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전
박찬대 인천시장, 판자촌에서 시청으로... 인천시 이끌 ‘새 선장’ 되다
2026.06.04 05:07
노무현 서거 계기 시민운동 투신… 정치 입문
민주당 험지 연수구서 첫승, 3선 가도 마련
경제전문가 강점 살려… GTX 등 현안 해결
이재명 복심에서 원내대표로 존재감 키워
‘해불양수’ 인천 토박이로… 미래 설계 기대
박찬대 인천시장 그는 누구인가
300만 인천시민은 민선 9기 인천시를 이끌 적임자로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후보를 선택했다. 박 당선인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현직 시장인 국민의힘 유정복 후보를 꺾고 인천시장에 당선됐다.
인천 판자촌인 ‘히다찌 마을’에서 태어나 회계사로 자수성가한 박 당선인은 시민 운동과 정치 활동을 거쳐 3선 국회의원, 원내대표, 당대표 직무대행 등을 역임한 뒤 인천시정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 올랐다.
박 당선인이 제시한 ‘민생회복 100일 프로젝트’와 인공지능(AI)·바이오(BIO)·문화(Culture)·에너지(Energy)를 축으로 한 ‘ABC+E’ 전략은 인천의 현안을 해결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할 핵심 정책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경기일보는 박 당선인이 살아온 발자취를 뒤돌아본다. 편집자주
인천 판자촌인 ‘히다찌 마을’에서 태어나 회계사로 자수성가한 박 당선인은 시민 운동과 정치 활동을 거쳐 3선 국회의원, 원내대표, 당대표 직무대행 등을 역임한 뒤 인천시정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 올랐다.
박 당선인이 제시한 ‘민생회복 100일 프로젝트’와 인공지능(AI)·바이오(BIO)·문화(Culture)·에너지(Energy)를 축으로 한 ‘ABC+E’ 전략은 인천의 현안을 해결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할 핵심 정책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경기일보는 박 당선인이 살아온 발자취를 뒤돌아본다. 편집자주
■ 인천에서 나고 자란 인천 토박이... ‘개천의 용’
박 당선인은 1967년 인천 남구(현 미추홀구) 용현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유년 시절은 인천의 산업화와 서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공간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인하대학교 캠퍼스가 들어선 용현동 일대 판자촌인 ‘히다찌 마을’ 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 속에서 성장한 그는 어려서부터 가난과 서민들의 삶을 몸소 경험했다.1933년생이었던 박 당선인의 아버지는 17세에 결혼하여 6·25 전쟁을 겪고, 일곱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미군 부대를 따라 용산과 부평을 거쳐 문학산 자락까지 내려왔다.
아버지는 부대에서 모은 푼돈으로 골목 안에 작은 구멍가게를 열었지만, 대가족이 온전히 생계를 이어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가게 한구석에서 바지락을 까고 콩나물을 다듬으며 삶의 고단함을 견뎌냈다. 가족의 밥상에는 늘 상품 가치가 떨어져 팔다 남은 음식들이 올랐고, 온 가족이 번듯하게 식당에서 외식을 나가는 일은 꿈도 꿔보지 못했다.
용현초등학교와 대건중학교, 동인천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인하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학창시절은 결핍의 시절이었다. 박 당선인은 중학교 시절 친구 집에 처음 방문해 카레라는 음식을 접했고, 미술 실력이 상당했지만 가세가 기울어 예술가의 꿈은 꾸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박 당선인은 집 주변 사찰과 교회의 보살핌 속에서 정서적 안정을 얻었다.
박 당선인은 인하대학교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어린 시절의 경제적 어려움에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았던 경험은 이후 그의 삶과 정치 철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당선인은 대학원 졸업 후에는 회계사의 길을 걸었다. 박 당선인은 1997년 한국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데 이어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도 취득했다. 세동회계법인과 삼일회계법인 국제부에서 근무하며 기업 재무와 국제 회계 분야 전문성을 쌓았고, 금융감독원 회계감독국과 공시감독국에서도 근무했다. 이후 한미회계법인 부대표를 맡으며 민간과 공공 영역을 두루 경험했다.
■ 그를 움직이게 한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214표의 기적
박 당선인의 정치 입문은 비교적 늦은 편이었다. 오랜 기간 회계사로 활동하며 안정적인 삶을 이어갔지만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시민사회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박 당선인은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본인을 정치로 이끈 주요한 문구였다고 회상한다. 이후 인천 지역 시민단체인 인천 사람과 문화와 평화복지연대, 인문학 모임 다카스 등에서 활동하며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넓혀갔다.
판자촌 소년이 회계사로 자립할 수 있었던 것은 혼자만의 능력이 아니라 그를 지켜준 숲의 보호와 선한 연대 덕분을 깨달았다. 그는 이 시기를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꼽아 왔다. 본인이 알고 있던 세상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가 시작됐다.
그러나 박 당선인은 시민사회의 훌륭한 대안도 행정가와 정치인의 권한 앞에서는 서랍 속 서류로 끝나는 한계를 마주했다. 공동체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책임 있는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함을 절감했다. 빈민운동의 대부 고 제정구 의원의 동서인 최원식 변호사와 함께 정책을 치열하게 학습하며 현실 정치 입성을 묵묵히 준비했다.
