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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회장, 이사가 고속 승진 사양하자 기발한 방법으로…

2026.06.04 13:01

[김기훈의 TalkTalk] 고기영 한신대 교수 ②
기아차 광주공장에서 노조 채용비리 발생
정 회장, 본인 의중 아는 ‘암행어사’ 파견
해결될 때까지 수시로 찾아 보고 받아
깜짝 인사 배경에는 깊은 고민과 숙고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2005년 초에 기아차 광주공장에서 발생한 노조의 채용비리에 대해 매우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사진은 정 회장이 전시 차량 앞에 서 있는 모습./현대차정몽구재단

현대차그룹 임원 출신인 고기영 한신대 교수와 대화가 이어졌다.

―당시 광주에 어떤 문제가 있었나?

“기아차 광주공장에서 입사 비리가 있었다. 당시 광주공장은 노조의 추천을 받아 생산직을 채용했는데, 노조가 많게는 1인당 몇천만 원씩 뒷돈을 받고 추천을 했고 회사는 이 일을 묵인했다. 어떤 연유로 이런 비리가 드러난 것이다. 이 일로 기아차 광주공장장과 기아차 사장이 바로 파면됐다. 그리고 새로운 사장과 광주공장장, 그리고 기아차 노무 담당 전무가 광주에서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정 회장은 그들을 신뢰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 광주에 가서 상황을 체크하고 자신에게 보고해 주길 바랬다. 요컨대 ‘암행어사’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

암행어사가 임금의 생각과 의중을 잘 이해하여 지방에 가서 임금을 대신하여 탐관오리를 처벌하고 억울한 사연에 대해 판결을 내리는 존재이듯 정 회장에게는 누군가 자신의 뜻을 잘 이해하고 적확하게 상황을 보고해 줄 인물이 필요했다. 그런데 누굴 보내지? 정 회장은 밤새 고민한 끝에 나를 생각해 낸 것 같다. 전에 브리핑할 때 보니 자신의 뜻을 이해하는 것 같고, 박사이니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보고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이사 승진

―그 일을 하려면 이사 승진이 필요했나?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임원 직급이어야 했다. 갑작스러운 호출과 이사 승진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었다. 요컨대 이사 승진은 즉흥적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라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사실 이런 측면은 정몽구 회장 경영의 중요 특징이기도 하다. 중요한 문제가 있으면 이를 고위 임원에게 맡기고 보고를 듣는 보통의 한국 재벌 회장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었다. 그는 문제가 있으면 밤새 고민하여 결론을 내리고 최고위 임원들을 불러 회의를 열고 지시를 내렸다. 남이 볼 때는 불현듯, 즉흥적으로 지시를 내리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많은 고민과 숙고 끝에 내리는 신중한 지시였다.”

―정 회장은 일을 직접 하는 스타일이었다는 뜻인가?

“문제 해결책을 고위 임원들에게 구하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답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요컨대 회사의 주요 업무를 진두지휘하는 스타일이었다. 비유하자면 그는 군 총사령관인 동시에 최전선에서 병력을 진두지휘하는 야전사령관이기도 했다. 정몽구 회장 시절에 이루어진 현대기아자동차의 혁신들은 그 근원이 정 회장 자신일 때가 많았다. 그는 기업가 정신의 정수를 보여준 한국의 대표적인 경영자였다고 생각한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은 2005년에 노조 간부들의 채용 비리로 큰 홍역을 치렀다. 사진은 기아자동차 광주 3공장에서 한 직원이 조립된 봉고 트럭을 살펴보는 모습./조선일보 DB

―광주공장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었나?

“기아차 광주공장은 광주에서는 매우 큰 기업이다. 그래서 광주의 시민단체와 노조 내부에서도 비리 노조 간부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상태였다. 광주에 가서 보니 신임 기아차 사장과 노무 담당 전무가 현장에서 수습을 위해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노사 양측 모두 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노조는 비리의 당사자이므로 자기 주장을 내세우기 어려웠고, 당시 회사측은 노조에 끌려다니는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광주에 가보니 시민단체와 지역의 원로들 영향력이 매우 컸다. 노조들도 지역 원로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지 못했다. 어르신의 영향력이 살아 있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원로들의 힘을 빌리자고 생각했다. 노·사·시민단체로 구성된 3자협의 구조를 만들어 혁신안을 만들었다. 앞으로 부정이나 비리를 없애고 지역 발전을 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혁신안에 따라 노·사·시민단체 위원회를 만들어 노사 양측이 합의를 지켜나가는지 감시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3개월 정도 지나자 광주공장 입사비리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수시로 호출하다

―정 회장이 또 칭찬했을 것 같다.

“특별히 그런 것은 없었다. 다만 기아에 간 3개월 동안 정 회장은 하루가 멀다하고 수시로 나를 호출했다. 주로 회장이 주관하는 노사관계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었는데, 회의에는 주로 현대차 노무담당 부회장, 현대차 대표이사(사장), 울산공장장(사장), 기아차 대표이사(사장), 공장장 등이 번갈아가며 참석했다.

