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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 속 식물에게 젖을 먹이는 심정으로

2026.06.04 09:06

[시로 읽는 오늘] 이소회 '잡식성 식물'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기자말>

잡식성 식물
- 이소회

내가 아는 지상 가장 높은 곳
상한 우유를 들고 주인집 옥상에 올랐다
깊은 밤 안에는 푸른 화분들
뿌리 가까이 우유를 부어 주었다
검은 흙이 하얗게 부글거리다 이내 가라앉는다
주인이 박아 둔 달걀 껍데기를 식물들은 몇 달째 먹고 있다

우유를 흩뿌린 것 같은 은하수를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젖을 먹고 자란 것들은 고향이 생겨서
그쪽으로 목이 꺾인다

길에서 주운 새를 나무 아래 묻어 준 적 있다
이듬해 가지마다 날개가 돋고
너무 많은 새가 열려 나무가 떠오르는 날도 있었다

반지하방 짤막한 하늘이 뜨는 시간
더듬이를 기억하는 다육이 창으로 바짝 붙는다
발목이 불러 주는 구름 노래 붉은 사과 속 우물이 깊고
자작나무 숲 짙어지면 가만가만
푸른 나무늘보 돋아난다

출처_시집<오오>, 파란, 2024
시인_이소회: 201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오오>가 있다.

 버려진 것들을 먹고 자란 마음들
ⓒ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추천글

나무 아래, 꽃 아래 묻어 둔 씨앗들에게 마음을 쓰는 봄밤입니다. 마음을 쓰자 그들에게 살결이 돋고 목소리가 생겨납니다. 발목은 둥글어지고 날개는 돋아나 노래하는 구름 속으로, 젖을 흩뿌린 것 같은 은하로 거처를 옮겨가기도 합니다. 길에서 주운 목숨을 나무 아래, 꽃 아래 묻어주는 건 그들이 모두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캄캄한 밤 푸른 화분 속 식물에게 젖을 먹이는 심정으로 나의 잡식성 마음을 돌보다 보면 어느덧 짙푸른 여름도 곁에 와있겠습니다. (신준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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