정치권에는 2012년 민주통합당 입당과 함께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첫 도전은 순탄하지 않았다. 19대 국회의원 선거(총선)를 앞두고 남구을 선거구 출마를 준비했지만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정치 신인으로서 좌절하기보다 당 조직 활동에 집중했고, 이후 연수구 선거구에서 지역위원장을 맡아 지역 기반을 다졌다.
그 결실은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나타났다. 당시 민주당계 정당이 약세를 보이던 연수갑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한 그는 국민의당 돌풍 속에서도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국회에 입성했다. 불과 214표 차이의 신승이었다. 연수구에서 민주당 후보가 거둔 첫 총선 승리였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214표는 민주당에서 최소 격차 당선자였고, 민주당은 1석 차이, 123석 대 122석으로 원내 제1당이 되어 국회의장을 배출했다. 이는 불과 8개월 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상정하고 가결하는 결정적 도미노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후 박 당선인은 21대 총선과 22대 총선에서도 연이어 당선되며 3선 고지에 올랐다.
■ 국회 입성 후 ‘경제전문가’ 방점... 넓어지는 당내 입지
박 당선인은 국회에서는 경제 전문가 출신이라는 강점을 적극 활용했다. 정무위원회와 교육위원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 주요 상임위원회에서 활동하며 회계·재정·교육 분야 정책을 다뤘다. 특히 외부감사법 개정, 공정과세 정책 추진, 대안교육기관 관련 법률 제정 등에 참여하며 정책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는 지역 현안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인천고등법원 설치 문제를 비롯해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B 노선 조기 착공 문제를 해결했다. 그는 청학사거리에 역을 신설해달라는 주민의 요구를 받아 GTX-B 노선 정차 및 ‘제2경인선 광역철도망 계획’과 연계해 사업의 불씨를 되살렸다. 이와 함께 300만 인천 시민이 고등법원 하나 없어 원정 재판을 겪는 서러움을 끊어내기 위해 법제사법위원회를 집요하게 설득하여 고등법원 설치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는 또 해사전문법원 유치를 두고 부산과 벌어진 갈등 상황에서는 지역 상생을 위한 동시 설치 대안을 제시하여 소위 통과를 이끌어냈다.
이로 인한 민주당 안에서의 입지도 꾸준히 넓혀갔다. 그는 원내대변인과 정책조정위원장, 최고위원 등을 거쳤으며 당시 당 대표인 이재명 대통령과도 오랜 기간 호흡을 맞췄다. 특히 22대 국회에서는 민주당 원내대표에 선출되며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원내대표 재임 시절 여야 대치 국면 속에서 협상과 대여 투쟁을 동시에 이끌며 존재감을 키웠다.
지난 2024년 12월3일 비상계엄 당시 그는 동료 의원들과 함께 국회 담장을 넘어 의사당으로 진입했다. 박 당선인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대표 발의하여 가결시키고, 이어진 ‘탄핵소추안’ 발의를 통해 헌정 질서를 지켜냈다.
■ 인천에서 나고 자란 박찬대가 돌아왔다
박 당선인은 이번 인천시장 선거 출마를 위해 3선 국회의원직을 내려놓는 승부수를 던졌다. 중앙 정치 무대에서 쌓은 경험을 인천 발전에 쏟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는 용현동 판자촌에서 시작된 삶이 회계사와 국회의원을 거쳐 인천시장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시민의 도움과 연대 속에서 가능했다고 강조해왔다.
그는 또 선거 과정에서는 인공지능(AI), 바이오(Bio), 문화콘텐츠(Culture), 에너지(Energy)를 핵심 축으로 한 'ABC+E' 전략을 대표 공약으로 제시했다. 인천공항과 인천항을 활용한 AI 물류 허브 구축, 송도 바이오 산업 고도화, 원도심 문화콘텐츠 산업 육성, 친환경 에너지 산업 확대 등이 주요 내용이다. 박 당선인은 ‘인천의 미래를 책임질 준비된 시장’을 강조하며 인천의 경제와 민생, 산업, 교통 분야의 변화를 약속했다.
이번 당선으로 박 당선인은 인천시정의 새로운 책임을 맡게 됐다. 인천은 대한민국 제2의 경제도시를 목표로 공항·항만·바이오 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원도심 쇠퇴와 교통 인프라 확충, 청년 일자리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또한 새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국비 확보와 주요 현안 해결을 이끌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박 당선인은 바다가 모든 물을 묵묵히 품어 대양을 이루듯, 해불양수(海不讓水)의 도시 인천이 키워낸 그가 이제 인천 시민의 일상을 지키고 압도적인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단단한 걸음을 내딛는다.
주요 약력
■ 학력
-용현초·대건중·동인천고 졸업
-인하대학교 경영학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졸업
■ 주요 경력 및 당무 이력
-육군병장 만기전역
-한국, 미국 공인회계사 합격
-세동회계법인 국제부(PW)
-삼일회계법인 국제부(PWC)
-금융감독원 회계감독국, 공시감독국
-한미회계법인 경인본부장 겸 부대표
-제20·21·22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중학교의 다른 소식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