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독무대 필리핀 방산 시장에 일본 구애 작전 거세져
2026.06.04 07:02
2028년 필리핀 전투함 14척 중 11척이 한국산
K-방산의 매력을 일찍 알아본 나라가 필리핀이다. 동남아시아 최대 K-방산 고객이라고 할 수 있는 필리핀 육군에선 한국산 소총과 기관총, 대전차 미사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예비역들이 현역 시절 탔던 ‘4/5t’ ‘두돈반’ 트럭도 대량 운용 중이다. 심지어 일부 차량은 도색도 한국군 때 그대로여서 이곳이 한국 부대인지, 필리핀 부대인지 헷갈릴 정도다.필리핀 해군으로 눈을 돌리면 한국산 무기 비중은 더 커진다. 최근 10년 동안 필리핀 해군이 새로 도입한 수상전투함은 모두 한국산이었다. 호세 리잘급 호위함(2800t·2척), 미겔 말바르급 호위함(3200t·2척), 라자 슐레이만급(2400t·6척) 초계함 등이다. 필리핀은 가격과 납품 속도, 성능, 신뢰성, 후속 군수지원 모든 면에서 한국산 전투함에 대단히 만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된 물량이 모두 납품되는 2028년 기준으로 필리핀 해군의 수상전투함 14척 중 11척은 한국산이 될 전망이다.
필리핀 공군의 한국산 무기 사랑도 뜨겁다. 필리핀은 2014년 FA-50PH 12대 구매 계약을 체결했고 이듬해 전투기를 인수하기 시작했다. 현재 FA-50PH는 필리핀 공군의 주력 전투기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이 전투기 1대가 비행 중 추락해 조종사 2명이 순직했는데, 사고 이후 현지에선 FA-50PH 추가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그 좋은 전투기를 얼마나 가혹하게 굴렸으면 사고가 발생했느냐”는 여론에 필리핀 정부는 FA-50PH 12대를 추가 도입하고 기존 보유분 11대를 성능 개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최근 필리핀은 자국 공군 차세대 전투기로 KF-21을 도입할 의사도 여러 차례 내비쳤다.
이처럼 K-방산에 호감을 가진 필리핀에서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한국’이라는 키워드가 장악하던 필리핀의 대외 무기 도입 관련 뉴스에서 ‘일본’이라는 단어가 조금씩 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앞서 언급한 유럽, 미국보다도 방위산업이 더 망가진 나라다. 우선 일본은 오랫동안 무기 수출을 법으로 금지해 품질 경쟁력이 떨어진 상태다. 게다가 자위대 납품을 독점하는 일본 방산 기업의 무기는 높은 가격과 느린 납품 속도로 악명이 높다. 예를 들어 미국 F-16을 기반으로 재설계된 F-2는 F-16의 3배 가격에 일본 항공자위대에 공급됐다. 예산이 넉넉지 않아 ‘가성비 무기’를 선호하는 필리핀 사정에는 맞지 않는 전투기다.
