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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 상대적 박탈감에 갇힌 대한민국

2026.06.04 00:35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차이를 차별의 결과로 인식하고
왜곡된 평등의식이 팽배한 사회

위선적인 평등의 가면을 벗고
격차를 인정하는 용기 가져야

이제 '비교'라는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걸어나와야 한다

최근 우리 사회는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거대한 늪에 빠져 있다. 소셜미디어(SNS)에는 화려한 호캉스, 명품 언박싱 등 호화로운 삶의 모습을 자랑하는 이들의 영상과 그들의 삶을 비꼬는 영상이 넘쳐난다. 많은 이들이 SNS에 비친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면서 상실감과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비극은 불평등한 현실보다 모든 격차를 죄악시하는 왜곡된 평등 의식과 그 속에서 괴물처럼 자라난 상대적 박탈감에 있다.

학기 말에 상을 못 받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까봐 담임교사가 반 학생 서른명 전원에게 ‘착한 어린이 상’을 나눠주고, 1등을 못한 학생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까봐 달리기 등수를 없애다 못해 아예 운동회를 폐지해 버린 초등학교, 서울대를 못 간 대입 수험생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까봐 모든 대학 명칭을 서울대로 바꾸는 사회, 로또에 당첨되지 못한 복권 구매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까봐 모든 구매자에게 1등 당첨금 1500원씩을 나눠주는 복권, 사투리를 사용하는 국민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까봐 사투리로 뉴스를 진행하는 방송국 등 왜곡된 평등을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영상들이 SNS에 넘쳐난다.

다수가 느끼는 타당한 박탈감은 사회적 모순을 바로잡고 정의를 실현하는 동인으로 작용해 왔다. 전근대 사회의 신분제를 무너뜨린 것도, 산업 사회의 노동 환경을 개선한 것도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현실에서 비롯된 박탈감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박탈감은 공적 정의를 향한 분노이기보다는 주변의 성취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감정에 가까운 듯하다. 모든 종류의 차이를 불공정에서 비롯된 차별이 낳은 결과로 인식하고, 개인의 재능, 선택, 노력에 따른 정당한 결과의 차이조차 수용하지 못하는 왜곡된 평등 의식이 팽배하다.

과정을 무시한 채 결과의 평등만을 절대 선으로 여기는 구성원의 시각은 사회적 역동성을 훼손할 수 있다. 정당한 결과의 차이마저 부정하는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모험적인 도전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는 하향 평준화의 덫에 갇힐 수밖에 없다. 또한 왜곡된 평등 의식이 팽배한 사회의 구성원들은 삶을 제로섬 게임으로 바라보면서 타인의 성공에서 상실감을 느끼고 타인의 기쁨을 자신의 비극으로 받아들인다. 타인의 성공이 자신이 기회를 앗아간다고 여기며 자신의 실패를 타인의 탓으로 돌린다. 공동체의 발전이 자신의 행복과 연결된다는 믿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서로를 감시하고 끌어내리려는 날선 적대감만 남는다. 결국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타인의 발목을 잡는 집단적 광기가 사회를 지배하면서 사회적 연대는 파괴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구성원 개인의 회복탄력성이 무너진다는 사실이다. 삶의 기준이 자신이 아닌 주변의 시선에 맞춰지면 사회적 동조 현상에 의해 끊임없이 자신을 타인의 시선으로 재단하게 된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SNS에 비친 화려한 삶을 살지 못하면 스스로를 실패자로 낙인찍는다. 내적 가치나 주체적 성장에서 오는 만족감을 상실한 채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교 우위를 점하는 데만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만성적인 무기력증과 우울증을 경험하게 된다. 작은 실패나 주변과의 작은 격차에도 평정심을 잃게 된다.

사회의 담론이 온통 상대적 박탈감에만 매몰돼 격차를 은폐하는 데만 급급하다 보니 정작 격차를 메우기 위해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는 시야에서 사라진 느낌이다. 생산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건설적인 비판과 제도적인 개선 노력은 실종되고, 특정 계층에 대한 혐오와 감정적 배설만 가득하다.

이제 우리는 ‘비교’라는 스스로 만들어낸 감옥에서 걸어 나와야 한다.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유령에 휘둘려 서로를 증오하는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 공정한 기회가 철저히 보장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제도 개선도 이뤄져야겠지만 타인의 성취에 아낌없는 박수와 존경을 보낼 수 있는 성숙한 시민 의식 또한 절실하다. 기성세대는 먼저 위선적인 평등의 가면을 벗고 격차를 인정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차이를 지우는 교육이 아닌 차이를 다루는 교육을 통해서 다음 세대에게 상처 없는 삶이 아니라 상처를 입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삶을 가르쳐야 한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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