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총놀이'로 하나가 된 괴산 청천초의 특별한 하루
2026.06.03 13:36
올챙이 논에 뛰어든 교사들, 나무 그늘 아래 수육 잔치
| ▲ 청천초의 구성원들이 모내기에 앞서 마을 교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
| ⓒ 청천초등학교 |
오전 일정은 유치원생을 포함한 전교생과 교직원, 학부모, 마을 교사가 총출동한 '모내기'로 시작됐다. 학생들은 올챙이가 꼬물거리며 헤엄치는 진흙탕 속에 들어가 고사리손으로 직접 모를 심었다. 가을이 되면 아이들은 자신이 심은 벼를 직접 추수하고, 그 쌀을 마을과 나누며 쌀 한 톨의 의미와 생명의 가치를 체득하게 된다. 맑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오감으로 느끼고, 몸으로 경험하며 자연과 사람, 삶과 배움이 함께하는 교육을 실천하고 있었다.
| ▲ 아이들은 제법 능숙하게 모를 심고, 자연스레 옆 개울로 가서 발을 씻는다. |
| ⓒ 청천초등학교 |
| ▲ 난생 처음 논에 들어가 모를 심는 선생님들은 그 모습 자체로 아이들에게 큰 배움이 된다. |
| ⓒ 청천초등학교 |
| ▲ 모내기의 현장에는 학교의 막내인 유치원생도 함께 한다. |
| ⓒ 청천초등학교 |
이미 수차례 모내기를 경험해 본 아이들은 오히려 익숙하게 논에 들어간다. 오히려 난생처음 논에 들어가 보는 선생님들이 학생의 모습이다. 그러나 기꺼이 배우는 자세로 바지를 걷어붙이고 흙탕물에 발을 담근 선생님들의 모습 그 자체를 아이들은 보고 배운다.
| ▲ 모내기를 마치고 다같이 둘러 앉아 수육을 먹고 있다. |
| ⓒ 청천초등학교 |
모내기가 끝난 후 다 함께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모여 앉아 수육을 나누어 먹는 풍경은, 이 학교가 자랑하는 생태 교육이자 아름다운 전통이다. 일회용품의 사용을 줄이려 각자 챙겨온 식기들의 달그락거림이 아이들의 웃음 소리와 어우러져 사뭇 음악처럼 들린다.
방과 후 간식 챙기던 학부모들, 마을 교육의 주체가 되다
이러한 청천초의 마을 교육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약 10여 년 전, 방과 후 학교가 생기기도 전 방과 후 갈 곳 없는 아이들의 간식을 챙기며 돌보던 학부모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그 시초다. '내 아이가 행복하려면 친구가 함께 행복해야 한다'고 믿었던 선배 학부모들의 철학은, '행복씨앗학교' 정책을 통해 뜻있는 교사들이 힘을 보태며 정식 교육과정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 아이들을 챙기던 엄마들은 현재 '마을 교사'가 되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역할로 여전히 교육 현장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 물론 선배 엄마들만 마을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육이 이 작은 시골 마을에 미치는 영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정기적인 워크샵을 포함한 다양한 소통의 창구가 열려 있다.
| ▲ 마을 교사들과 아이들이 둘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새끼를 꼬아보고 있다. |
| ⓒ 청천초등학교 |
청천초등학교에서 진행되는 생태교육과 마을교육의 중요한 한 축이 바로 이 '마을 교사'이다. 마을 교사는 학교 선생님들과 협력하여 마을 교과를 기획하고 진행한다. 논마실, 밭마실 뿐 아니라 다양한 주제의 마을 탐방이 학년별로 일 년 내내 이루어지고 있다. 덕분에 아이들은 마을 속에서 자라나고 있다.
줄다리기와 씨름, 그리고 운동장을 적신 물총놀이
| ▲ 직접 꼬아 만든 새끼줄로 줄넘기를 해 본다. |
| ⓒ 청천초등학교 |
오후에는 청천초 교육의 상징과도 같은 '단오제'가 이어졌다. 과거 단오 즈음에 전통문화를 체험하던 작은 행사는, 현재 학생자치회 활동과 마을 교사 활동이 유기적으로 접목된 중요한 축제가 되었다. 이날 운동장 곳곳에는 창포 샴푸 만들기, 짚으로 새끼 꼬기, 전통놀이(제기차기 등), 떡 만들기 등의 체험 부스와 떡볶이, 순대, 오미자 에이드 등을 나누는 먹거리 부스가 열렸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부스를 돌며 체험을 즐겼고, 이 모든 부스는 학부모와 마을 교사들의 자발적인 봉사로 운영되었다.
| ▲ 학교 구성원들이 함께하는 줄다리기의 현장 |
| ⓒ 청천초등학교 |
전 학년과 학부모가 함께 호흡을 맞춘 줄다리기와 이어달리기도 진행됐다. 필연 결정되는 승부의 현장은 자연히 열광과 환호와 아쉬움의 합주곡이 된다. 그러나 다 함께 땀 흘리며 달리는 시간 속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한 순간일 뿐이었다. 아빠, 엄마이기 이전에 한 팀 일원으로 온 힘을 쏟아 함께하는 그 순간의 환희가 긴 여운으로 남았다. 학년을 초월하여 비슷한 체구의 아이들이 모래판에서 맞붙은 씨름대회 역시 경쟁보다는 서로를 응원하는 화합의 장이었다. 이처럼 친구와 선생님, 부모와 이웃이 서로 존중하고 소통하며, 이해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관계 속에서 아이들은 한 걸음씩 자신의 속도로 자라나고 있었다.
| ▲ 열띤 씨름대회의 현장. |
| ⓒ 청천초등학교 |
단오제의 백미는 단연 '물놀이'였다. 값비싼 물총 대신 다 먹은 음료수 병에 물을 담아 쥔 교사, 학부모, 아이들은 격의 없이 운동장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서로에게 물을 뿌렸다. 모두가 흠뻑 젖을 때까지 이어진 물놀이 속에서 어른과 아이의 경계는 사라졌다.
민원 대신 '감사'로 채운 자리
청천초에서 이뤄지고 있는 이 교육들은 교사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교육과정이다. 정해진 학습 과정을 수행해 내고, 수많은 행정 업무 처리를 감당하기에도 벅찬 자리에, '교육 서비스직'으로 전락한 시대의 씁쓸한 자화상까지 교사들의 어깨에 얹어진 오늘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은 단연 이 모든 과정의 주체로서 자리한다. 일정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조율하는 그 모든 과정을 기꺼이 수행하고 있다.
모든 행사가 끝난 후, 마을 교사 단체 채팅방에는 고된 일정에 대한 불평이나 민원 대신 서로의 노고를 격려하고 헌신해 준 교사들에게 감사하는 인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학부모들이 학교를 감시하는 '민원인'이 아니라, 교육을 함께 가꾸는 '공동 창조자'로 굳건히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이 작은 시골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 교육은 '특별인구감소지역'의 숙명처럼, 매년 줄어드는 학생으로 인한 교사 인원 감축 등의 당면한 과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당장 내년만 해도 이 교육이 지속될 수 있을지를 학교는 염려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오늘 아이와 교사, 학부모, 마을은 더 행복하기 위한 한 걸음을 걷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 학부모 기자단 카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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