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주세요"…'충주맨' 김선태, 조직 이렇게 바꿨다
2026.06.03 10:00
의자에 눕다시피 등을 기댄 뒤 책상에 두 발을 꽈 올렸다. 거들먹거리는 태도에 도발적인 말이 서슴없이 튀어나왔다.
"얘가 김선태보다 잘하는지 궁금해서 들어오신 분들이 많을 거 같은데 그러신 분들은 나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겸손이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겸손걸'이 이렇게 찍어 유튜브에 최근 올린 영상은 3일 기준 조회수 239만 건을 넘어섰다. '겸손걸'의 정체는 최지호 충주시청 주무관. 퇴직한 김선태와 뉴미디어팀에서 14개월 동안 함께 유튜브를 만들던 공무원이다. 직속 상사였던 '충주맨'이 나가 잔뜩 풀이 죽어 있을 줄 알았더니 웬걸, '억까'(억지로 꼬투리 잡아 공격한다는 뜻)를 툭툭 튕겨내는 걸 보니 후임도 보통 '강심장'은 아니다.
'눈치 안 보는 DNA'는 충주시 유튜브팀의 전통이 된걸까. 충주시청을 찾아가 최 주무관에게 직접 물었더니 이런 농담이 돌아왔다.
"공무원 조직에선 인수인계가 중요하거든요. 선임(김선태)이 했던 걸 그대로 한 거죠 뭐, 하하하."
①공무원 체면보다 '유튜브각'... 첫 번째 유산
최 주무관이 '눕방'(누워서 찍는 방송)처럼 찍은 이 영상의 콘셉트는 '80만 구독자 감사-낮은 자세 토크'다. 97만 명에 이르던 구독자가 김선태 사직 소식이 알려진 뒤 75만 명까지 뚝 떨어졌는데, '추노' 패러디 영상 등으로 집 나갔던 5만 명을 다시 불러 모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벌인 '웃픈 이벤트'다.
80만 구독자를 모은 상황은 달랐지만, 최 주무관은 김선태가 1년 전 구독자 80만이 됐을 때 찍은 영상과 섬네일 제목도 똑같이 뽑았다. 아니나 다를까, 영상엔 '자세를 보니 (김선태) 인수인계가 확실히 잘됐네'란 댓글이 올라왔다. 조회수는 오히려 김선태가 앞서 만든 영상을 넘어섰다. 스승을 뛰어넘은 제자, 청출어람이 따로 없다. 스승(김선태)의 반응은 어땠을까.
"'반응 좋던데?'란 문자를 받았어요. '벌써 터졌네'라면서요. 팀장(김선태)님 영상보다 조회수가 더 나왔으니 팀장님이 살짝 질투하셨으면 좋겠어요." 최 주무관의 말이다.
조회수보다 더 눈에 띈 건 영상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김선태가 떠난 뒤 후배 직원에게 남은 건 공무원으로서의 체면보다 시의 정책 홍보에 '유튜브 각'을 우선하는 태도다. 김선태가 공무원 조직에 남긴 첫 번째 유산이다.
"저도 영상 제작이 처음이었어요. 처음엔 어떻게 찍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다 팀장님이랑 일하면서 '진심을 다하면 사람들 마음에 닿는구나'를 깨닫게 됐죠." 시정(市政) 홍보가 행정 문서를 작성하고 전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움직이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는 뜻이다.
② '선 업로드, 후 보고' 결재 파괴... 두 번째 유산
후배인 최 주무관만 변한 게 아니다. 김선태는 공무원 조직의 일하는 방식도 확 바꿨다.
최 주무관은 유튜브 영상을 상사 결재 없이 먼저 올렸다. 보고는 그 다음이었다. 최 주무관은 "팀장님이 길(영상 업로드 무결재)을 닦아 놔 영상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김선태 퇴직 후에도 '무결재 업로드' 시스템은 충주시에서 유지됐다. 김선태가 공무원 조직에 남긴 두 번째 유산은 '충주맨' 캐릭터가 아니었다. 상사의 권위(결재)보다 담당자의 자율성을 우선하는 시스템이었다.