그런데 미리 예고하지 않고 급히 호출하는 때가 잦아 어려움이 많았다. 아침 출근하다가 비서실에서 회장님이 급히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 회사 도착하자마자 바로 회장실로 달려간 적도 적지 않았다. 또 오전까지 호출이 없어 오늘은 아무 일 없겠구나 하고 느긋하게 있다가 갑자기 비서실로부터 호출이 와서 회장실로 급히 뛰어간 적도 많았다. 어떤 경우든 호출은 회의 중 뭔가 문제가 있어 정 회장이 급히 나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바로 가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회장 비서실에서도 서울에 있을 때면 멀리 가지 말고 가능한 한 본사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할 정도였다. 다만 내가 광주에 내려가 있을 때는 예외였다.”

정몽구 회장은 회사에 큰 일이 터지면 직접 사람을 골라 '암행어사'로 파견한 뒤 수시로 찾아 보고를 들었다. 사진은 연설하고 있는 정몽구 회장./조선일보 DB

―기아차에서 현대차로 옮긴 배경은?

“어느 날 회장실에서 다시 나를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가 보니 현대차 사장, 기아차 사장, 현대차 울산공장장, 본사 노무담당 전무 등 현대기아차 주요 임원들이 앉아 있었다. 이 무렵 이상기 부회장은 회사를 떠났고 내 상사로 A 전무가 새로 본사 노무 담당 임원으로 취임한 상태였다.

그 자리에서 정 회장은 나를 보고 그동안 고생했다며 ‘고 상무, 이제부터는 현대차로 가서 일하라’고 했다. 이사를 단 지 3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이다. 이때 누군가 ‘고 이사는 승진한 지 3개월밖에 안 됐다’고 말했다. 그러자 정 회장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알고 있어. 1년에 두 번, 세 번 승진한 사람도 있어. 시키는 대로 해!’”

승진 지시를 사양하다

―그래서 3개월 만에 상무가 됐나?

“아니다. 이번에는 내가 정 회장 지시를 거슬렀다. 당시 이상기 부회장이 퇴임했고, 새로운 내 상사로 부임한 A 전무는 회장 눈 밖에 나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핑계를 댔다. 동료 임원들을 끌어들였다. ‘회장님, 제가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으신데 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회사 일이라는 것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와 같이 협업을 합니다. 저 또한 B 이사, C 이사와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의 노사관계를 개선하는 작업은 2004년 경영층의 핵심 개혁 과제 중 하나였다. 사진은 2023년 9월 20일 현대차 노사가 무분규 5년을 기록하며 임금 및 단체협약 조인식을 갖는 모습./뉴스1

―정 회장은 뭐라고 했나?

“내 말의 숨은 뜻을 이해한 것 같다. 부드러운 말투로 ‘고 박사, 그게 아니야’라고 했다. 정 회장은 내게 친근감을 표시할 때면 고 이사가 아니라 고 박사라고 불렀다. 그러더니 B 이사, C 이사를 차례로 회장실로 불렀다. 둘 다 노사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물어봤다. 일종의 테스트였다. B 이사는 회사가 일관성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 설사 회사가 한 달간 문을 닫더라도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었다. 그러자 정 회장이 버럭 화를 냈다. ‘야, 공장이 한 달 문 닫으면 손해가 얼만지 아나? 1조원이야, 1조원. 저것도 방책이라고. 나가!’

이어 C 이사가 올라왔다. 정 회장이 역시 노사관계 해법에 대해 물었다. C 이사가 장황하게 설명했다. 정 회장이 가만히 듣더니 한마디 했다. ‘나가!’ 이렇게 어렵게 생각해 낸 내 핑계가 실패로 끝났다.”

정 회장의 기발한 해법

―정 회장은 어떻게 했나?

“정 회장은 내 핑계를 간파한 것 같다. ‘저 자식이 승진을 거부할 목적으로 동료들을 끌어들였구나’ 하고. 회의 끝에 정 회장이 비서실장을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지시했다. ‘세 사람 모두 승진시켜.’

나는 아무래도 아니다 싶어서 회의 끝나고 나가면서 비서실장에게 ‘저는 승진에서 빼 달라, 혹시 문제가 되면 내가 직접 회장님께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그날 자로 B 이사는 상무로 승진했다. 그런데 C 이사는 승진에서 빠졌다. 나중에 C 이사에게 물으니 비서실장이 연말 인사에서 승진시켜 준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로 C 이사는 그해 연말에 상무로 승진했다. B 이사, C 이사 모두 자신이 왜 승진했는지 모를 것이다. 내가 이런 배경을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 회장이 발탁 인사를 한 의도는 뭐였다고 생각하나?

“정 회장은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일에 맞는 사람을 발탁해 적합한 지위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를 위해 파격적인 인사를 마다하지 않았다. 연공서열을 중시하던 한국 기업 문화에서 매우 독특한 경영 방식이었다.”

고기영 한신대 교수는 현대차 임원 출신으로, 현대차그룹 전직 고위 간부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현대차그룹 발전사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김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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