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만으로 10만 년 살아남은 물고기의 비밀
2026.06.03 17:26
진화 모델로는 ‘나쁜 돌연변이’가 계속 축적돼 진작에 멸종돼야 했는데 되레 번성
멕시코와 미국 텍사스주 남부의 강에는 ‘진화론’으로는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은빛 비늘의 물고기가 헤엄친다. 성체의 길이가 4~7㎝로 모든 개체는 암컷이다. 가까운 친척에 해당하는 물고기 종(種)의 수컷과 짝짓기를 하지만, 이 수컷의 유전자는 사실상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새끼는 모두 암컷이다.
암컷은 수컷의 정자를 난자의 발달을 촉발하는 신호로만 이용할 뿐, 정자에 포함된 DNA(유전물질)을 제거한다. 이른바 ‘자극생식(gynogenesis)’라 불리는 메커니즘이다. 따라서 어미 암컷은 자신의 클론(cloneㆍ복제체)인 새끼 암컷을 낳는다. 물고기 이름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성 전사(戰士) 집단의 이름을 따서 ‘아마존 몰리(Amazon molly)’다.
이 물고기는 거의 100년 동안 과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진화 이론에 따르면, 암컷만으로 생식이 이뤄지는 이런 무성(無性)생식 종은 해로운 돌연변이가 세대를 거치면서 유전체(genome)에 축적되고 결국 빠르게 사라져야 한다. 미국의 유전학자 허만 조지프 뮐러가 말한 ‘뮐러의 래칫(ratchet)’ 이론이다.
즉 유성생식에서는 부모의 DNA가 섞여서 나쁜 돌연변이를 제거할 수 있지만, 무성생식에서는 한 방향으로만 ‘딸깍딸깍’ 움직이는 스패너의 래칫처럼 발생한 돌연변이가 쌓이고 복제만 하기 때문에 좋은 유전자와 섞이어 복구될 수가 없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아마존 몰리는 이론적 모델 상으로는 기껏해야 1만 년쯤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져야 하는데, 이 물고기는 이미 10만 년 간 존속하고 있다.
BBC 방송은 “아마존 몰리의 수수께끼가 최근 연구를 통해서 풀리면서, 과학자들은 무성생식 종이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인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장 최근 연구는 지난 3월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독일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뮌헨대 계산생물학자인 에드워드 라이스마이어(Ricemeyer) 교수팀의 논문이었다. 연구진은 아마존 몰리가 애초에 암컷인 ‘애틀랜틱(Atlantic) 몰리’와 수컷인 ‘세일핀(Sailfin) 몰리’의 교배를 통해 생겨난 것을 전체 염색체 시퀀싱(sequencing)을 통해 알아냈다. 그러나 두 종의 교배를 통해서, 라이거(수사자와 암호랑이의 교배)나 노새(수말과 암당나귀 교배)와 같은 불임(不姙) 잡종이 아니라 무성생식이 가능한 새로운 계통인 ‘아마존 몰리’가 태어났다. 이 ‘아마존 몰리’는 이 두 조상 종의 유전자를 모두 지니고 있다.
라이스마이어 교수는 “사실 유성생식은 매우 이상하고 복잡한 번식 방식”이라고 말했다. 개체는 짝을 찾아야 하고 경쟁해야 한다. 또한 부모 각각은 자신의 DNA 절반만 자손에게 전달한다. 게다가 많은 종에서 암컷은 난자 생산ㆍ임신ㆍ부화ㆍ양육 등에 수컷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 반면에 무성생식은 짝을 찾을 필요도 없고, 자신의 유전자를 100% 후손에게 전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생명계 전체에서 보면 유전자의 혼합과 재조합을 수반하는 암수 간의 유성생식이 99.9%로 압도적이다. 종의 번식과 생존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부모 두 개체의 DNA는 재조합(recombination)을 통해 뒤섞이고, 그 결과 각각의 자손은 고유한 유전자 조합을 갖게 된다.
마치 마치 카드 한 벌을 계속 섞어서 새로운 패를 나누어 주는 것과 비슷하다. 매번 새로운 조합이 등장하고, 진화 과정에서 가장 ‘적절하고 다양한 조합’들이 살아남는다. ‘뮐러의 래칫’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마존 몰리는 무성생식을 하는데도, 단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번성하고 있다. 라이스마이어 교수는 그 해답이 이 물고기의 ‘유전자 전환(gene conversion)’에 있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전체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을 통해 수 세대의 아마존 몰리를 비교한 결과, 일부 DNA 구간이 반복적으로 ‘덮어쓰기(overwrite)’가 되고 있는 점을 발견했다. 아마존 몰리는 단지 ‘복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 전환’을 통해 사실상의 ‘재조합’을 하고 있었다. 라이스마이어는 “특히 놀라운 점은 가장 해로운 돌연변이가 예상되는 바로 그 영역에서 유전자 전환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전자 전환’은 DNA를 수선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생물에서 나타난다. 인간과 같은 유성생식 생물은 대부분의 유전자에 대해 부모로부터 각각 한 개의 사본을 물려받는다. DNA가 자외선 등으로 손상되면, 세포는 한쪽 사본을 주형(templateㆍ’정답’처럼 참고하는 원본 서열)으로 사용해 다른 사본을 복구할 수 있다.
라이스마이어 연구진은 “아마존 몰리의 경우에는, 두 조상 종의 유전자가 충분히 비슷해서 서로의 복구 주형(template) 역할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충분히 달라서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것이 광범위한 유전자 전환을 가능하게 한 핵심 요인이라는 것이다.
연구진은 아마존 몰리가 새로운 돌연변이를 원래 상태로 되돌릴 확률이 확산시킬 확률보다 10.6배 더 높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아마존 몰리는 10만 년 동안 성적 번식 없이 살아왔음에도 매우 건강한 유전체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라이스마이어 교수는 “우리는 성적 번식[유성생식]만이 유전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같은 결과에 도달하는 다른 경로가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됐다”고 BBC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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