공공기관의 파격 뒤엔 많은 시행착오가 따랐다. 김선태는 책 '홍보의 신'(2024)에서 무결재 시스템 도입을 '투쟁의 결과'라고 고백했다. 유튜브 자막 크기와 색깔 지적은 약과였다. 영상 콘셉트에 맞지 않는 수정 요구로 그는 상사들과 자주 싸웠다. 상사가 오류를 지적하고 수정을 지시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틀린 게 아닌 취향의 차이를 두고 서로 평행선을 달리다 때론 영상 공개가 늦어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채널 운영이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구독자가 쌓이자 김선태는 '선 업로드, 후 보고'를 시에 제안했다. 그는 "기존의 것과 다른 것을 만들고 싶다면 누구든 간섭하면 안 된다"고 했다. "영상의 기획 의도를 가장 잘 파악하는 것은 바로 담당자"라는 믿음에서다.
하지만, 말단 직원의 반란만으로 조직 혁신은 이뤄지지 않는다. '선 업로드, 후 보고' 시스템 도입엔 공무원의 실험을 용인한 리더십이 있다. 조길형 전 충주시장이 김선태의 제작 자율성에 판을 깔아줬다. 직원의 '미움받을 용기'와 리더의 '간섭하지 않을 용기'가 만나 공무원 조직에서도 실험이 가능해진 것이다.
"카드 구길 때 깜짝 놀라" 미움 받아도 판 흔들어
조직 안에서 투쟁의 시간을 버틸 만큼 김선태는 '맷집'도 셌다. 대세를 거슬러서라도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관성 브레이커'로 여겨지기도 했다.
"강력한 적이 있을 때 그 판을 뒤집기 위해 룰을 깨더라고요. 게임 도구인 카드를 구겨 버리는 식으로요. 카드를 구길 때 진짜 놀랐거든요. 돌발 행동을 해서라도 위기를 뚫고 나가려 하는구나 생각했어요. 그런 모습이 한편으론 (보는 사람에게) 해방감도 주더라고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웨이브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피의 게임' 시즌3를 연출한 현정완 PD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김선태와의 작업을 이렇게 떠올렸다.
상황은 이랬다. 김선태는 게임 도중 카드를 죄다 구겨버렸다. 승부를 겨루는 카드에 표식을 남겨 특정 도전자들이 정치적 연합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걸 파악하고 난 뒤였다. 세력이 강한 팀에 붙어 편법으로 살아남는 걸 택하는 대신 그는 혼자 섬처럼 떨어져 게임했다.
"서바이벌하는 걸 보면서 (김선태가) 자기만의 확고한 소신이 있다는 걸 느꼈고, 촬영 전 사전 미팅을 하면서도 세상을 해석하는 그만의 시선이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는 게 현 PD의 말이다. 김선태는 다수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남기보다 미움받더라도 판을 흔드는 쪽을 택했다. 충주시에서도 서바이벌 게임에서도 김선태의 생존법은 비슷했다.
퇴직 후 충주 벗어나지 않은 이유
2016년 공무원이 된 김선태의 첫 월급은 약 150만 원이었다. 지난 2월 충주시청을 퇴직한 그가 광고 한 편 제작으로 받는 돈은 8,000만~1억원 선으로 파악됐다. 콘텐츠 제작으로 '몸값'이 치솟았지만 김선태는 '충주맨'으로 7년을 살았다. 더 빨리 떠나 돈을 벌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인상을 줬고, 사람들은 그의 퇴직을 '배신'보다 '홀로서기'로 바라봤다.
김선태는 퇴직 후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개인 사무실을 충주시 문화동에 마련했다. 방 두 개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65만 원짜리 공간이었다. 직접 찾아가 보니, 그의 사무실이 자리한 곳은 벽화가 그려진 담벼락이 있는 오래된 주택과 빌라 인근 지역이었다. 김선태는 여러 연예기획사의 영입 제안도 고사했다. 공무원을 그만뒀지만 '충주맨'의 세계관만큼은 무너뜨리지 않은 셈이다. 서울이 아니라 충주에 사무실을 차린 선택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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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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