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의 세상톡톡] 미움받을 용기
2026.06.02 18:03
최근 들어 피동과 소극만 난무
학교 현장부터 의료·군대까지
책임 독박 우려에 몸 사리기만
재량행위 보호는 결국 사람 몫
리더십 발휘할 인물 잘 뽑아야
폐교된 초등학교 부지를 학교용지에서 일반재산으로 변경해 매각하려는 광역교육청이 있다. 해당 부지의 매각 움직임이 알려지자 인근 주민들은 부지가 지역 의료 인프라 확충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선다. 안 그래도 수도권에 비해 열악한 의료 현실을 감안하면 주민들의 요구가 타당한 것 같지만 해당 교육청은 공개 경쟁입찰을 통한 매각을 고집한다. 특정 대학병원 시설 확충 등을 통한 의료 인프라 확충은 공공 목적에 해당하지 않는 특혜라는 이유를 든다. 주민들은 그냥 공개 입찰 매각을 하면 아파트 단지 조성 등 난개발이 우려된다고도 지적하고 심지어 해당 구청까지 의료부지 용도 지정 매각에 힘을 싣고 나섰지만 교육청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위 사례는 부산지역에서 최근 벌어진 행정의 한 모습이다. 어떤 행정이든 찬반 논란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위 사례에 대해서도 찬반 입장은 누구나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행정이라는 것이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 행해지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작용’이라고 봤을 때 아무래도 저 사례의 행정은 능동과 적극의 면에서는 후한 점수를 주기가 어렵다. 주민과 지자체가 바라는 공익은 외면한 채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책임을 피하려는 안전 위주 행정으로 보여서다. 저 사례의 행정만 그런 것이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능동과 적극 대신 피동과 소극이 판을 치는 행정들이 늘고 있다.
행정 뿐만이 아니다. 유사한 사례들은 최근 들어 유달리 자주 발견된다. 대표적인 것이 학교 현장에서 수학여행과 각종 수련회, 운동회, 축제 등 단체활동을 아예 없애기로 한 결정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구더기 무섭다고 장독을 없애면 되겠느냐”고 지적하는 지경이니 임계점을 넘어섰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의료 현장에서는 죽을 수도 있는 환자를 살리겠다고 나서는 의사가 사라졌다. 소위 ‘응급실 뺑뺑이’로 상징되는 필수의료의 붕괴도 임계점을 넘은 모습이다. 군대는 또 어떤가. 사고 위험이 높은 군사훈련을 과감히 하겠다는 지휘관의 모습을 찾기 어려워진 것이 오래됐다. 유사시 군이 제대로 작동할지를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졌다.
이런 사례를 두고 사회에선 교사를, 의사를, 군인을 쉽게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처지를 바꿔 그 일을 직접 수행하는 입장이 된다면 비난만 하기엔 담당자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이 너무나 크다는 점을 알게 된다. 단체활동 수행의 책임을 맡은 교사는 활동 도중 사고가 발생하면 나홀로 책임을 다 떠안아야 한다. 심지어 형사사건으로 비화해 법정에까지 가거나 거액의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일을 겪을지도 모른다. 의사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위급 환자를 살려보겠다고 나섰다가 환자가 사망한 경우 살리지 못한 죄인 취급을 당하기 쉽다. 군대도 훈련 도중 사고가 터지면 누군가 책임을 뒤집어 쓸 대상을 찾는 데 더 골몰하기 일쑤다.
희생양을 찾아 징치하는 것만이 근본 해결책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는 풍조 속에 대한민국은 아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인 ‘무균실 공화국’이 돼 가고 있다. 무균실에서 무균 상태로만 영원히 산다면 병에 걸리진 않겠지만 건강한 삶을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으려면 가만히 있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팽배한 곳에서 능동도 적극도 기대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행정에는 원래 목적인 능동과 적극을 보장하기 위해 재량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법률에 따른 행정행위라 할지라도 입법자가 장래 발생할 모든 경우를 법 안에 망라해 놓을 수 없기 때문에 마련된 장치다. 하지만 많은 실무 담당자는 이 재량권을 발휘하는 데에 주저한다. 시스템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재량권을 발휘했다가 다른 민원이 들어오거나 반발이 생길 경우 독박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미움받을 용기’를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행정에 있어 실무 담당자의 ‘미움받을 용기’를 되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여기에는 ‘사람’의 작용이 필요하다. 시스템적인 보호라는 것도 결국은 사람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어서다. 그럼 그 사람은 누가 돼야 하는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관장이 돼야 한다. 지역으로 보면 좁게는 구청장으로부터 넓게는 시장, 교육감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그 사람이 ‘본인이 책임진다’는 메시지의 반복적 전달을 통해 재량권 행사를 독려하는 것을 시작으로 악성 민원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까지 나서야 한다. 그렇게 시작한 ‘사람’의 작용이 국가적으로 확대될 수 있어야 대한민국도 무균실 공화국에서 벗어날 수 있다.
6월 3일은 그런 역할을 할 ‘사람’을 뽑는 날이다. 유권자의 표 하나하나가 그래서 더욱 무거운 것이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운동회의 다른 소식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