거기서 거기…삼성·SK '연비 좋은' 메모리 시험대
원자력 발전소
원자력 발전소
3시간 전
사막에 SMR…공사 석달만에 35m 시설 뚝딱
원자력 발전소
원자력 발전소
5시간 전
김성환 장관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국민 공청회 개최”
원자력 발전소
원자력 발전소
5시간 전
덴마크, 40년 만에 SMR 도입 추진한다
원자력 발전소
원자력 발전소
6시간 전
조주홍 영덕군수 당선인, “신규 원전·에너지산업 육성”
원자력 발전소
원자력 발전소
9시간 전
美가 40년 만에 허가한 미래 원전… “AI 시대 전력난, 답은 SMR에 있다”
원자력 발전소
원자력 발전소
6일 전
신한올 4호기 원자로 건물 공사 시작…2033년 준공
원자력 발전소
원자력 발전소
6일 전
5000억달러 돌파한 클라우드 시장…AI 인프라로 쏠리는 기업 예산
원자력 발전소
원자력 발전소
2026.05.26
바다 위 원자력발전소…美 핵 추진 항공모함 포드함, 전력 생산해 육지 공급 [밀리터리+]
원자력 발전소
원자력 발전소
2026.05.21
월성원자력본부, 발전소 주변지역 '100세 장수마을' 축하행사 개최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