일본, 퇴역 무기 공여→저금리 차관 제공 전략
그럼에도 요즘 필리핀에서 일본 무기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일본의 적극적인 구애 때문이다. 강경 반중(反中) 정책을 천명한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은 필리핀과 대만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해 중국을 견제하려 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양국에 무기를 판매하거나 지원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 중이다. 일본은 자위대에서 퇴역한 무기들을 필리핀에 무상 공급해 일단 교두보를 확보한 뒤, 저금리 차관 형태로 구매 자금을 빌려주는 세일즈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런 전략에 따라 필리핀에 무상으로 제공하려는 무기 규모가 어마어마하다.우선 일본은 1990년대 초반 취역해 곧 퇴역을 앞둔 2500t급 호위구축함 아부쿠마급 6척을 무상 제공 리스트에 올렸다. 해상자위대의 현용 주력 전투함 중 하나인 아사기리급 구축함도 퇴역과 함께 필리핀에 양도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4500t급인 아사기리함이 공여될 경우 필리핀 해군의 최대 전투함이 된다. 양국 정부가 공식 발표하지 않았지만 두 나라 언론에선 “중고 전투함 공여를 발판 삼아 일본이 최신형 모가미급 호위함과 중고 소류급 잠수함 판매를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외에도 일본은 필리핀에 장거리 대공·대수상 레이더를 이미 공급했고, 최근 육상자위대에서 퇴역한 88식 지대함미사일 최대 700발, 16식 기동전투차 등을 넘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최악의 가성비로 악명 높은 일본제 전차가 필리핀 육군의 차세대 주력전차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필리핀은 “납품이 늦어지는 이스라엘제 사브라 경전차 대신, 일본의 10식 전차 구매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브라는 앞서 필리핀 전차 사업 수주전에서 한국 K21-105 경전차와 붙어 승리한 모델이다. 그런데 2021년 1차 18대 구매 계약을 체결하고 5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작9대만 납품됐다. 당초 필리핀은 사브라 144대를 도입할 계획이었지만 납품이 늦어지자 1차분 계약을 엎고 대체 모델을 물색 중이다. 상식적으로 사브라의 옛 경쟁 모델인 K21-105를 도입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왜인지 K21-105는 거론되지 않고 있다.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필리핀
심지어 필리핀에선 일본 F-2 전투기 구매 얘기까지 나온다. 지난해 6월 필리핀 공군참모총장은 “일본 F-2A 전투기 구매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F-2A는 2011년 단종됐기 때문에 필리핀은 중고 기체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 현재 일본 항공자위대가 운용 중인 F-2A 85대는 2030년대 초반 퇴역할 예정이다. 일본이 F-15 성능 개량과 F-35 구매 일정을 조금 앞당긴다면 2020년대 후반 F-2 전투기 일부가 필리핀에 염가 판매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필리핀은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중국 전투기에 맞설 우수한 공대공 전투 능력은 물론, 중국 군함을 견제할 수 있는 공대함미사일 운용 능력을 갖춘 전투기가 필요하다. F-2A는 이런 조건을 충족하지만 KF-21은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KF-21 탑재용 한국형 공대함 유도탄-Ⅱ 개발 사업은 지난해 “사업 타당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판단을 받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KF-21에는 한국 독자 기술로 개발한 레이더와 임무용 컴퓨터가 쓰인다. 여기에 미국이나 유럽산 공대함미사일을 탑재해 판매하려면 해당 국가들로부터 수출 승인을 받아야 한다. 체계 통합에도 많은 돈이 들어간다. 한국이 공대함 유도탄-Ⅱ를 개발해 판매하지 않으면 필리핀은 KF-21을 도입해도 중국 군함을 견제할 능력을 갖추기 어렵다.
일본이 필리핀 방산 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배경에는 그들의 대외 전략이 깔려 있다. 최근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필리핀과의 관계를 급속도로 강화하고 있다. 일본 자위대는 4월 말부터5월 초까지 실시된 ‘발리카탄 2026’ 훈련에 대규모 부대를 보냈다. 발라카탄 훈련은 미국과 필리핀이 남중국해에서 실시하는 연례 합동 훈련이다. 일본은 이 훈련에 지난해부터 참관국을 넘어 정식으로 참가하고 있다. 이때 파견된 자위대 부대는 미국-필리핀의 또 다른 연합 훈련인 ‘살락닙 2026’에도 참여했다. 발라카탄 훈련에선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의 지휘임무네트워크(IMN)가 첫 실전 가동됐다. 그동안 발리카탄 훈련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해온 한국은 올해 아예 부대를 파견하지 않았고 미국, 일본, 호주, 필리핀, 캐나다, 뉴질랜드가 참여한 IMN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일본, 미국-필리핀 합동 훈련에 적극 참여
국가 간 방산 거래는 무기체계의 성능과 신뢰성, 가격, 납품 속도 같은 요소뿐 아니라 정치적 변수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필리핀 입장에서는 반중 동맹의 핵심을 자처한 일본의 행보가 소구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세계 최강 가성비를 자랑하며 위세를 떨친 K-방산이 자칫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고비용·저효율로 악명 높은J-방산에 밀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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