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전
금이 美국채 제쳤다…중앙은행들 ‘달러 대안’ 찾기 본격화
2026.06.04 11:34
중국·인도·폴란드·튀르키예 중심 매수세 지속…유로화 위상도 확대
|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시작된 이란과의 전쟁이 갈수록 격화하는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국내 금 시세가 8% 가까이 급락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3일 KRX금시장의 국내 금 시세(99.99_1kg)는 전장보다 7.87% 내린 1g당 20만8천530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사진은 24일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 본점에 놓인 골드바. <연합뉴스> |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보유한 준비자산 가운데 금의 비중이 사상 처음으로 미국 국채를 넘어섰다. 미국 달러 자산이 여전히 최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러시아 외환보유액 동결 이후 각국이 달러 의존도를 줄이고 금 보유를 늘리면서 국제 통화질서에도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일(현지시간) 발표한 ‘유로화의 국제적 역할’ 보고서에서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중앙은행 준비자산 가운데 금 비중이 27%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1년 전 20%에서 7%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반면 미국 국채 비중은 같은 기간 25%에서 22%로 하락했다. 미국 국채를 포함한 달러화 표시 자산 비중은 42%로 여전히 가장 높았지만, 단일 자산 기준으로는 금이 미국 국채를 앞질렀다. 유로화 표시 자산 비중은 15%로 변동이 없었다.
중앙은행 준비자산은 중앙은행이 자국 통화 가치를 방어하고 국제결제 의무를 이행하며 금융위기 상황에서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보유하는 고유동성 자산이다. 일반적으로 미국 국채와 달러 예금, 금, 유로화 자산 등이 포함된다.
다만 유럽중앙은행은 금 비중 확대의 상당 부분이 금값 급등에 따른 평가액 상승 효과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 금 보유량을 2023년 말 금 가격으로 환산하면 금 비중은 16%로 낮아진다. 이는 유로화와 같은 수준이며 미국 국채 비중인 26%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 추세는 뚜렷하다. 유럽중앙은행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의 금 보유량은 현재 3만6000t을 넘어섰다. 이는 달러가 금과 연동됐던 브레턴우즈 체제 전성기인 약 3만8000t에 근접한 수준이다.
최근 금 수요를 자극한 가장 큰 요인은 지정학적 불안이다. 미국이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유로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을 동결한 이후, 각국 중앙은행은 달러 자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정치적 제재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금 보유를 확대해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보고서에서 “지정학적 긴장이 금에 대한 중앙은행들의 강한 수요를 계속 이끌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2022년 이후 금 보유량을 가장 많이 늘린 국가는 중국과 폴란드, 튀르키예, 인도다. 각국 중앙은행의 금 순매입 규모는 지난해 850t으로 전년보다 소폭 감소했지만 최근 3년 연속 연간 1000t 안팎의 대규모 매입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테더가 지난해 100t 이상의 금을 사들여 단일 기관 기준 최대 금 매입자로 부상한 점도 주목된다. 이는 민간 디지털자산 기업이 중앙은행 수준의 금 매입에 나선 사례로 평가된다.
반면 튀르키예는 올해 초 이란 전쟁 이후 약 130t의 금을 매각하거나 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중앙은행은 이를 최근 수년간 가장 큰 규모의 금 준비자산 인출 사례 중 하나로 소개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러한 변화를 중앙은행들이 달러 중심 금융체제의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으로 해석했다. 달러를 보유할 경우 미국의 금융제재에 노출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금이 지정학적 위험에 대비한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달러의 지배력이 당장 흔들리는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달러 표시 자산은 여전히 전체 준비자산의 42%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제결제와 무역금융, 외환거래에서도 압도적인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유로화의 국제적 위상도 강화되는 모습이다. 지난해 유로화 표시 국제 채권 발행 규모는 약 1조유로로 전년 대비 30% 증가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해외 투자자들의 유로존 자산 순유입 규모도 8500억유로에 달해 유로화 출범 이후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달러 중심 체제가 유지되는 가운데 금과 유로화가 대안 자산으로 존재감을 키우면서 글로벌 외환보유액 구조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지정학적 갈등이 장기화할수록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 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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