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 된지 한달도 안됐는데요"…정몽구 회장, "이제부터 이사 해"
2026.06.04 13:01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은 1999년부터 2020년까지 현대차그룹 회장으로 재임했다. 세계 10위권 밖이던 현대자동차그룹은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세계 4위로 올라섰다./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의 세계 3위 기록은 30년 전인 1990년대에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업적이다. 세계 자동차 업계의 순위표에서 보이지도 않던 현대차는 지난 2000년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하면서 세계 굴지의 자동차 회사로 도약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회사의 발전 뒤에는 뛰어난 리더십이 있다. 지난 20여 년간 현대차그룹을 이끌어온 최고경영자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당시 회장(현 명예회장)이다. 현대차 출신으로 현대차그룹의 발전사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있는 고기영 한신대 교수는 지난 6월 1일 인터뷰에서 “현대차의 글로벌 도약은 정몽구 회장의 리더십을 빼면 설명하기 힘들다”며 “정 회장은 치밀하고 기발한 경영 방식을 썼다”고 말했다.
고기영 한신대 교수는 현대차 임원 출신으로, 현대차그룹 전직 고위 간부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현대차그룹 발전사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김기훈
―현대차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91년에 일본에 건너가서 도쿄대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구 주제는 한국과 일본의 자동차 산업에 관한 것이었다. 이후 도쿄의 일본경영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러던 중 2001년에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장을 맡고 있던 이충구 사장이 도쿄대 지도교수였던 후지모토 다카히로 교수를 만나 제자들 중에서 기술과 경영을 모두 이해하는 사람을 추천해 주면 채용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엔지니어 출신인 이 사장에게 경영 관련 보좌를 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2002년 7월에 현대차에 입사하게 됐다. 정몽구 회장이 1999년 현대정공에서 현대자동차로 옮긴 지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한국 자동차는 1976년 첫 수출을 한 이래 50년간 약 7655만대를 수출했다. 사진은 지난 5월 12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 선적 부두에서 차들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현대차 연구개발본부 남양연구소 과장으로 입사했다. 연구개발기획팀 소속으로 1년 반 정도 근무했고 차장으로 진급했다. 그리고 2004년에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소재 글로벌경영연구소 차장으로 옮겼다. 글로벌경영연구소에서 팀장을 맡고 있었는데, 정몽구 회장이 노사관계에 관심을 집중하던 때였다.”
노사관계에 집중하던 정몽구 회장
―정몽구 회장을 직접 볼 일이 있었나?
“당시 정 회장은 노사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생산직을 포함해 전사원의 교육을 새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현대·기아차 노사 관계 담당 총괄 책임자였던 이상기 부회장에게 교육 프로그램을 짜고 교재도 새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과 교재의 요건이 매우 까다로웠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내용이 달라야 했다. 현대차라도 본사와 울산공장에 근무하는 임직원에 대한 교육 내용이 달라야 했다. 또 임직원들이 근무하는 영역별로도 달라야 했다. 생산, 판매, 연구·개발, A/S(애프터서비스) 분야별로 교육 내용이 모두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동일한 분야라도 부장, 과장, 사원 등 직급별로도 달라야 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2004년 노사관계 개선에 전력을 기울였다. 사진은 현대자동차 노사가 지난 5월 6일 울산공장에서 올해 임금 인상 규모 등을 다룰 임금협상 상견례를 갖는 모습./현대차그룹
“정 회장의 요구대로 이행하려면 몇백 가지 교재를 만들어야 했다. 이 부회장은 이 임무를 기획실을 비롯해 사내 여러 부서에 맡기려 했으나 모두 두 손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현대차는 사원 교육용 교재가 전혀 없었고, 현장에서 2~4쪽짜리 문서를 가지고 사원교육을 하던 정말 열악한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이 임무는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 엄청난 일이었다. 방법을 찾지 못해 고심하던 이 부회장은 글로벌경영연구소에 눈을 돌려 팀장급 프로필을 보다가 나를 발견했다고 한다. 서울대를 나왔고 일본 도쿄대에서 박사 학위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를 찍었다.”
고 교수가 말을 이어갔다.
