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전
[로터리] AI시대 엔진으로 거듭난 K전기
2026.06.03 21:56
인파를 피해 안쪽으로 들어가면 ‘궁궐 안의 궁궐’이라는 ‘건청궁’과 만난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곳은 우리나라 전력 산업이 시작된 ‘K전기의 출발점’이다. 토머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한 지 불과 8년 만인 1887년에 국내 최초의 전등을 여기서 밝혔다. 그 당시 일본과 중국 왕실보다 한발 앞선, 당대 최고의 첨단기술 혁명이었다.
건청궁의 전등은 1898년 한성전기회사(한국전력공사 전신) 설립이라는 근대화의 씨앗이 되었고 1961년 한국전력주식회사 출범으로도 이어졌다. 이후 한전은 고리 1호기 가동으로 본격적인 원전 시대를 열었고 아시아 최초의 초고압 송전망 구축, 32년에 걸친 220V 승압 사업 등을 차례대로 완수하며 안정적 전력 공급을 책임감 있게 수행해왔다.
이런 노력 덕분에 대한민국의 전기 품질은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다. 가구당 정전 시간은 연간 약 9분으로 미국(125분), 영국(38분)보다 훨씬 짧다. 정전 횟수는 연간 0.11회에 그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중학교를 졸업하는 9년간 정전을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수준이다. 송배전 손실률(3.53%)도 영국(9.47%), 독일(13.61%) 등 선진국 대비 현저히 낮다. 이 놀라운 기록 뒤에는 태풍·폭염·산불 등 극한의 악천후와 재난 속에서도 1년 내내 전력망을 묵묵히 지켜낸 연인원 23만 전력인의 사명감과 헌신이 숨어 있다.
우수한 전기 품질은 조선·제철·자동차 등 국내 기간산업의 압축 성장을 충실히 뒷받침했다. 특히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 역시 ‘안정적 전력 공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노 단위 초정밀 공정에서는 단 0.1초의 정전만 발생해도 수개월 치 공정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K전기의 무대는 세계로도 뻗어나가고 있다. 1995년 필리핀 화력발전소 사업을 시작으로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에 이르기까지 현재 총 12개국에서 31개 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렇게 세계 시장에서 창출해낸 누계 매출액은 무려 51조 원에 달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인공지능(AI)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전기의 가치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과거의 전기가 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인프라’였다면 미래의 전기는 국가 패권을 좌우하는 ‘핵심 전략자산’이다. 에너지 대전환과 AI 산업의 폭발적 성장 속에서 전력 산업은 천문학적 규모로 빠르게 커질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블룸버그는 앞으로 2050년까지 전 세계 에너지 시장에 213조 달러의 천문학적 금액이 누적 투자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른 나라보다 한발 앞서가려면 이 거대한 변화를 정확히 읽고 다가올 기회를 선점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지능형 디지털 발전소(IDPP), 변전 설비 예방 진단 솔루션(SEDA), 차세대 배전망 관리 시스템(ADMS) 등 자체 개발한 에너지 신기술들이 준비돼 있다. 이제는 우리가 가진 뛰어난 기술들을 민간 자본과 결합하고 에너지 생태계의 혁신을 주도해 가시적 성과들을 만들어낼 차례다. 139년 전 건청궁을 밝힌 전등이 대한민국의 비약적 성장을 뒷받침했다면 앞으로의 AI 시대에는 한전의 에너지 신기술이 혁신적 도약을 이끌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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