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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나토 전력표서 군용기·군함 뺀다…유럽에 날아든 안보 청구서

2026.06.04 11:45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방위계획에 배정해온 군용기와 무인기, 군함을 줄이겠다고 처음 공개했다. 공백은 다른 나토 동맹국이 스스로 메우라고 하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꾸준히 거론해온 유럽의 안보 무임승차론이 방위비 압박을 넘어 실제 나토 전력 조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2022년 6월 북유럽 발트해에서 진행된 나토 합동군사훈련에서 편대를 형성한 나토 전투기들이 미 해군 강습상륙함 위를 지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美 "나토의 미군 의존 건강하지 않다"
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알렉서스 그린케위치 미국 유럽사령관 겸 나토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은 이날 “유럽 국가들과 캐나다가 나토 방위계획에 필요한 유·무인 군용기와 함정 기여를 신속히 늘리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해당 발언은 나토 군사기획관 회의 직후 나왔다.

그는 “나토 전력 모델(NFM)에서 미군에 대한 건강하지 않은 상호의존이 이어져 왔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 등은 이것이 바뀌어야 하며 실제로 바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전장에서 분쟁이 동시에 벌어질 수 있다는 현실이 이를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알렉서스 그린케위치 미국 유럽사령관 겸 나토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이 지난 3월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의사당에서 열린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NFM은 나토가 동원할 수 있도록 회원국별 병력과 장비를 미리 배정해두는 틀이다. 평시부터 분쟁 상황에 이르기까지 작전에 투입할 수 있는 각국 전력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운용한다는 취지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마드리드 정상회의에서 신설이 합의됐다.

미국은 지난달 동맹국들에 NFM 기여를 줄이겠다고 통보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분야를 줄일지는 밝히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이 먼저 손댈 분야와 동맹국에 요구하는 대체 분야를 그린케위치 사령관이 처음으로 공개했다”고 평가했다. 그린케위치 사령관은 “미국이 유럽 NFM에 배정한 전력을 줄여 다른 곳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유럽과 캐나다가 지금 당장, 그리고 단기간에 속도를 낼 수 있는 두 분야가 유·무인 군용기와 해군 함정”이라고 강조했다.


F-15 3분의 1·무인기 절반 줄 듯…슈피겔 “잠수함 제공 중단 가능성”
로이터통신은 또 군 소식통을 인용해 나토에 제공 가능한 미 F-15·F-15E 전투기가 3분의 1 줄어 99대가 되고, MQ-4와 MQ-9 리퍼 무인기는 절반으로 줄어 12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공중급유기와 해군 함정 등도 감축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특히 MQ-9 감축을 놓고선 나토의 감시·정찰 능력에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이 소식통은 전망했다.

앞서 지난달 26일 독일 슈피겔도 미국의 나토 전력 감축 구상을 보도했다. 미국이 나토에 제공하는 전략폭격기 수를 기존의 절반으로 줄이고 전투기도 3분의 1 감축한다는 내용이었다. 슈피겔은 “정찰 무인기는 유럽이 자체 조달해야 하고 미국의 무장 무인기 제공도 크게 축소될 것”이라면서 “미국이 잠수함을 더 이상 제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번 조정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관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핵우산은 유지하되 유럽의 재래식 방어는 유럽이 더 많이 주도해야 한다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이란 전쟁으로 미국의 중동 전력 수요가 급격히 커진 점도 유럽에 배정한 전력을 다른 지역으로 돌리려는 논리에 힘을 실었다.


나토 “공백 없다” 진화…전문가 “정치적으로 잘못된 신호”
유럽의 방위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나토는 일단 선을 그었다. 나토 군사본부 대변인인 마틴 오도널 미 육군 대령은 그린케위치 사령관이 언급한 분야에 “동맹국들이 이미 충분한 역량을 갖췄거나 곧 갖출 분야”라며 “각국은 보유한 역량을 나토에 배정하기만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감축 규모는 물론 정치적 신호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의 짐 타운젠드 대서양안보 수석연구원은 로이터통신에 “지금은 러시아에 시달리는 동맹을 향해 미국의 지지를 확인해야 할 때”라며 “나토에 약속한 군사력을 줄일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미국 의존 줄이는 유럽…다음달 나토 정상회의에 쏠리는 관심
결과적으로 미국 의존도를 줄이는 유럽의 독자 방위 정책도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다. 노르웨이의 경우 지난달 27일 독일, 폴란드 등에 이어 9번째로 프랑스의 핵억지 협력 구상에 참여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EU 차원에서는 방위산업 공동조달을 지원하는 ‘유럽안보행동(SAFE)’ 기금을 통해 회원국의 무기 생산과 조달을 확대하고 있다. 프랑스·독일·이탈리아·폴란드 등이 시작한 유럽 장거리타격구상(ELSA)도 있다. 미국 장거리 타격 전력에 기대지 않고 유럽 자체 순항·탄도미사일 역량을 키운다는 구상이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왼쪽)과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이 지난 5월 22일(현지시간) 스웨덴 헬싱보리에서 열린 나토 외교장관 회의에서 공동 발언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다음 달 7~8일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유럽 국가에 대한 미국의 변화한 방위 공약이 언급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3일 의회 청문회에서 “나토 역사상 가장 중요한 회의가 될 수 있다”며 “정리하고 고쳐야 할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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