“어느 날 이 부회장이 나를 불렀다. 그리고 이 임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에 나는 못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 부회장은 막무가내였다.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임무를 수락했다. 다만 교재 작성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야 하니 각 부문 현업에서 직원 10명을 차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교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각 부문별 실상을 정확히 아는 직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들을 모아 거의 합숙하듯이 집중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교육 내용을 구성하고 파워포인트 작업도 한 끝에 3개월 뒤 교재 22권을 만들었다. 한 권이 파워포인트 500여 장으로 된 엄청난 분량이었다. 이후 교육 프로그램을 짜고 이 결과물을 이 부회장에게 제출했다. 이때가 2004년 늦가을 무렵이었다. 현대차에서 사원 교육용 정식 교재가 만들어진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 정도로 기념비적인 성과였다.”
정 회장 앞에서 브리핑
―정 회장은 언제 만났나?
“어느 날 이상기 부회장이 갑자기 부르더니 회장실에 가서 교재와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회장님에게 설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21층 회장실로 갔다. 정몽구 회장 앞에서 파워포인트를 띄워 놓고 교재의 내용과 사원 교육 계획에 대해 한 시간가량 브리핑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정 회장은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보고가 5~10분 이상 길어지면 역정을 내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무려 1시간 동안 꿈쩍도 않고 내 보고를 경청했다. 그만큼 사원 교육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또 정 회장은 보고 중 마음에 안 드는 말이 나오면 바로 혼줄을 내는 스타일인데, 그날은 1시간 동안 브리핑을 했음에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브리핑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서울 강남구 양재동에 위치한 현대차그룹 사옥.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 건물 21층 집무실에서 일을 했다./현대차그룹
“브리핑을 마치자 정 회장이 칭찬을 했다. 당신이 교육을 통해 사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교재에 그런 내용이 모두 들어 있다며 ‘어떻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알았냐’고 물었다. 나는 회장님의 평소 말씀과 여기저기 산재되어 있는 어록을 참고해 만들었다고 답했다. 그러자 정 회장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서 이 부회장에게도 칭찬했다. 사실 임무를 주긴 했지만 줄 때 최소한 1년은 걸릴 줄 알았다며 수고했다고 했다. 이렇게 브리핑을 마치고 회장실을 나왔다.”
고 교수의 말이 이어졌다.
“회장실에서 나와 이 부회장실에 갔다. 이 부회장이 내가 정 회장님을 모신 지 30년 가까이 되지만 이렇게 칭찬 들은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 내게 어려운 임무 잘 해냈고 정말 고생했다며 어떻게 보상해 주면 좋겠냐고, 승진시켜 주면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당시 나는 차장으로 아직 1년이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차장 달고 5년이 지나도 진급이 안 되는 사례가 부지기수인데 차장 1년 만에 부장으로 진급하면 남의 질투와 시기를 부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 부회장도 잘 생각했다고 했다. 회장님의 눈에 든 것 같은데 이제부터 직급에 관계없이 중요한 일들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헤어졌다. 그런데 그해 12월에 승진 인사가 있었고 승진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다. 차장을 단 지 1년 만에 부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정 회장의 짜증
―어떻게 된 일인가?
“나중에 알고 보니 승진 발표 전날에 정 회장이 이 부회장을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저런 회사 업무 이야기 끝에 ‘참, 고 박사는 직급이 뭐냐’고 물었다고 한다. 정 회장은 나를 고 박사라고 불렀다. 이 부회장이 차장이라고 했더니 정 회장이 짜증을 냈다. 이 부회장은 그게 무슨 뜻인지 곧 알아차렸다. 승진시키라는 뜻이었다. 이 부회장은 부랴부랴 당일 나를 승진자 명단에 끼어넣었다고 한다.”
고 교수가 쉬지 않고 말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부장이 된 지 한 달도 안 된 2005년 1월 20일쯤에 회장실에서 올라오라는 연락이 왔다. 갔더니 정몽구 회장과 이상기 부회장, 그 외 몇 사람이 앉아 심각한 얼굴로 회의를 하고 있었다. 팽팽한 긴장감과 어두운 분위기에서 기아차 노사관계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회의 말미에 정 회장이 ‘고 이사, 너 광주 좀 내려갔다 와야겠다’고 말했다. 옆에 앉아 있던 이 부회장이 ‘이제 막 부장을 달았습니다’라고 하자 정 회장이 ‘알고 있어. 이제부터 이사 해. 잔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고 말했다. 그날로 이사가 됐다. 부장으로 진급하여 아직 첫 월급도 받지 못한 때였다.”
☞ ②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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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 기자 kh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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